그날은 오전 10시부터 회의가 있었다. 10시 출근인데 10시부터 회의라니 야속하긴 하지만 그래도 부서원들은 중요한 회의라 오전 9시에 해야 하는데 나름 배려해서 내가 오면 바로 회의하자고 의견을 모았었다.
그러니 평소에도 지각하면 안 되지만 그 날은 더욱 지각하면 안 되는 날이다.
직원들이 시계만 힐끔거릴 테니...
신경이 쓰였다.
용인에서 청사까지 출근시간 1시간 40분
그 사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평소보다 살짝 빠른 듯한 속도로 출근을 준비한다.
평소보다 살짝 빨리 밥을 먹고, 살짝 빠른 듯 아이를 유치원에 등원시킨다.
그날은 아침부터 평소보다 살짝 빠른 듯한 몸놀림에 신경도 살짝 곤두서 있었던 것 같다.
출근하려면 마을버스를 타고 신분당선으로 갈아타고 또 3호선으로 갈아타 경복궁역까지 가야 한다.
다행히 늦지 않게 갈 수 있는 상황이다. 신분당선에서 3호선으로 환승하려면 2-3분 정도 걸어야 한다.
환승구역에 왔을 때쯤 살살 배가 아픈 것 같다. 아주 살짝. 화장실에 가야 할 정도는 아닌데 화장실 표지판이 보인다. 잠깐 망설이다 그냥 환승역으로 간다. 3호선을 갈아타고 한 3-4 정거장 갔을까? 아까보다 조금 더 아프다. 배를 만져야 하는 상황이다. 지하철 노선도를 본다. 앞으로 20분은 더 가야 한다. 사무실에 들어가려면 그 보다 더 걸린다. 잠시 배 아픈 것이 가라앉는다. 그런데 잠시 후 아까보다 더 아프다. 출산하는 것처럼 주기적으로 아프고 점점 더 아파온다. 자리라도 있으면 앉아서 항문에 힘을 주고 어떻게든 버텨보겠는데 자리는커녕 사람들만 점점 더 많아진다. 나는 다리를 비비 꼬아야 할 지경이다.
화장실을 가는 게 맞다. 그런데 10시에 회의가 있다. 주기적으로 오는 복통은 주기적으로 가라앉는다. 그때는 잠시 한숨 돌린만하다. 잠깐의 휴식 후에 더 한 고통이 온다. 그래도 계속 주기적으로 가라앉는다.
그 시기 나는 복직 후 완벽하게 적응을 마치고 일에 대한 의욕이 넘쳐 회사가 우선인 사람이었다.
회의에 늦기 싫었다. 끝까지 화장실을 가지 않은 미련한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 나는 거의 얼굴은 흑색이 되어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했고, 결국 회의는 그만큼 늦어졌다.
이런 경험을 누구나 한두 번은 한다. 물론 말은 안 한다. 회사에 왜 늦었는지 미팅에 왜 늦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항상 '길이 막혀서, 늦잠 자서'이지, '응 중간에 설사가 나와서'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똥은 정말 중요하다. 나의 경우 똥은 하루에서 가장 중요하다. 거기까지는 아니라도 누구나 똥은 정말 중요한다. 배변활동은 개인의 가장 은밀한 사생활 중 하나라서 그 사람만의 독특한 배변 생활, 가령, 배변 주기, 배변의 양, 배변 시간대 같은 것들은 잘 모른다. 가족도 잘 모를 수 있다. 사실 나는 남편이 언제 배변을 보는지 잘 모르겠다. 속이 안 좋아 불규칙하거나 회사에서 보는가 보다 하고 있다.
나는 장이 건강한 편이라 고등학생 때 잠시 변비로 고생한 이후로는 한 번도 똥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한 적은 없다. 배변을 위한 황금시간대는 오전이다. 아주 이른 오전. 황금시간대를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데 그 시간을 놓치면 그 날 배변활동은 물 건너간다. 내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오전에 배변 타이밍을 놓치면 하루 종일 속이 묵직하고 답답하고 -아이러니하게-뭘 자꾸 먹게 된다. 답답해서 빼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늦게라도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대체로 나오지 않은 똥과 새로 들어간 음식물까지 내 몸은 하루 종일 퉁퉁 부어 있다. 일도 집중이 안되고 괜히 죄 없는 아이들에게 짜증도 난다.
그래서 똥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다. 나에게 똥은 그 날의 컨디션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전제 요소이다.
똥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사람들은 똥을 부끄러워한다. 냄새나고 더러우니까.
사회생활하고 업무를 수행하는데 결코 똥이 걸림돌이 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타고나길 장이 약한 사람들이 있다. 갑자기 긴장하거나 갑자기 업무가 떨어지면 장이 바르르 떨리면서 화장실이 급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 경미한 장 트러블은 항상 급한 보고서 작성에 밀린다.
위의 내 경험까지는 아니라도 회사에서 배가 아프지만 '이것만 하고'라며 화장실 가는 것은 미뤄본 직장인이 대다수 아닐까? 아니 모든 직장인일 것 같다.
신기한 것은 이런 일이 반복되면 몸도 적응한다는 거다.
사실은 이게 슬픈 일인데 배변활동처럼 삶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일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과 만나면 몸이 알아서 물러난다. 급한 업무 중일 때는 똥도 자신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하고 자기 순서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특별할 것도 없는 보고서는 제때 제출할 수 있지만 특별한 내 몸은 조금씩 조금씩 망가진다.
배변활동뿐인가? 똥은 상징적일 뿐, 이 사회에서 평가절하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규칙적인 식사와 적당한 운동과 충분한 잠, 잠깐의 휴식까지.
배변활동은 회의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배변활동보다 회의가 더 중요한 사회에 살고 있다. 몸의 건강은 회식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건강보다 회식이 더 중요한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니 이 사회에서 항상 그 중요성이 과소평가되고 뒤로 밀리고 알아서 적응하는 우리 몸을 우리 자신이 잘 챙겨주자.
타임머신을 타고 그 날로 다시 돌아간다
나는 결국 회의에 늦었다.
"오늘 왜 늦었어요?" 동료가 물어본다.
"중간에 화장실 가느라. 똥이 급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