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신조, 용기

by 고도리작가

중학교 1학년 때 화학 선생님은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평교사였다.

그때는 어려서 조직의 정치논리를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왜 화학 선생님이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교장이나 교감, 무슨 부장같은 것이 아닌 그냥 평교사였는지 알 것 같다.

좋게 말하면 나름의 철학이 있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독불장군- 주위와 타협할 줄 모르고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결코 다른 선생님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분은 수업 중에 다른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으셨다.

다행히도 설명은 잘하셨는지 나는 화학을 좋아했다.

그런 분이 학년말에 웬일로 어떤 질문이라도 하라고 하신다. 화학과 무관한 이야기도 된다고 하신다. 물론 교과진도를 모두 마쳤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였다.

몇 명이 질문을 했을까? 그 몇 명 중에 나도 포함된다.


"선생님, 용기란 무엇인가요?"

와 선생님은 조금 놀라신 것 같았다. 그런 철학적인 질문이 나오리라고는 생각 못하신 탓이리라.

그 당시 나는 어떤 이유로 '용기'라는 주제에 골몰하고 있었다.


선생님의 답변은 이러했다.

'용기는 사람마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나에게는 학생들에게 잘못 설명한 것을 나중에라도 다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용기다.'

꼰대 소리 듣는 독불장군 화학 선생님의 진정성있는 답변이었다.

선생님은 직업 덕에 살면서 몇 번이나 용기를 내었을 것이다. 용기를 내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그렇게 열심히 수업에 임했는지도 모른다.


'용기'

내 삶을 지배하는 모토이다.

나 역시 살면서 용기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학생 때는 시험을 망치고 엄마 도장을 몰래 찍어 시험지를 제출한 후에 맞을 각오를 하고 나중에 이실직고했다.

대학생 때는 1월 혹한에 유럽을 한 달 동안 자유 여행하기로 용기를 내었다.

일할 때는 국회 보좌관들이 은근슬쩍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질의 해석 순서를 새치기하려고 할 때 "죄송하지만, 기다리셔야 합니다. 질의가 많이 밀렸어요"라고 그들의 지위에 굴하지 않았다.

아기를 처음 가졌을 때 당황스러운 몸의 변화에도 '괜찮아 다 잘될 거야, 1년 후에는 모든 게 다 잘 되어 있을 거야'라고 긍정하며 용기를 내었다.

둘째를 조산원에서 출산할 때는 정말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정도다.

오랜 고민 끝에 모든 두려움과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을 사직할 때 나의 용기는 정점을 찍는다.


나는 삶의 반을 살았다. 나는 지금 숨 고르며 평온을 찾고 있다.

나는 많은 것을 깨달았다. 고관대작이 부럽지 않고 재벌 3세가 부럽지 않다.

남들 다 부러워하는 일이라도 정작 본인은 다르다는 것을 경험했으니까.


나는 오늘도 용기를 낸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타인의 시선에 지배당하지 않고 나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지, 내가 지금 행복한지, 내 삶을 의식하면서 살고 싶다.

맞다고 판단한 것은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간다. 삶의 구석구석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받아들인다. 이 부분이 참 중요하다. 아직도 그 결과에 흔들리곤 한다.

특히 그 결과가 타인과 관련될 때 그 결과를 나 혼자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흔들리기 쉽다.

그러나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

삶은 내 판단이 최선이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내가 나의 판단이 최선이었다고 증명하면서 사는 거다.


나는 새로운 길로 들어섰지만 조급하진 않다. 조급해하지 않는 것도 용기이다.

충분히 고민했고 계획대로 하고 있으니 조급할 이유는 없다.

삶의 중요한 터닝포인트에 여유를 갖는 것. 나이 들어가면서 또 하나의 좋은 점이기도 하다.

이미 알고 있는데 조급할 것이 무언가?

조급하다고 꼭 되는 것도 아니고, 여유롭다고 꼭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원하는 대로 되었다고 꼭 좋은 것도 아니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고 꼭 나쁜 것도 아니다.

그냥 지금 여기서 행복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 나는 작가로 데뷔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지금 상태가 조금 더 지속된다고 해도 그리 나쁠 것 같지 않다.

무언가 목표를 가지고 의식적으로 사는 것은 축복이다.

꿈을 이루기 전, 소망하고 도전하는 것도 행복이다.

그런 것도 아무나 하지 못한다. 진정 용기를 내어야 하는 지점이다.


도전은 하되 평생 수고한 나를 적당히 쉬게 해 주면서 꾸준히 가는 것

기나긴 여정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

2002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4등의 자리에 올려놓은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을 디데이로 두고 몇 년에 걸쳐서 친선경기를 치르며 중간과정을 점검할 때 조급하지 않았다. 조급한 사람들은 뉴스 앵커와 시청자들 뿐이었다.

중간중간 타인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 수년간 각종 매스컴의 혹평에도 흔들리지 않던 거장의 정신을 본받고 싶다. 자신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팀을 선택한 것부터 평생 용기로 점철된 거장의 자신감과 용기를 본받아 살고 싶다.

오늘도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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