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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Jan 19. 2022

공무원 퇴직 후 2년 반

후회하지 않으세요?

퇴직한 지 2년 반이 되었다.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썼지만 아직까지도 가장 핫한 주제가 공무원 퇴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아마도 회사원이 존재하는 한 가장 핫한 주제이지 싶다.

남들 다 좋다는 공무원 퇴직하고 벌써 2-3년 된 사람은 지금 어떻게 사나?

나라도 궁금하겠다.


브런치에 글을 너무 오랫동안 발행하지 않으면 어떤 문자가 오는지 아는가?

'출간의 기회는 글에 집중하고 있을 때처럼 마법처럼 찾아옵니다. 작가님의 색깔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독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라든지

'작가님 글을 보고 싶습니다. 무려 60일 동안 못 보았네요.ㅠ_ㅠ

지금도 다양한 작가들이 브런치를 통해 책 출간을 하고 다양한 기회를 만나고 있어요. 작가님도 동참하시겠어요?'

라든지

'작가님 지난 글 발행 후 구독자가 15명 늘었어요. 그런데 돌연 작가님이 사라져 버렸답니다. ㅠ_ㅠ. 기다리고 있는 독자들에게 작가님의 새 글 알림을 보내주시겠어요?'

뭐 이런 안타까운 쪽지들이 온다. 치밀하게 프로그램된 문자를 시기별로 보내는 건데 하여간 친구가 보낸 것 같아 날 잊지는 않았구나. 고맙기도 하지만 계속되면 좀 무섭다.


혼자 내 맘대로 살고 싶어서 회사도 때려치우고 쓰고 싶을 때 글 쓰고 싶은데 회사가 조용해지니 이젠 브런치가 압박을 가하는구나.

회사 내 경쟁도 싫고 이제 맘 편하게 살면서 글을 쓰자 했는데 이젠 브런치에서 출간이라도 해 볼까 싶어 어떻게든 머리를 디밀어 보려는 형국이다.

모순에 빠진다. 대상과 정도만 바뀌었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뭐지?



공무원 퇴직한 지 벌써 2년 반이다.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아직도 공무원 퇴직한 거 후회하지 않으세요?

궁금한 사람이 있을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후회하지 않는다.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원래 잘 후회하지 않는 성격이다.

후회도 습관이라는 것을 아는가?


다만, 지금은 어떤 이유로 번아웃이 왔다. 사람들이 번아웃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우울증의 일종이라고 한다. 전문가의 진단도 아니고 혼자 번아웃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가장 적절한 표현이지 싶다.

의욕적으로 배우던 골프와 피아노도 몇 개월째 쉬고 있는 상태다.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뚝 끊고 몇 주간 집안에만 칩거했다.

그래서 깨달은 바가 있다. 번아웃은 굉장히 바쁘고 몸이 녹초가 될 정도로 힘들 때만 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세상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이유. 여기, 내가 함께 있으니까



나는 퇴직하고 정말 자발적으로 신나서 글을 썼다.

연말 치열한 브런치 공모전에 3번이나 참가했다. (모두 떨어졌다.)

그래도 괜찮았다. 쓰는 게 좋았으니까. 처음 1년 정도 그랬고

작년엔 주식을 해서 돈을 아주 많이 벌었다. 집에 있으면서 남편 연봉만큼 벌었다.

주식으로 집안 패가망신한다는데 나는 그리 되지 않았다. 결국 돈을 벌었다. 신났다. 매일 경제뉴스를 듣고 매일 환율, 주가지수를 확인했다. 그냥 시장이 그래서 그런 줄도 모르고 내가 남달라서 그런 줄 알았다. 지금은 내가 운이 좋았다는 걸 안다. 역시 돈은 사람을 기쁘게 한다. 여기까지는 뭐 괜찮았다.


작년 초 어릴 때 배우다 만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남편이 한번 배워보라고 성화였던 골프도 배우기 시작했다.(나랑 너무 안 맞는 운동이었다.)

그런데 이 피아노 선생 좀 특이하다. 너무 열정이 넘쳐서일까? 아님 내가 잘 따라가 줘서 일까?

슬쩍슬쩍 나를 까는 소리를 한다.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깐다.

'셋잇단 잘못하면 3류로 들린다'

몇 가지 있었는데 이 말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다.

내 소리가 삼류로 들린다고 해석되었다. 나는 슬슬 피아노 레슨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도 완곡하기 위해 매일 집에서 열심히 쳤다. '선생님 말씀이 지나치시네요'그런 말을 쉽게 나오지 않았다. 계속 봐야 하니까

회사처럼 윗선에 까이면 마음으로 지지해줄 동료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발적으로 피아노 레슨을 시작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선생님 삼류 소리 듣지 않기 위해 연습했다. 레슨 후반의 일이다.

나는 쫓기고 있었다. 이건 내가 원하는 형태가 아니었다.

11월 중순 결국 나는 레슨비 결제를 다 한 상태에서 잠시 쉬겠다고 했다. 그리고 두 달 동안 피아노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다시 쳐 보았다. 소리가 좋았다.

피아노가 무슨 잘못인가




퇴직하면 모두 내 맘대로 내 계획하에 모든 것을 장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퇴직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뭐가 그리 거창한가? 솔직히 일하기 싫었던 거지. 꼭 돈 벌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회사생활에 간절함이 없었던 거지


회사원이든 아니든 사장님이든 아니든 무엇이든 아니든

함께 살아가는 한 세상을 내 계획대로 장악하면서 살기는 어렵다.

파급력은 각기 다 다르지만 어디나 나를 자극하는 대상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저 흔연히 그러려니 하는 성격이 아니었으니 그렇게 고민이 많았던 거다.

회사에서 잘 지내는 사람은 회사 밖에서도 잘 지낼 것 같다.

 

냉정하게 평가해 보면 나는 일은 잘했다. 그런데 함께 지내는 건 좀 힘들었다. 좀 더 정확히는 좀 불편했다. 소수의 버디가 있어서 좋았지만 그들과 함께 한 시간만큼 혼자 있는 시간도 좋았다. 기본적으로 나는 혼자 있을 때 더 편한 사람이었다. 나의 히스토리를 관통하여 형성된 내 성향이 단체생활에는 잘 맞지 않았던 거다.


골프가 즐겁지 않았던 이유도 비슷하다. 골프는 스크린에서 혼자 연습하는 게 다가 아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라운딩을 가거나 최소한 스크린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 긴 시간 혼자 연습한다.

그런데 진짜 buddy가 아니면 영 상황이 어색한 어떻게든 맞춰진 4명과 몇 시간 동안 공을 치는 게 힘든 거였다. 내가 왜 굳이 돈 써가며 이런 짓을 해야 하지?


잠깐 다른 얘기를 하자면

남편이 회사 옥상에서 가끔 목격하는 재미난(?) 풍경이 있단다.

직원 하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혼자 옥상에 서서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더란다.

남편이 다가가 한마디 건넨다.

"동료들이랑 함께 회사 옥상에서 담배 피우면 트렌디 드라마야. 그런데 혼자 피우고 있으면 뭔지 알아?"

???

"스릴러"

주로 경력직으로 들어온 직원은 동기도 없고 갑자기 굴러 들어온 돌처럼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일은 더럽게 힘들고 누구 하나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사람 없고. 그러니 담배 뻑뻑 피워댈 수밖에.

사내에서 버디(buddy)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에피소드이다.

동료들한테 커피도 한 잔씩 사고 주변에 사람을 만들어라. 그래야 직장생활 좀 편하게 할 수 있다고 조언해 주었단다.


얼마 전에 직장생활 스트레스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디자이너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그런 사건은 기사화되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비일비재할 거다.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정말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냥 사표를 쓰지 왜 그렇게 까지 되었을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극단의 상황이었을 거다.

사실 나는 너무 열심히 일하고 너무 성실한 사람들보다는 지나치게 일하진 말고 회사 내 동호회 활동도 열심히 하고 조금 과장하면 업무 반, 취미 반, 늘 buddy들에 둘러싸여 지내는 게 훨씬 정신건강에 낫지 않을까 싶다.

일도 하고 그 재미에 회사도 나가면 좋지 않을까? 그것도 다 능력이다.

나에겐 부족했던 능력


퇴직 후 2년 반

'후회하지 않으세요?'

후회하지 않아요.

'행복하세요?'

행복은 뭐. 그냥 사는 거죠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스트레스받기도 하고 감동받기도 하면서

스스로 잘 어울려 잘 지내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회사에서도 회사 밖에서도 꽃길이긴 힘들다.

모두들 건승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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