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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Jan 18. 2022

줄탁동시(啐啄同時)

그 선생님들에 대한 추억

나는 중1, 중2 때 성적이 좋았다. 아주 좋았다

살면서 받아본 성적표 중에 가장 높은 점수들이었다. 전교 1-2등

한 반에 거의 60명. 전체 15개 반. 요즘 학교와는 차원이 다른 스케일이었다.

그래서 그 성적을 학창 시절 내내 비슷하게 유지했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가끔 궁금하다.

대기업 임원이 되었거나 의사가 되었거나 하여간 공부 잘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 다정한 남편이나 귀염둥이 내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겠지만 어차피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이었을 테니 어디 또 다른 좋은 남자 만나 다른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겠지. (또 다른 고민과 번민을 앉은 채)


중2 후반에 새로운 친구들을 알게 되었다.

그 아이들과 정말 신나게 놀았다. 노는 게 이렇게 신나는 거구나. 이렇게 재미있는 걸 나는 그동안 몰랐구나 생각할 정도로 신세계에 빠져들었다.

그 무렵 인근 남자고등학교 축제, 현란한 조명 아래 연주하고 노래하는 밴드부 오빠들 공연에 아주 눈이 돌아갔었다. 당신 유행하던 순정만화는 다 섭렵했나 보다.(당시 황미나 작가의 다소 거칠지만 슬픈 이야기를 좋아했다.)

친구들이 날라리는 아니었다. 착하고 재미있는데 하여간 공부에는 취미가 없는 아이들이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전교 1등 점수는 반에서 10등으로 떨어졌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한번 떨어진 점수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우리 이제 같이 공부 열심히 하자고 했다.

친구들은 자기 성적 떨어진 걸 남 탓한다고 했다.

'그게 아니라 내 성적 떨어진 건 내 탓이긴 한데 이제부턴 같이 공부 열심히 하자는 거야.'

했지만 결국 그 아이들은 나한데 노는 것만 알려주고  오랜 친구로 남지도 않았다.

몇 가지 짜릿한 유희를 즐긴 대가로 나는 좋은 성적을 반납해야 했다.


당시 중2 담임은 음악 선생이었다.

모습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똑 단발에 빨갛고 얇은 입술, 긴 스커트에 못된 얼굴

아이들에게 관심이 전혀 없었다.

첫 만남 때부터 자기는 원래 올해 대학원을 갈 예정이어서 담임은 맡기 힘들다고 교장선생님한테 미리 부탁드렸는데 이렇게 담임이 되었다며 너희들에게 그리 신경 쓰기 힘들다고 하셨다. 처음 만난 우리들에게 이런 말 하는 게 맞나? 싶었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말 선생 잘못 만났다 싶었다.

89년 서울 강서구  화곡 여중 2학년 음악담당이었다.


난 절망적으로 떨어진 성적에 대해 담임이 한 마디 해주었으면 했다.

정말 간절한 눈으로 응시했던 거 같다. 교무실에 찾아가 '선생님 도와주세요' 할 깜냥은 안 되니까

잠깐 눈이 마주친 것도 같은데 그냥 외면한 채 선생은 날 따로 부르지 않았다.

'성적이 많이 떨어졌구나. 무슨 일이 있었니? 중요한 시기야, 꾸준히 열심히 해야 해'

이 한마디면 되었는데.

당황했고 방황했고 두려웠다.


결국 떨어진 성적을 회복하지 못한 채 중3이 되었다.

중3 담임선생님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 아이들에게 열정과 애정이 대단한 분이셨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매일 응원의 쪽지를 써주셨고 매주 공부계획을 함께 고민해 주셨고 심지어 TV 시청 시간까지 약속을 지키도록 독려하시던 분.

90년 강서구 화곡 여중 3학년 국어담당이셨다.

중3 때 다시 최상위 레벨로 끌어올리는 데는 실패했다. 그래도 조금 오르긴 했다. 선생님은 더 이상 오르지 않는 내 성적을 안타까워하셨다.


옛날이야기가 길었다.





줄탁동시(啐啄同時)

아기 새가 알에서 깨어나는데 안에서 작은 부리로 톡톡 알껍질을 깨기 위한 시도를 시작하면 밖에 있는 어미새가 그에 맞춰 함께 톡톡 알껍질 깨는 걸 도와주어 아기새가 이 세상으로 나온다는 이야기란다. 찐 스승과 제자가 될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한단다.


그런데 그게 어디 스승과 제자뿐이겠는가?

부모와 자식관계

남편과 아내 관계

친구관계

심지어 동네 지인들끼리도 한쪽이 손을 내밀었을 때 다른 쪽에서 그 손을 잡아주어야만 관계가 성립되고 효과를 발휘한다.

한쪽에서 손을 내밀었는데 다른 쪽에서 아직 그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어떤 이유로 한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 주길 기다리는데 다른 쪽에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중2 담임선생님이 어린 학생의 간절함과 소망에 반응하지 않아 어린 새가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시도가 미완으로 남은 것처럼.

다행히 그 간절함을 눈치챈 중3 담임선생님이 조금 늦었지만 아기새의 부리 짓에 반응하면서 시원스럽진 못해도 결국 아기새는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네가 그냥 하지 그랬니? 한번 해 본 깜냥도 있는데 그냥 하지 그랬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당연히 그랬으면 좋았을 거고 위대한 학생의 탄생 스토리가 되어 대기업 임원도 하고 의사 판사도 했겠지.

그런데 비범하지 못한 보통 머리의 나는 선생님이 도와주셨으면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러는 것처럼.


살면서 사람들은 줄탁동시의 경험을 몇 번이나 하게 될까?

어떤 우주의 기운으로 절묘한 타이밍에 줄탁동시를 경험한 사람들은 진정한 사제지간이 되고 진정한 친구도 될 것이다.


고릿적 추억에 젖어 고마운 선생님, 미운 선생님까지 소환한 것은 우리 아이 때문이다.

중2 겨울. 아직 너무 어린 아기새인 걸까?

어미새는 안에서 '똑똑' 해주실 기다리는데 안에서는 아무 소리가 없다.

섣불리 밖에서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걸 도와주다가는 아기새가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기다려야 한다. 기다려야 한다.

간절한 소망으로 답답한 알 속이 아닌 진짜 세상으로 나오고 싶어서 작은 부리로 콕콕 쪼기 시작할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그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집중해야 한다. 거창하지만 그게 나의 소명이다.

다만 그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아이가 많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작은 알을 깨고 드넓은 바깥으로 나오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한 번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단 한 번이라도 그런 소망을 느낀다면 그건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런 행운은 그냥 오는 게 아니다. 스스로 도울 때 그런 행운도 오는 거다.

가만 돌이켜보니 나는 살면서 네 번 정도 행운이 왔던 것 같다.

수십 년, 수백 개월, 수 일을 살면서 겨우 네 번.

그러나 그것도 행운이다. 너무 간절하여 그 소망을 이루고자 한계까지 나를 몰아세워 힘들지만 정신은 더없이 맑던 순수하던 순간들.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은 알 거다.


매일 놀러 다니고 만화방에 다니며 성적 떨어지는 딸이 안타까워 장롱에 머리를 부딪치면서 '아빠 죽는 꼴 보려고 하냐"던 아빠의 훈계도 그저 하루짜리 효과였을 뿐 아빠의 진심을 몰랐듯이 내가 아무리 한 들 아이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저 하루짜리 효과에 불과하다.


그 깨달음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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