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출산의 기억

by 고도리작가

뮤지컬 배우 최정원이 아이를 수중 분만하면서 자연주의 출산이 언론의 조명을 받은 적이 있다.

유명인의 특이한 일거수일투족은 기사가 되기 마련이라 당시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기사와 함께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연주의 출산을 한다는 산부인과에 대한 광고성 기사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자연주의 출산은 의료진과 약물, 병원 편의 위주의 환경을 최소화하고 산모와 태아의 힘과 의지에 따라 자연스럽게 출산하는 방식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산모와 아기의 믿음과 유대감이 높아지게 된다.

병원에서 수술이 아닌 방식으로 아기를 낳는 자연분만과도 구별된다.

사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모두 자연주의 출산을 했다. 물론 시대적 상황에 따라 높은 출산율만큼이나 태아 사망률도 높았기에 현대에 와서 그런 야만적인 출산이라니 큰일 날 소리다.


나는 그런 큰일 날 일을 둘째 출산 시에 감행했다.

나는 2013년 둘째 아이를 조산원에서 자연주의 방식으로 출산했다.

벌써 6년도 지난 일인데 자연주의 출산은 아직도 생소한 분만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시 기세 등등한 의료진 말을 따르지 않고 내 판단하에 자연주의 출산을 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별 일이 없었으니 망정이지 대체 무슨 용기였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성공적으로 출산했지만 앞장서 자연주의 출산을 권하지는 않는다. 사전에 자연주의 출산이 가능한 건강한 산모만을 대상으로 한다 하더라도 예상치 않게 급박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분명히 있고 무엇보다 산모의 의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의 첫 번째 출산의 기억은 끔찍했다.

아기는 당연히 병원에서 출산하는 줄 알았던 나는 첫째 임신을 알게 된 후 동네 산모들이 소위 '아기 공장'이라고 부르던 그 지역에서 가장 큰 산부인과를 다녔다. 임신이라는 생애 처음 접하는 엄청난 큰 사건 앞에 담당 의사는 신이었고 매달 검사를 받으러 오라기에 하라는 대로 했고, 그 의사의 말에 따라 기분도 좋았다 나빴다 했다. 그렇게 열 달을 지냈다. 출산 예정일 3주가 지나도록 전혀 출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초조해하고 있는데 그 날 마지막 힘을 다 해 마을 야산을 등산하다가 양수가 터졌다.


병원에 갔고, 유도 분만을 시도했고, 진통의 기미가 없어 더 많은 촉진제를 주입했고, 8시간 진통시간 동안 나는 초주검이 되었다. 진통 막바지에 분만실에 들어온 웬 젊은 남자 의사. '누구지?' 의아해할 짬도 없이 미친 듯이 몰아치는 고통. 계속되는 고통, "거의 다 됐어요" 하는 말과 함께 '싹둑' 회음부 자르는 소리, 그리고 드디어 터진 아기 울음소리. 그렇게 첫째가 태어났다. 눈만 겨우 뜨고 있는데 눈부신 불빛에 나의 하복부가 하릴없이 노출되어 있었고 아까 들어온 그 낯선 남자가 내 가까이 고개를 숙이고 쓰윽 쓰윽 회음부를 꿰매고 있었다.

눈부신 조명과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간호사들의 사무적인 목소리, 가끔씩 들리는 웃음소리

나는 그런 처참한 출산의 기억이 있다. 혹시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말해 주는데 이 정도는 약과이다. 모든 출산여성들이 이것 이상의 경험을 한다.


이제와 생각해도 의료진들 앞에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무기력하게 노출된 나의 몸뚱어리를 주워 담고 싶은 심정이다. 약물 과다주입이 원인이었을까? 방광이 제 기능을 못하여 나는 병원에 있던 3일 동안 오줌보를 달고 다녀야 했다. 방광에 오줌이 생길 때마다 오줌보로 연결된 얇은 호스를 타고 내려와 노란 오줌이 그대로 노출된다. 오줌보가 어느 정도 차면 버리기를 반복한다. 3일간 그것을 차고 다녀야 했던 모멸감.

약물 기운이 사리지고 겨우 정신을 차린 후에야 나는 폭력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싹둑 자른 회음부의 더딘 회복으로 산후조리원에서도 눈에 띄게 회복이 느렸고, 지금도 피곤할 때 가끔 그 부분이 따끔거린다. 아무래도 초짜 당직의사한테 마루타 역할을 해주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아무 경험이 없는 어린 산모는 아무 힘도 못쓰고 이 따위로 일을 하냐고 좀 친절할 수 없냐고 한마디 말도 못 할 채 정신없이 엄마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그래서 둘째 출산 때는 절대 그렇게 무력하게 당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몰랐다.

그러다가 분만예정일 한 달을 앞두고 알게 된 자연주의 출산.

자연주의 출산은 병원에서 당연히 하는 절차들. 가령, 제모와 관장, 출산 직전 회음부 절개, 빠른 출산을 유도하기 위한 약물 주입 등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출산예정일을 한 달 앞두고 관련 다큐를 보고, 책을 찾아 읽고, 조산원을 알아보고, 남편을 설득했다.

괜한 걱정 할까 봐 부모님께는 출산예정일을 며칠 앞두고서야 말씀드렸다.

나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첫째 출산에 대한 기억이 나빴고,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 근거 없는 자신감이 하늘에 뻗쳐 있었다.

결심부터 실행까지 한 달 걸렸으니 나의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열망은 그만큼 강했다.


그러나 자연주의 출산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조산원은 두 명의 조산사가 함께 아이를 받는데 위험함을 아는 배테랑 간호사 출신이라 반드시 병원에서 막달 검사까지 받고 아이의 위치가 바르고 산모도 아기도 건강한, 객관적으로 출산 중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는 산모에게만 자연주의 출산을 허락한다.


그 날, 저녁 7시경 이슬이 비치자 나는 남편에게 연락하고 큰 아이를 엄마에게 맡겼다. 9시경 조산원에 도착하여 내가 분만할 방으로 갔다. 옛날 여성들이 아기를 낳을 때 잡던 두툼한 줄이 천장부터 달려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집에서 가져온 잠옷으로 갈아입고 편한 자세로 왔다 갔다 하며 진통을 참았다. 좁은 침대에 누워 밑이 뚫린 병원복을 입고 간호사가 '돌아다니면 안 된다. 그렇게 누워있으면 안 된다. 꼭 그 자세로 누워 있어야 한다.' 하는 잔소리 들을 일 없어 좋았다.

내 진통 경과를 보며 조산사가 단 한번 내진을 했고 출산 막판에 교과서에 나올 법한 시간 간격으로 진통을 했고 이제 곧 나온다는 소리를 듣고도 회음부 절개는 없었다. 밤 11시경 둘째가 태어났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조금 어두운 조명의 방에서 한동안 내 가슴 위에서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출산 다음 날 산후조리원으로 옮긴 나는 -조리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산모였음에도-굉장히 빠른 회복으로 직원들과 산모들을 놀라게 했다.

출산 후 첫 검사에서 담당의사가 그제야 내가 조산원에서 출산한 것을 알고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던 것을 분명히 기억한다.



첫째 출산 후 6년 만의 출산이었지만 나는 더 빨리 회복했다. 모든 것이 내가 계획한 대로 되었다.

운이 좋았을 수도 있다. 운이었건 치밀한 준비었건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기억은 그 후 내 삶에 강한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


나이가 들면 어떤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아무리 의사고 간호사고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라 해도 꼭 그들 말이 정답일 리 없고 명확한 이유 없이 반복되는 관행도 있으니 무조건 따르지는 않게 된다. 물론 싸우고 항의하고 소란을 피울 필요는 없다. 그냥 조용히 내 방식대로 하면 된다.

내가 만약 어린 산모였다면 그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고 내 의지대로 자연주의 출산을 강행할 수 있었을까?

걱정할 부모님과 당연히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둘 의료진을 넘어서고 내 의지대로 할 수 있었을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출산 경험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첫째 출산의 기억은 매우 고통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병원 전문가들에게 나를 맡기지 않았다.

두렵고 자신 없었다면 그럴수록 더욱 전문인에게 매달렸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관행과 의료 편의주의와 산모에 대한 무관심을 다시 겪지 않기로 결정했다.


내 판단을 믿고 결국 끝까지 밀어붙인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기억은 두고두고 내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내가 자연주의 출산도 한 사람이야. 내가 못할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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