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글
결혼을 한지 어느덧 1년 하고도 몇 개월이 지났습니다. 이제와서야 다시 정리해볼 생각이 든 이유는 별다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말에 지난 5월에 결혼한 동생의 집에 집들이를 하러 갔다가, 그들의 결혼 앨범을 보고 불현듯 우리의 결혼식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동생 부부는 호텔에서 번쩍거리는 조명과 스테이크, 몇 백명의 하객 앞에서 결혼식을 진행했습니다. 어찌보면 그것도 다소 특별한 결혼이지만요.
우리는 한 해 앞서, 소위 요즘 애들이 한다는 스몰웨딩, 그걸 했습니다. 그것도 좀 비범한 형태로요. 스무 명 남짓의 손님을 부르고 와인 파티를 열었습니다. 청첩장 대신 브로셔를 만들어 인쇄소에 맡기고, 홈페이지를 만들어 우리의 이야기를 전하기로 했습니다. 오프라인에서 축의금을 받는 대신 선물 펀딩 서비스를 만들어 출시했습니다. 두어 달이 지나고 인스타그램에 소식을 전하자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주었는데, 요지는 너다운 결혼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두 사람의 세계가 합쳐지는 일인데 그런 게 어찌 20-30분가량의 결혼식에서 모두에게 전해질 수 있겠어요. 결혼이 우리에게 어떤 뜻일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결혼하게 되었는지 정리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특이한 결혼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습니다. 기록을 위해 홈페이지를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는 노션을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어쩐지 좀 있어 보이기도 하고요. (사실은 그게 전부였나?)
우리 결혼의 주제인 A Little Bit Married라는 이름을 따서 도메인을 하나 사고, 뒷자리까지 세심하게 고민했습니다. alittlebitmarried.us는 그렇게 열리게 되었고, 이런저런 고민을 조각조각 담아놓았습니다. 결혼 전까지 급히 쓰다 보니 못 쓴 주제도 있고, 결혼 직후의 내용은 기록되지 않았지만요.
홈페이지 말고도 우리는 축의금 경험을 바꾸기 위한 서비스를 하나 출시했습니다. 남편은 개발자, 저는 유엑스 하는 사람인데 현금 축의금이라니 말도 안 돼! 하면서요. 이런 게 아마도 사람들에겐 조금 신기하게 느껴졌겠지요. 여기에도 이런저런 과정과 논의가 있었지만 일단은 시작하는 글이니 차차 풀어볼 계획입니다.
여러모로 행복한 기억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관심도 많이 가져줬던 이벤트였는데, 의미 있게 좀 남겨서 공유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스몰웨딩을 하려는 친구들이 전화해서 물어보면 노션 페이지 링크를 공유해줬고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어 고맙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보통은 귀찮음이 정리와 공유에 대한 욕구를 압도했는데 어쩌다 보니 올여름엔 그걸 넘어서게 된 것 같네요. 이제 스몰웨딩이 하나의 나름의 문화가 되었지만 여전히 필요한 정보나 사례를 찾는 데는 참 쉽지가 않은 것 같아서요. '이런 결혼도 있구나'하고 누군가가 도움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나(와 배우자) 스스로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의미로 차근히 하나씩 되짚어보며 글로 남겨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