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택도 연관이 있는 이 대회의 역사
미국 테니스는 피트 샘프라스와 안드레 애거시라는 두 거인이 은퇴한 뒤 긴 암흑기를 보냈다. 슈퍼스타의 부재는 곧 대중의 관심 하락으로 이어졌고, 한때 번창했던 수많은 미국 투어 대회들은 생존을 위해 짐을 싸야 했다.
그 모진 우여곡절을 견디고 2025년 드디어 화려한 흥행에 성공하며 ATP 500급으로 우뚝 선 달라스 오픈. 지금은 텍사스의 자존심이 된 이 대회의 시간을 거꾸로 되짚어보자.
1. 초라했던 시작: 2022-2024년의 달라스 오픈
지금은 달라스 카우보이스의 본부인 'The Star'에서 수만 명의 관중과 함께하지만, 불과 2년 전만 해도 달라스 오픈은 SMU(남부감리교대학)의 작은 테니스장에서 다소 초라하게 시작했다. ATP 250이라는 낮은 등급, 좁은 관객석. 하지만 텍사스 팬들의 테니스에 대한 갈증은 예상보다 뜨거웠고, 이 작은 불씨가 결국 500급 승격이라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달라스에 오기 전, 이 대회는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뉴욕 오픈'이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세련된 '블랙 코트'를 도입하며 화제를 모았지만, 흥행은 냉정했다. 좋은 선수들이 오지를 않았다. 테니스 대중화에 실패하며 존폐 위기에 몰렸던 이 시기는 미국 실내 테니스의 가장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있다.
뉴욕 이전에는 멤피스였다. 당시 250급으로 내려앉았던 멤피스 오픈은 니시코리 케이라는 아시아 스타의 전유물이었다. 니시코리가 4연패를 달성하며 대회를 지탱했지만, 스폰서 유치에 난항을 겪으며 결국 대회의 운영권은 뉴욕으로 팔려 나가게 된다.
세계 4등까지 한 니시코리가 이겼던 미국 십대선수는 테일러 프리츠 (역시 4등까지 해봄)
사실 테니스토리가 이글을 시작한건 이형택 그리고 산호세 오픈때문이다. 미국에서 2번째로 오래된 대회였던 산호세 오픈. 달라스 오픈 공식 홈페이지를 가보라.
https://www.dallasopen.com/en/tournament/about
페이지를 열어보면 놀라운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이형택(Hyung-Taik Lee).
2003년, 달라스 오픈의 뿌리인 실리콘 밸리에 있는 산호세(당시 SAP 오픈)에서 이형택은 벨라루스의 볼치코프와 짝을 이뤄 복식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단식 우승자가 무려 안드레 애거시였으니, 이 대회가 얼마나 유서 깊고 쟁쟁했는지 짐작이 간다. 샘프라스, 애거시, 로딕으로 이어지는 미국 테니스의 황금기가 바로 이 산호세에 녹아있고, 그 역사의 한 페이지에 한국인 이형택의 이름이 당당히 새겨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샘프라스와 아가시라는 슈퍼스타의 부재로 산호세 오픈은 2013년 막을 내리게 되었다.
ps. 2026년 현재, 댈러스 오픈은 Nexo(넥소)라는 독특한 스폰서를 만났다. 미국 내 서비스가 제한된 암호화폐 플랫폼이 타이틀 스폰서를 맡았다는 사실은, 서비스 여부와 상관없이 '미국 시장'이라는 상징성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샌호세의 영광과 멤피스의 눈물, 그리고 뉴욕의 방황을 거쳐 달라스에서 부활한 이 대회를 보고 있으면, 테니스라는 스포츠가 가진 끈질긴 생명력을 새삼 느끼게 된다.
ps2. 2월은 테니스 선수들에게 '선택의 달'이다. 미국의 실내 하드코트 대회가 고전했던 이유 중 하나는 남미의 '골든 스윙(Golden Swing)'이라 불리는 클레이 시리즈 때문이다. 나달 같은 클레이 장인들은 따뜻한 남미로 향했고, 유럽 선수들은 집 근처 로테르담이나 마르세유를 선호했다.
게다가 한때 멕시코 아카풀코가 2014년에 클레이에서 하드코트로 코트를 바꾸며 인디언 웰스(3월 마스터스)를 준비하는 선수들을 대거 뺏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댈러스 오픈은 ATP 500 승격과 함께 Nexo(넥소)라는 든든한(비록 미국 서비스는 안 되지만!) 스폰서까지 등에 업었다. 산호세의 영광을 달라스에서 재현하려는 이들의 도전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 지켜보는 것도 이번 시즌의 큰 재미가 될 것 같다.
ps3. 산호세에서 달라스로의 여정은 미국의 Tech기업들이 실리콘 밸리를 떠나 텍사스에 안착한 흐름과도 비슷한 점이 있어서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