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지 않는다. OTT 서비스도 구독하지 않는다. 유튜브도 잘 보지 않는다. 포털 뉴스는 챙겨 읽는다. 글을 읽는다. 그냥 책을 본다. 난 그렇게 산다. 옛날에 TV를 즐겨 볼 때도 있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책이 더 가까워진다.
#1. 예술
우연히 유튜브에서 잔나비의 영상을 보게 됐다. '뜨거운 씽어즈'라는 프로그램에서 최정훈이 24살에 작사, 작곡했다는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었다.
그땐 난 어떤 마음이었길래
내 모든 걸 주고도 웃을 수 있었나
그대는 또 어떤 마음이었길래
그 모든 걸 갖고도 돌아서 버렸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 품 없지만
또다시 찾아오는 누군갈 위해서 남겨두겠소
....
그리운 그 마음 그대로 영원히 담아둘 거야
언젠가 불어오는 바람에 남몰래 날려보겠소
눈이 부시던 그 순간들도 가슴 아픈 그대의 거짓말도 새하얗게 바래지고
비틀거리던 내 발걸음도 그늘 아래 드리운 내 눈빛도 아름답게 피어나길
가사를 듣다가, 가사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선율을 듣다가, 그 고요한 목소리를 듣다가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이 젊은 친구는 고작 24살에 이런 가사를 썼구나, 그때 나는 무얼 하고 있었나? 이제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야 이해할 가사를 24살에 쓰다니. 그 재능도, 목소리도, 너무나 부러웠다. 지금의 난 무얼 할 수 있나? 무얼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나? 고작 불혹이 되어서야 인생을 조금 안다고 브런치에 쓰는 글들이 부끄러워졌다.
예술에 대한 로망이 있다. 그림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한다. 예술이라는 장르에 글도 포함할 수 있다면, 글도 좋아한다. 이 모든 로망은 현실이란 벽에 취미도 아닌 그저 로망으로만 남았다. 이 가슴 깊이 묻어둔 녀석을 가끔 불러내는 순간이 있다. 마치 오늘처럼. 잔나비 노래 가사가 참 좋아서, 색깔이 있어서 메들리로 들었었는데. 오늘 영상 속에 있는 그의 노래는 더 큰 감동을 주었다.
#2. 기술
먹고살기 위해 기술을 선택했다. 지금 내가 잘하는 것은 뭐가 있을까? 남들보다 개발사업에 대한 것은 잘 알리라. 계획을 수립하고, 설계를 하고, 발주를 하고, 공사를 하고,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인계인수를 마무리하는 과정은 잘 알 거다. 20년 동안 한 일이 그것이니. 그것이 개인적으로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회사를 떠나는 순간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이다.
기술분야라는 것이 결과적으로 인간을 편리하게 만드는 목적이 있지만, 개인의 삶과는 유리된 느낌이다. 오직 기계적, 물리적 과정의 일부만을 담당하는 기술자. 인간의 삶 안으로 기술을 녹아내기엔 너무 무미건조한 분야다. 그러하기에 나의 예술에 대한 로망과 갈증은 계속되나 보다. 이 나이에, 이 가사를 들으며 울컥한다. 풋.
그림을 배웠던 과거 어느날... 그렸던 내 그림들
하지만 역학의 원리가 인생을 닮아있음을 안다. 종종 그런 생각들을 한다. 내가 다루는 힘이라는 것이 우리네 사는 것과 비슷하구나. 내력과 외력을 다룰 때 기본이 '응력'이라는 것이다. 단위면적 당 힘. 설계를 하려면 단위면적이 필요하다. 그래야 발생 가능한 총힘에 대해 건물의 규모나 견뎌야 할 내력을 결정할 수 있으니까. 외력의 총량을 작은 면적이 부담할수록 견뎌야 할 하중이 커진다. 너무나 당연한 논리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닌가? 삶의 짐을 혼자서 짊어지고 가려면 힘이 든다. 그래서 가족을 이루는지도 모른다. 함께 들어줄 친구도 사귀고, 어떤 공동체 울타리 안에서 어려움을 나누기도 하는 것 아닐까? 싶다. 지반의 하중전이라는 현상은 외력이 작용했을 때 주변의 지반과 힘을 나누는 것이다. 외력의 양이 한 곳에만 집중하지 않고, 주변에 옮겨가면서 늘고 줄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 지반이 풍화되는 것도 시간적 스케일만 다를 뿐, 우리의 삶을 닮았다. 오래된 지반일수록 단단해지는 것도.
어린왕자가 웃고 있는 밤 하늘과 나의 자화상
#3. 예술과 기술 사이
로제처럼 노래를 부를 수 없어도, 아이유, 최정훈과 같은 가사를 쓸 수 없어도, 그들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기술자가 되어야겠다. 그림을 그리지는 못하지만, 미술관에는 다니는 기술자가 되어야지. 20년간 공부해 온 토목공학 안에 눈꼽만큼 작은 예술의 혼이라도 녹여 글을 써야지. 한 없이 부끄러운 글이라도, 예술을 품은 기술자인 나의 로망을 쏟아내고 싶다. 그렇지 못하다면, 살아내기가 너무 힘이 들지도 모르겠다. 어설프더라도, 부족하더라도, 때론 궤변이라 할지라도 써야겠다. 이번 생은 이로써 충분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