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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Jul 16. 2023

태양이 반가운 어느 날.

# 비, 그리고 우울

지난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3일 동안 약 480mm 비가 내렸다. 계속 내렸다. 비의 굵기만 달라질 뿐, 난생처음 마주한 이 상황이 두려웠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는 호우경보가, 금강은 홍수경보가 떴다. 목요일, 금요일 내린 비에 토요일부터 사면이 유실되고, 도로가 침수되고, 하천호안이 세굴 되고, 맨홀이 역류했다.


실은 비만 오면 예민해져 잠들지 못한 나는 토요일 아침, 불안을 느꼈다.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 텐데... 비가 더 오면 어딘가 사고가 날 것만 같은 불안으로 신경이 예민해지고, 온몸이 긴장상태로 굳어 피로가 가득했다.


토요일 오전, 당직이 아니지만 일손이 모자라다는 부장님 전화에 바로 사무실로 출근했다. 오히려 사무실이 더 마음이 놓였다. 크고 작은 일들을, 현장 감독들은 밤을 새우고 현장을 지키고 본부 안에 근무하는 직원들도 당직과 상관없이 출근해 움직였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런데...


오송지하차도 사고 뉴스가 나왔다.


이 밀려드는 우울과 허무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바로 어제 서울 출장을 가느라 오송역에 다녀왔는데, KTX는 멈췄고, 그 일대는 침수가 됐다니.


제발...


아무리 빌어도 돌이킬 수 없는 망연자실한 상황에 극도의 우울이 찾아왔다. 모진 비는 저녁이 되면서 잠시 개었다가 보슬비로 바뀌었다. 이렇게 비를 증오하게 된 것도 올해가 처음이다.


뉴스에서 보는 소식은 비현실적이다. 조금은 영화 같고, 조금은 한 발짝 떨어진 느낌이다. 그랬나 보다.  홍수사고가 한 두건이 아니었는데, 이 모질고 독한 비를 맞고, 불과 어제 내가 다녀온 지역이 물에 잠기는 것을 보니, 나의 일 같다. 내가 저기에 있었을 수도...


우울과 절망감이 밀려와 온몸이 아팠다. 피해자분들과 그 가족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무슨 말도 할 수가 없다. 다만, 직접 저 일을 처리해야 하는 공무원 등 관계자분들의 심정은 어떨지, 가늠이 안된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잠시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내려앉는다. 어두컴컴한 하늘과 무참히 쏟아내는 빗줄기에 원망과 증오의 감정만이 남았던 오후였다.


다행히, 일요일인 오늘은 비가 1mm 정도 내렸다. 소강상태를 맞이한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졌다. 그러다가 오후 4시쯤 햇살이 비추었다. 순간 뜨거운 열기가 대기 가득한 수분을 머금어 폭염의 기운을 살짝 느끼게 했다.


내 평생 가장 반갑고 고마운 햇살이었다.  순간 내 마음 축축하게 젖어있던 우울이 잠깐 말랐다. 생명의 근원인 태양. 그 뜨거움과 열기에 불평불만만 쏟아냈던 과거를 반성했다. 얼마나 고맙던지. 단 하루라도 지구를 말려주기를 바랐다.


모든 것이 균형이 중요하다. 비도 육지의 먼지를 씻기고, 온도를 낮추고, 자연의 순환을 돕는 중요한 현상이고, 태양은 지구 생명체를 존재할 수 있게 해 준 생명의 근원이다. 문제는 쏠림이다.


이번 잔혹한 약 500mm 집중호우를 겪으며, 이건 재앙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지구인에 대한 징벌이랄까? 우리나라 연강수량은 약 1,300mm다. 느낌이 오시는지 모르겠다. 약 40%의 비가 단 3일 동안 내린 거다. 내리지 않았다. 쏟아부었다.


장마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또 이런 일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빗소리가 이렇게 고통스러울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이 업을 접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진짜 그만하고...



더 이상의 피해가 없기를,


모두가 안전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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