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렸다. 시간당 30mm가 넘어서는 빗소리에 잠을 깼다. 시간을 보니, 6시. 20년 넘게 현장에 있었던, 나의 귀는 빗소리에 무척 예민하다. 아무래도 호우주의보가 뜰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기상특보 문자가 왔다. 세수만 하고 집을 나섰다. 방재근무다.
사무실에 앉아 비를 바라보다, 그 간의 일을 생각한다. 기술사공부법을 발간했던 일부터. 왜 그 일에 그렇게 매달렸을까? 앞으로 나의 계획은 뭐지? 브런치, 글쓰기, 퇴사준비, 공부, 책...
갑자기, 머릿속이 정리가 되었다. 흐트러졌던 퍼즐이 맞춰지더니, 삶의 방향이 보였다. 허황된 꿈을 꾸며 둥둥 떠다니던 나는, 이제 현실에 두발을 딛고 서서 한 걸음씩 갈 수 있게 되었다.
본캐는 엔지니어, 부캐는 브런치 작가(작가지망생)였다. 본캐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에 부캐를 본캐로 만들고 싶었다. 글 쓰는 엔지니어에서 엔지니어 작가로 탈바꿈하고 싶었던 거다. 하지만 나는 안다. 브런치 2년 차,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쓸 수 있는 글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취미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전업은 힘들다는 것을. 그럼에도 올해 초 참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풋.
기술사공부법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조금 불순한 마음이 있었다. 공모에 선정되고, 책을 내면 작가가 되고, 잘 퇴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헤헤. 막상 책을 마치고 보니, 이것이 나의 한계구나. 본캐를 잘 키워야겠다는 깨달음이 온다. ㅎㅎ 그간 현실을 부정하고 이상을 꿈꿨는데, 이 책을 통해 현실에 두발을 딛고 서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너무 편안하고 행복하다.
브런치북 공모전에 당선이 되든, 안되든 상관없이 더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글쓰기에 대한 의미와 행복을 깨달았으니까.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나를 돌아보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깨달음을 쓸 수 있는 이런 플랫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더 이상 누가 책을 내고, 메인이 오르고, 구독자 수가 많은 것에 흔들리지 않을 거다. 묵묵히 나의 기록을 남기고, 그것을 통해 위로받고 성찰하고 만족하면 되니까.
그리고 또 하나의 깨우침.
퇴사 후에 대한 진로를 고민하던 중에, 나도 기술사 자격증 공부를 가지고 돈 되는 콘텐츠를 만들어 파이프라인을 구축해 볼까 했더랬다. 그런 방법으로 업을 삼으시는 분들이 있으니까. 자신이 공부했던 노트를 팔거나 그걸로 유료강의를 하면서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나와 맞지 않는다. 힘들게 쌓아온 기술을 기술답게 쓰는 기술인이 되고 싶다. 각자의 생각은 서로 다른 거다. 결코 비난은 아니다. 가치관이 다를 뿐이다.
알게 되었다. 다시 현장을 뛰는 엔지니어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퇴직을 하더라도, 헛된 꿈으로 본캐를 망각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나의 기술은 무료강의로 나눔 할 거다.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시행착오를 겪게 되겠지만. 그래도 부족한 데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얻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 책도 그런 의미가 있다. 내가 조언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기술사공부법'에 담았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무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