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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Nov 21. 2023

고3 엄마 해 본 후기

# 엄마가 되어가는 일

엄마, 인생이 다 똑같은 거 같아요. 대학 가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늙고... 똑같은 인생을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엄마, 대학을 왜 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엄마, 수능점수 하나로 인생에 많은 부분이 결정된다는 것이 너무 불합리하지 않아요? 시험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엄마, 10대 때는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친구들이랑 같이 성장하는 게 있잖아요. 근데 20대가 되면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제자리에 그냥 그대로 있는데요. 저는 그게 너무 두려워요.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엄마, 인생은 고통을 겪으면서 성장하잖아요. 지금 이 고통도 제겐 힘이 드는데, 앞으로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 정말 인생을 살아가는 게 두려워요.


올 한 해, 정말 길었다.


고3  아들 녀석이 공부하다 지치고 힘들 때, 나에게 던진 말들이다.  없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아이가 출렁거릴 때마다 더 출렁거리는 게 엄마인 나였다.


처음 고3엄마는 자녀가 고3학년인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도 수능을 봤고, 라테는 다 알아서 하던 시절이기에 딱히 힘들었던 기억도 없다. 그냥 거쳐가는 순간이라고 여겼을 뿐이다.


지금은 대한민국 모든 고3엄마를 존경한다. 고3을 키워낸 엄마는 한 단계 더 성숙해진 엄마일 거다. 그럴 수밖에 없다. 엄마가 되어가는 길은 정말 험난한 과정임을 깨닫는다. 성인이 되면 다 끝날 줄 알았는데, 머리가 다 큰 녀석을 상대해야 함에 따라 더 깊은 내공이 필요해진다. 내가 눈 감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엄마구나 싶다. 진짜 살아봐야 아는 건가 보다.



지난 목요일 수능날 아침. 아이는 스스로 도시락을 싸서 평소 자신의 루틴대로 시험장으로 향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며, 모의고사 보는 가벼운 마음이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시험장 교문을 들어가는 아이 뒷모습을 볼 수 없었다. 자꾸만 울컥해서, 뒤돌아보지 않고 회사로 출근했더랬다.


수능을 보기 2주 전부터 알 수 없는 시험의 무게감에 불안했다. 수능 보기 전 날은 혼자서 울었다. 아이어깨에 올려진 짐을 대신 짊어진 듯 좌불안석이 되었다.


수능을 보는 날은 일부러 출근을 했으나, 순간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릿속이 복잡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수능이 끝나는 시간에 우산을 들고 아이를 기다리는 교문 앞에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제발,

후회 없이 시험을 치르고 나오길.

아쉬워 눈물 보이지 않길.

별일 없이 무탈하게 시험을 치렀기를.



시험결과에 상관없이 수능이라는 보이지 않은 터널을 빠져나온 아이는 가벼워졌다. 밝아졌다.


아직 입시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고3이란 터널 출구가 보이니 살 것 같다. 수능을 치르며, 아이와 함께 엄마도 성장하는 시간임을 깨달았다.


이 엄청난 무게의 시간을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거다. 설명할 수 없다. 숨 쉬는 일을 매 순간 알아채려 노력하게 된다는 것이 어떤 건지.


고3 수험생과 더불어 고3엄마에게도 힘찬 응원과 위로를 보내고 싶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된 한 해였다. (내년에 둘째가 고3이다. 아직 1년이 더 남았지만, 올해보다는 더 낫지 않을까?ㅋㅋ)


추가로, 무사히 레이스를 마친 아들에게 수고했다고, 고생 많았다고 토닥였더니...


제 푸념 들어주시느라 엄마가 더 고생 많았죠.


했다. 알아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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