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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o Apr 11. 2016

나만 맡을 향수

그래도 멈출 수 없다!


향수는 나에게 훌륭한 인테리어였다. 작으면서 괜히 비싼 이 사치품을 접해본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방에 두면 이유 없이 폼이 났다. 제일 오른쪽에 있는, 금괴 같은 파코라반 원밀리언 향수는 더더욱 그렇다.


지인들을 만나러 갈 때 '제가 당신을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합니다'라는 예의를 차리기 위해 쓰곤 했다. 해외 파견근무를 나와있으니, 향수를 쓸 일이 드물었다. 휴가 때야 몇 번 뿌리곤 했다.


이 장식품의 새로운 용도를 찾았다. 조금 일찍 퇴근했다 싶으면 혼자 책을 읽으러 카페를 가곤 한다. 그때 뿌린다. 중동에서 근무하고 있으니, 길가다가 지인을 만나는 일이 있을 수가 없고, 굳이 예의를 차리고 싶은 사람도 없다. 그래도 뿌린다. 


혼자 다니더라도 스스로에게 무언가를 투자했다는 것이 나를 들뜨게 한다.

물질이 정신을 지배한다는 유물론은 차치하더라도, 스스로 가꾸고 꾸미면 그에 걸맞게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 스스로를 마구잡이로 대하면 스멀스멀 그런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내 몸에 입혀진 그 향 자체가 좋다.

시향지에 뿌려서 맡을 때와 실제 뿌렸을 때의 탑 노트가 다른 것이 신기하다. 탑 노트에서 미들 노트로 가는 그 느낌 자체가 좋다. 기분 전환 겸 중간에 다시 뿌렸을 때 다시 향이 신선해지는 그 샤워가 시원하고 경쾌하다.


향수를 뿌리는 행동 자체가 좋고, 향도 좋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뿌리는 게 아니라, 온전히 내가 기쁘기 위해 뿌리는 것이다. 야단법석을 부린다고 할 수도 있다. 사람은 사람 사이에 산다지만, 혼자 있으면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기회가 생긴다.


인테리어 하나가 나를 이렇게 신선하게 할 수도 있다니, 재밌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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