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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o Apr 25. 2017

눈맞춤 이야기

새삼스럽게도, 눈만으로도 한 순간이 기억될 수 있다.

언젠가부터 눈 맞추는 것이 영 어색하다.


뉴욕 Le Bernardin이라는 식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웨이터 분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빵을 다 먹지는 않았는지, 더 달라고 하는 것은 없는지 알기 위해 보는 거겠지만 영 부담스러웠다. 다른 곳을 보는 척하면서 힐끗힐끗 봤는데도 나를 보고 있어서 민망했다. 근데 계속 보다 보니 눈이 참 잘생기셨더라. 칭찬 반, 부담스럽다는 뜻 반으로 "눈빛이 참 강하시네요"라고 했더니 흡족해하면서 "감사합니다"라고 하셨다.


문화 특성상 미국은 눈을 또렷이 보는 게 예의라고 들었다. 그걸 여실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회사에서는 보고하면서 부장님들 빤히 보면 한 소리 하신다. 자신감의 표현이었는데 그렇게 봐주시지 않는다. 그래, 내가 눈 맞춤을 어색해하게 된 이유는 다 회사 때문이다! 산업재해로 신청이라도 해야 하나.




한 때는 나도 눈을 감상하고 다녔다. 눈은 찬찬히 뜯어볼 곳이 많더라.


독일에서 교환학생 할 때, 같은 조에 러시아 여자애가 있었다. 또렷이 보이는 방사형 홍채 무늬에다가 짙은 에메랄드 색 눈동자를 가졌다. 그때만큼 사람 눈을 뚫어져라 본 적이 없다. 눈동자가 인상적이어서 표현을 하고 싶었는데 적당한 말을 찾는데에 제법 애를 먹었다. 20년 넘게 한 번도 눈동자에 대해서 얘기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 머리 속 사전은 텅텅 비어있었다. 고르고 고른 말이 '이국적이다(Exotic)'였다. 전형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이 새로운 구석이 있었는지, 그 친구가 2주 내내 '내 눈이 어떻다고?'하면서 계속 물어봤다. 키가 180cm에 두 눈동자가 짙은 에메랄드 색인 러시아 여자애가 그렇게 달려와서 물어보면, 은근히 부담스럽다. 내가 겪어봤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


사람 인상을 결정하는 데에는 눈동자보다 눈매의 힘이 크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유달리 차가워보이는 친구가 있다.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한 때 까만 옷에 대리석 같은 표정을 하고 다녔었다. 눈 위아래 길이가 짧다거나 옆으로 길게 째진 건 아닌데, 눈매가 제법 매섭다. 시답잖은 소리를 늘어놔서 웃게 하고 나면, 그게 참 반전이다. 웃을 때 아래쪽 애교 살이 눈을 폭 덮어서는 초승달 모양이 되곤 했다. 워낙 차가워 보였던 탓인지 사람이 그렇게 순해 보일 수가 없다.


사람에 대한 인상이 변하니 눈매가 다르게 보이는 경험도 있었다. 5년 전만 해도 외삼촌들이 그렇게 무서웠다. 얼굴은 호랑이 상에, 목소리는 걸걸했다. 말씀하실 때 높고 낮음, 쉬는 타이밍마저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그 무엇이 있었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조금씩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더니, 2주 전에 뵈었을 때는 편하게 말씀을 드릴 수 있었다. 기억하기로 5년 전에는 위로 째진 눈이었는데, 이번에는 옆으로 평평하게 흘러가는 눈매였다. 실제로 눈매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기분 탓이었겠지만, 색다른 경험이었다.


눈썹도 인상을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 친구가 인상이 달라진 게 신기해서 어디가 바뀐 건지 고민한 적도 있다. 그게 눈썹이었던 걸 알고 혼자 개운해하곤 했다. 그 이후로 "눈썹이 잘 생겼다"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새삼스럽게도, 눈만으로도 한 순간이 기억될 수 있다.


책에서 본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온전히 내가 느낀 것이라 기억이 더욱 또렷하다. 사실 내 눈도 남다르다. 위아래 높이가 좀 짧고 논쟁의 여지없이 옆으로 째졌는데, 심지어 좌우 눈매가 비대칭이다. 아직까지 나 같은 눈 못 봤다. 제각기 다르다는 점에서 눈은 도장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보냈던 시간에다가 그 도장을 큼지막하고 시원하게 찍어두고 싶다. 그대로 그 시간을 그 사람들 머리 속에 넣어둘 수 만 있다면야 더없이 기쁠 것이다. 눈맞춤을 하면서 내 눈을 한 명 한 명에게 제대로 홍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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