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오늘과 나의 옛날을 잇다
2017
“아가야. 엄마 봐봐. 여기 봐봐. 까꿍!” 배밀이를 하며 잘 놀던 아기는 잔뜩 얼어붙은 채로 있었다. ‘??? 엄마, 방구석에서 난데없이 갑자기 뭐 합니까?’ 마치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사진을 하도 찍어 대서 스마트 폰 찰칵은 익숙한데 새로운 물건, 카메라는 낯선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카메라를 만지니 나도 영 어색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원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아뿔싸. 사진 찍는 방법을 다 잊은 것인가. 물론, Auto 모드로 해놓고 찰칵찰칵 하면 되는데 내가 원하는 모습은 내 눈으로 바라보는 아기의 모습이어서 다시 그 방법을 터득하기까지 셔터는 쉴 새 없이 일했다. 사진 수업 때 배운 책도 찾아보고 카메라 설명서도 뒤지면서 갑자기 열의가 타올랐다.
어느 휴일 오후, 아기는 아빠 무릎에 앉아서 부녀가 놀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또 난데없이 카메라를 조용히 가져왔다.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찰칵거렸다. '찰칵찰칵!' 아빠는 이런 내 모습이 익숙한지 나의 작업에 묵묵히 임해줬다. 몇 번의 도둑 촬영 결과 내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왔다. 아빠와 놀면서 예쁘게 웃는 아기를 사진으로 남기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과 뿌듯함이 내 몸을 감쌌다. 이 모습을 내 눈에만 담았다면 너무 아까워서 억울할 뻔했다. 그래서 사진을 찍었다. 내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습에 최대한 비슷하도록 셔터를 누르고 또 눌렀다. 그렇게 집에서 아기와 놀다가 문득 카메라로 남기고 싶은 순간이 더러 생겼다. 유독 햇볕이 더 따뜻하게 집안에 들어올 때나, 그 햇살 아래 아기가 자연스럽게 잘 놀고 있을 때, 그리고 오늘 표정이 좋을 때는 더 그랬다.
첫돌이 지나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 봄이 찾아왔다. 화창한 날씨에 반해서 자주 산책하러 나갔는데, 자연과 함께하는 아기의 모습도 무척 사랑스러웠다. 놀이터나 집 근처 공원을 둘이 지나가다가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발견하면 휴일에 셋이 나와서 사진을 찍었다. 나는 자연에 있는 아기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았고 그 자연스러움을 유도하기 위해 아빠가 바빴다. 산책길 벤치에 앉아서 아빠를 쳐다보는 모습, 아빠 손잡고 걷는 모습, 놀이터 기구에 처음 앉아 신기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담은 표정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기가 처음 가는 곳에도 늘 카메라를 가져갔다. 야구장, 수족관, 첫 여행지에도 무거운 카메라를 가져가서 아기가 처음 마주하는 순간을 기록했다. 새로운 장소에서는 찍은 사진 대부분에는 아기의 피곤한 모습이 물씬 묻어있다. 무엇보다 촬영자인 내가 힘들어서 썩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오기란 어려운 미션이었다. 여러 장소에서 사진을 찍어 보면서 스스로 무리하지 말자는 결론을 냈다. 나에게 좋은 사진이란 편안하고 좋은 표정을 담는 것인데, 그 당시 나의 모델은 몸이 힘들면 엉엉 우는 나이였다.
부모님들 댁에서도 사진을 종종 찍었다. 늘 그렇듯. 찍는 듯 마는 듯하면서 촬영했다. 어른들도 카메라 앞에서는 어색해하시기에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을 포착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기를 바라보는 부모님들의 눈에는 사랑이 넘친다. 30여 년 전 당신들의 자녀를 안았을 때 표정이 이러셨을까. 우리 부부는 너무 어려서 기억 못 하는 그분들의 표정을, 우리 아이를 보시는 시선에서 느끼며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 훗날 아기가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아기가 태어나고 천일이 되기 전까지, 돌아오는 백일마다 특별한 사진을 남겼다. 백일마다 이만큼씩 컸음을 확인하고 싶었는데, 아기도 그 날을 아는지 협조를 꽤 해줬다. 늘 그렇듯 좀 더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고 싶었던 나는 천일에 가까워질수록 아기의 웃는 모습이 금세 나오는 모습에 뿌듯함과 행복함으로 셔터를 눌렀다.
한창 재잘재잘 말을 하는 우리 꼬마는 종종 아기 때 사진을 보며 이렇게 묻는다. “엄마는 왜 사진에 없어?”
“이 모든 사진이 엄마 눈으로 바라본 우리 태리 모습이야. 엄마가 사진 찍어서 그래.” 그렇다.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든다. 나와 함께 한 사진은 몇 장 없고 그마저도 추레한 모습이기에 자주 꺼내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이렇게 내 시선으로 너를 사랑하는 시간을 사진으로 남기니 순간이 영원이 된 것 같아 참 기쁘고 감사하다. 돌아보면 커다란 행복이 자리잡은 육아가 아득한 꿈이 아니었음을 사진이 확인해 주는 것 같다.
1987
찰칵찰칵. 사진은 순간을 영원으로 만든다. 대학 새내기 때 처음 나만의 디카를 마련했다. 어느 날 친구가 찍은 배경 날린 인물 사진을 보고 카메라에 호기심이 생겼다. 친구는 백만 원이 넘는 고가의, 흡사 무기 같은 DSLR을 능수능란하게 가지고 노는 것 같았는데, 그 결과물이 참 멋져 보였다. 나도 그런 사진을 찍고 싶은 욕망이 피어 용돈을 모아 어렵사리 올림푸스 디지털카메라를 사게 된 것이다. 처음으로 필름이 아닌 메모리로, 인화를 기다리지 않고 뷰 파인더로 이미지를 확인하는 디카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대학 생활 중에도 늘 찰칵하며 카메라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과에서 전담 찍사(사진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나만의 사진기가 생기기 전에는 집에 언제 샀는지도 모르는 일반 사진기가 있었다. 운동회나 소풍처럼 학교 행사가 있을 때, 명절이나 생일 등 집안 행사가 있을 때 원통형 필름을 사 와 카메라에 끼우고 렌즈가 노출되게끔 작은 뚜껑을 열어놓고 빨간색 셔터를 눌렀다. 작은 창을 통해 알아서 구도를 잡고 반대쪽 눈은 찡그려 하나 둘 셋!이라고 외치며 찰칵댔다. 서른몇 장 정도의 필름을 모두 사용하면 ‘윙~~’ 소리를 내며 돌돌 말렸던 것 같은데, 그걸 가지고 근처 사진관에 가서 인화를 맡겼다. 며칠 후에 오라는 연락을 기다려 찾으러 가면 약을 담은 것처럼 두툼한 봉투에 인화한 사진이 가득 있었다. 가게 문을 나오자마자 걸음을 멈추고 처음부터 끝까지 넘기며 내 얼굴만 찾아보았다. 가끔은 기대했던 사진이 인화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하고 실망했는데 사연은 빛이 너무 많이 들어갔거나 반대로 너무 없어서 NG 컷이 된 탓이었다.
언젠가 카메라가 고장이 난 모양인지 집에 멀쩡한 카메라가 없었다. 고등 수학여행 때 문구점 혹은 슈퍼에서 일회용 카메라를 구매해 제주도 수학여행 사진을 남겼다. 작용 법이 어렵지 않고 가벼워 꽤 유용하게 썼다. 필름이 다 차게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와 사진관에 가서 필름을 맡기고 며칠을 기다려서 사진을 찾아왔다.
나의 첫 사진은 생후 5개월 무렵 6촌 친척의 백일 잔칫상에서 찍은, 그야말로 남의 잔칫상에 주인 행세를 한 사진이다. 알고 보니 진짜 백일 사진은 서울에 있던 고모가 공수해온 사진기로 열심히 찍긴 했었으나 카메라 뚜껑이 닫힌 상태여서 모든 사진이 안 찍혔던 것이다. 나와 한 달 차이로 태어난 친척 친구의 백일잔치에 가서 늦은 기념을 남긴 것이 나의 첫 사진이 되었다. 사진기가 귀한 시절인데도 돌잔치나 많은 친척과 함께한 여행 같은 큰 행사에는 사진을 많이 찍으신 것 같다. 누가 찍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억이 선명해지는 다섯 살 무렵에는 아빠와 함께 사진을 찍은 그 순간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아빠는 나를 안고 “저기 봐봐.” 하면서 사진기를 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아빠의 속삭임으로 나는 정면을 응시하는 사진이 있다. 커갈수록 기억은 진해져서 사진을 찍으며 들었던 부모님의 농담과 웃음소리도 생생하다. 그 사진에는 웃음과 행복한 기억이 같이 담겼다.
학교에 다니면서 소풍이나 수련회, 수학여행을 갔을 때는 전담 사진작가를 대동했다. 관광 포인트마다 반 친구들은 한데 모여 어색한 단체 사진을 찍어야 했다. 소풍이 끝나면 반마다 인화된 사진이 뿌려지고 그 사진을 원하면 장당 천 원 정도를 내고 구매할 수 있었다. 그렇게 찍힌 사진은 훗날 졸업앨범 뒷부분에 깨알 같은 얼굴들로 모여 있었다.
대학생이 되니 대동제나 MT 같은 행사가 있기도 했지만 그 와는 별개로 사진 찍는 취미가 생겼다. 봄에는 꽃을 찍고 과제를 위해 박물관, 미술관을 갈 때, 아니면 그냥 출사 하기도 했다. 3학년이 되어 사진 촬영에 관한 교양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깊이 배우면서 나도 DSLR을 손에 넣게 되었다. 당시에도 고가여서 중고로 구매하였고, 삼성테크윈 카메라였다. 렌즈를 갈아 끼우는 손맛이 가히 예술이었다. 수업 시간에 배웠던 대로 조리 갯값과 셔터 속도를 조절하며 같은 장면을 여러 차례 찍었다. 한동안 지나가는 개미도 찍을 정도로 카메라에 열중하기도 했다. 사진은 빛의 예술이라더니 카메라 조작으로 변하는 빛의 담기가 사진이라는 결과로 나타나니 그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꽤 무거운 카메라 바디와 렌즈 2개, 청소를 위한 몇 가지 도구를 가져 다니니 커다란 카메라 가방도 있었다. 어느 순간 가방이 귀찮아져서 그냥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면 촬영 후 묵직한 어깨 통증으로 애먹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카메라는 별스럽지 않은 피사체를 열심히 찍는 주인 탓에 열일 했다. 렌즈에는 없어지지 않는 때가 묻기도 하고 너무 혹사했는지 내 눈에는 카메라가 너덜거렸다. 그쯤 신입사원 수습을 마친 기념으로 나에게 선물을 했다. 이번에는 펜탁스 DSLR이었다. 렌즈도 하나 추가하니 내 월급의 반 토막이 카메라 값으로 나갔다. 그래도 행복했다. 더 많은 사진을 찍어서 행복을 더한 삶을 꿈꿨다. 그렇게 나의 세 번째 카메라는 가끔 여행 갈 때만 바람을 쐴 뿐, 주인은 회사에 있고 카메라에는 먼지만 쌓여갔다.
시간이 흘러 엄마가 된 주인이 세 번째 카메라를 어루만져 보았다. ‘오랜만에 찍는데 기억이 나려나?’ 세 번째 카메라가 5년간 방치된 동안 주인은 카메라를 잊고 살았다. 전화기인지 디카인지 헷갈릴 정도로 발전한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대신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인은 정겨운 카메라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카메라에 처음 빠졌던 사진, 인물 사진이 다시금 찍고 싶어 졌다.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마법사가 카메라라고 생각하는데, 그 마법을 부리고 싶은 모델 8개월 태리가 늘 옆에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렌즈를 닦으며 생각했다. '아무리 좋은 핸드폰도 원래 사진기를 따라오기 힘들걸?' 2017년의 어느 가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