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강의실, Perhaps Love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by 시샘달 엿새

딱 이맘때였다. 캠퍼스의 봄에 생기를 불어넣는 새순과 꽃들이 앞다투어 존재를 뽐내는 중이었다. 이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가벼운 옷차림을 한 학생들이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세히 들어보면 학생들마다 중간고사 준비로 볼멘소리 하고 있지만 어쨌든 두 봄이 무르익어가는 시절이었다.


풍경 감상할 틈이 없었다. 기숙사에서 강의실까지 뛰어야 했다. 운동화를 신고 전속력으로 달려 도착한 오늘 수업에 간신히 지각을 면했다. 가쁜 숨을 고르고 문을 조심스레 닫았다. 동시에 커다란 계단 형 강의실을 훑어 친구를 찾았다. 언제나 느긋하게 도착해 나를 기다리는 친구는 오늘도 좋은 자리를 맡아 놓았다. 이날은 전공필수 재수강 과목을 듣는 날이었다. 나랑은 영 안 맞는 이 수업은 3학년 첫 수업 때 D가 떠서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전필 D는 인생에 치명적일 것 같아 눈물을 머금고 재수강을 신청했다. 이 안 맞는 수업은 두 번째 만남에도 별로였다.


따뜻한 바깥 날씨와는 달리 커다란 강의실에는 냉기가 흘렀다. 날씨를 만끽할 옷은 얇았기 때문에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팔짱을 끼고 친구와 잡담을 하고 있는데 순간, 웅성거렸던 강의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교단에 교수님께서 올라오셨기 때문이다. 매사 FM 같은 교수님께서 곧 출석을 부르실 예정이기에 모두가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마이크를 통해 교수님 목소리가 들렸다.


“어젯밤에 저희 셋째가 태어났습니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선물을 드릴게요.”

‘선물? 오늘 휴강하나?’ 조용하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술렁거렸다.


“노래를 불러드릴게요. 제가 뮤지컬 배우로 4년 정도 활동했는데, ‘Perhaps Love’라는 곡을 좋아해요. 그걸 불러드릴게요.”


순간 나는 몇 년 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궁’의 'Perhaps Love'인 줄 알았다.

‘교수님이 설마 듀엣 송을 부르시려나?’ 다시 모두가 숨죽이고 있었다.

마이크에서 한 걸음 물러나신 교수님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노래를 시작하셨다.


Perhaps love is like a resting-place a shelter from the storm

It exists to give you comfort

It is there to keep you warm and in those times of trouble

When you are most alone

The memory of love will bring you home


아마도 사랑은 휴식처와 같아요.

폭풍우를 피하는 은신처 같으니까요.

사랑은 편안함 주고 당신을 포근히 감싸줍니다.

당신이 외로울 때 사랑의 기억은 당신을 안식처로 이끌어 줄 거예요.



강의실은 순간 무대가 되었고 우리는 청중이 되었다. 노래에 심취한 교수님의 목소리는 시간을 멈추게 했다. 늘 딱딱한 신명조 글꼴 같은 느낌의 교수님이셨는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평범한 30대 남자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노래가 끝나고 동시에 터진 박수와 함성이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였다. 딱 봐도 복학생인 것 같은 학우들은 기립박수를 치며 좌중의 흥을 돋웠다. 이어진 소감에서는 딸 셋 아빠의 행복한 순간을 주체하지 못하셨다. 내가 바라본 교수님의 표정에는 어제 태어난 따님과 아내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다. ‘대체 이 행복은 어떤 느낌일까?’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생산운영관리 수업에서 인생의 영화를 찍을 줄이야. 봄에 찾아온 생명의 기쁨은 나에게도 벅찬 느낌을 전해주었다. 아직은 먼 훗날의 이야기 같지만 이상하게도 묘한 설렘이 내 가슴속에 박히게 된 순간이었다. 그날 밤 기숙사에 돌아와서 이 느낌을 기록했다. 그리고 미니홈피에 오늘의 'Perhaps Love'가 흘러나오도록 도토리를 사용했다.


시간이 지나 종강을 했고 목적대로 D는 면했다. 지금은 성적도 기억나지 않는 이 수업은 영원히 멈춰있는 캠퍼스의 봄을 오늘의 나에게 데려다준다.


https://www.youtube.com/watch?v=dDra-5DG3J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