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You are what you eat.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
이 말대로라면, 대학생 때 나는 인스턴트였다. 급식과 집 밥으로 편안하게 살던 시절을 졸업하며 스무 살이 되면 매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줄 알았다. 착각은 역시 오래가지 못했고 가벼운 주머니는 선택지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아침에는 늦게 일어나니 안 먹으면 되고, 점심은 수업 끝나고 식당에서 먹으면 된다. 저녁은 학생식당에서 간단히 먹거나 약속을 만들어 먹곤 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먹고사는 문제가 더 힘들어졌다. 특히 수업이 없는 날이거나 방학이 문제였다. 학생식당은 멀어서 귀찮고, 정문에 모여 있는 식당은 더 멀어서 귀찮았다. 그리고 기숙사 식당은 일찍 일어나야 밥을 준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막막했지만 늘 방법은 있다. 인스턴트가 인스턴트를 먹으면 된다.
날을 잡아 룸메이트와 함께 장을 보러 갔다. 즉석 밥 한 꾸러미, 도시락 김 한 아름, 깡통 참치와 햄, 3분 카레 몇 개. 매점에서는 비싼 컵라면도 몇 개 고르면 어느새 바구니가 가득 찼다. 낑낑거리며 기숙사에 도착해서 책상 한편에 진열해놓았다. 며칠간 양식을 보고만 있어도 흐뭇했다. 이 양식은 여러 사정으로 바깥에 못 나갈 때나 집 밥이 그리울 때 마음먹고 열어 볼 것으로 다짐했다.
그러다 적당한 때가 되면 고심 끝에 몇 가지를 골라 지하 매점으로 갔다. 매점 쪽 한구석에 전자레인지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딱 봐도 실험을 한 모양인지 이것저것 넣어본 티가 나서 찝찝했지만, 별수 없었다. 기계가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즉석 밥부터 조심스럽게 비닐 뚜껑을 열어본다. 선 따라 조금만 열고 2분 10초 돌려야 갓 지은 밥 느낌이 났다. 두 개를 같이 돌리면 그 맛이 안 나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로를 위해 따로 돌리는 게 좋다.
밥을 돌려놓고 컵라면에 물을 붓는다. 해물이 당기는 날에는 새우탕, 외국 음식이 생각나면 짜파게티와 스파게티를 준비해본다. 그래도 반찬이 모자라니까 3분 카레도 가져왔다. 이거 저거 다 먹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약간 매운맛이 가장 맛있다. 두께 1cm는 되려나 모르겠는 도시락 김도 챙겨 왔다. 나무젓가락과 일회용 숟가락까지 가세하면 주인공 빠진 식탁이 완성된다. ‘삐~~ 삐~~ 삐~~’ 밥이 다 되었다고 소리쳤다. 즉시 뛰어가 아뜨뜨 하면서 양 손가락 끝으로 밥을 모셔 왔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으면 신기하게도 늘 수렴하는 한 가지가 있었다. 이번 주에 집에 가면 냄비에 라면 끓여 먹어야지.
인스턴트 낭만도 있었다. 봄비든 가을비든 계절을 짙게 하는 비가 꼭 내려야 하는 날이었다. 오후 수업을 어정쩡하게 마친 서너 시쯤 되면 기숙사에 아무도 없다. 어두컴컴한 오후가 세상을 조용하게 만들고 빗소리와 빗물이 나를 밀착해 감쌀 때 내 발걸음이 바빠졌다. ‘책상에 튀김 우동이 있을 거야. 없으면 매점에서 사자.’ 그렇다. 비 오는 날에는 우동이었다. 나의 마음을 빼앗아버린 튀김 우동은 그런 날 그 시간에 먹어야 제맛이었다. 잰걸음으로 기숙사에 도착해 우산 물기를 팡팡 털고 방에 들어갔다.
묘한 온기가 나를 반겼다. 재빨리 방안을 훑어보니 역시 나뿐이었다. 이런 자유가 몹시 설렜다. 그러나 이러고 있을 틈이 없다. 재빨리 튀김 우동을 찾아 매점으로 갔다. 다들 어디 갔는지 라면용 온수도 오랜만에 콸콸 나왔다. 조심스럽게 물을 담아 방으로 들어왔다. 그 사이 3분이 지난 것 같았다. 뚜껑을 조심스레 열고 젓가락으로 사정없이 헝클었다. 마음이 급했는지 설익은 것 같다. 기다리자. 조급하면 맛을 잃는다. 옷을 갈아입고 다시 찔러보면 익었다. 미역과 소용돌이 햄, 튀긴 유부가 귀엽게 모여 있다. 경건한 마음으로 국물부터 들이켜면 내가 선택한 컵라면의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반(反) 인스턴트 운동도 시도했었다. 눈 오는 겨울에 자연 냉장고를 만든 것이 효시였다. 전국 곳곳에서 모인 친구들이 하나, 둘씩 고향 반찬을 가져와서 저장하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다. 넓은 창틀에 플라스틱 반찬 통을 올려놓고 줄을 동동 매어 책상다리에 묶어 놓았다. 교묘하게 햇볕을 피한 그곳은 지금보다 훨씬 겨울 같은 날씨였기에 냉장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자연이 숙성시킨 총각김치는 아삭 소리와 함께 그 맛이 가히 예술이었다.
그러나 예술도 잠시, 창틀 냉장고 금지령이 떨어졌고 머리를 쓰고 쓴 어떤 친구는 비상구 계단 한쪽에 반찬을 모아놓았다. 콩자반, 진미채 무침 같은 종류였는데 집 밥에 허기진 우리는 참 아슬아슬한 행복을 누렸다. 하지만 이마저도 미화 이모님의 진심 어린 걱정을 들으며 운동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너희 배탈 날 수 있어. 뭔지는 알겠지만 이렇게 보관하지는 마. 알았지?”
나의 인스턴트 생활은 인생 최다 고민인 ‘오늘 뭐 먹지’를 고민한 결과였다. 그리고 인생은 먹고사는 문제에 봉착하며 매일이 이어지는 것임을 알게 해 줬다.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이렇게 한 끼 먹을수록 꿈이 커지고 작아지고 했다. 쓰러지기도 했지만 집에 내려가 집 밥을 먹고 채소와 과일도 보충하며 다시 일어나서 돌아왔다. 그 시절 하도 먹어서 인스턴트는 딱히 당기지가 않는다. 그래도 그때 모둠 식량을 보면 한 번은 먹어보고 싶기도 하다. 그때 나눴던 말, 맛, 그리고 내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