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달걀노른자를 깨뜨린 H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by 시샘달 엿새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수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신문을 읽다가 문장으로 읽는 책 코너에 소개된 『데미안』의 유명한 문장을 발견했다. 늘 그렇듯 제목만 알고 읽어보지 않은 책 중 하나였는데, ‘알’과 ‘깨다’라는 단어가 유독 내 안에 들어왔다. 심상에 젖어 있는 찰나 곧이어 대학 시절 내가 알을 깨도록 수차례 나를 두드린 친구, H가 떠올랐다. 어느 날 H와 나는 학교 앞 분식점에서 김치볶음밥을 주문했다. 드디어 나온 접시에는 반숙 달걀프라이가 얹혀 있었는데 반숙을 못 먹었던 나는 난감해했다. 그녀는 갑자기 노른자를 톡! 터뜨리더니 빨간 김치볶음밥과 쓱쓱 비벼주었다. 이상하면 뱉을 생각으로 한 입 먹었는데, 세상에 이런 맛이 있다니. 왜 모르고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H가 깨뜨린 노른자에 감탄했다.



H를 처음 만난 스무 살 2월. 무척 귀여운 모습의 그녀는 반전 같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했다. “야! 너는 나만 믿고 따라와.” 순간 너무 충격적이었지만 이상하게 그 말에 믿음이 생겼다. 갓 상경한 나는 지하철도 제대로 못 탔는데 그 친구는 내 두려움을 간파했는지 수강신청부터 점심 메뉴 정하기, 다양한 학교생활, 심지어 명동이나 강남을 가는 가장 빠른 방법 등 모든 것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교양 수업도 H가 선택한 대로 따라 들었다. 이 아이는 어떻게 이런 다양한 문화를 알까 싶었는데 점차 H가 보여주는 세계에 나도 매료되었다. 1학년 1학기 모든 수업을 함께 들으며 같이 시험공부도 하고 크고 작은 과 행사에 참여도 하면서 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었다.



“너 이거 해봐.” H는 도전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양한 교내외 정보에 능통했다. 마케팅에 관심이 많던 H는 일찌감치 광고동아리 회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신앙심이 깊었던 그녀는 학교 밖 일에도 항상 최선을 다했다. 반면 나에게 도전이란 두려움이었다. 할까 말까. 실패할 수 있으니까 그냥 하지 말자. 그래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내게 H는 나와 어울리는 도전을 부추겼다. 중앙도서관 근로 장학생 모집 공고를 알려주어서 나는 꽤 짭짤한 용돈 벌이를 했고 너도 영국을 가보라는 말에 1년 반 동안 철저히 준비해서 교비 연수로 진짜 영국에 다녀왔다. 이렇게 직접적인 깨뜨림 외에도 H의 영향으로 나는 전공 외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한 걸음씩 내딛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나에게 그녀가 없었다면 모르고 살았을 일들이다.



항상 똑같은 과목을 들었던 사이였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우리는 달라졌다. H는 경제학과 마케팅을 좋아했고 나는 재무관리와 금융을 좋아했다. 관심 분야가 달라지니 다른 동아리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자연스럽게 만나는 사람도 달랐다. 그러던 어느 날 H는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나를 영국에 보내 놓고 내가 돌아오니 그녀는 또 미지의 세계로 향했다. H가 없는 캠퍼스에 덩그러니 남겨지니 어딘가 허전했고 나는 H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한 학기가 지나고 만난 H는 더 큰 세계를 품었다. 두 눈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싱그러움이 담겼다. 나는 곧 금융권 원서 쓰기에 돌입할 예정이라 눈 밑이 시커메졌는데 H는 어쩐지 여유가 느껴졌다. 그녀의 세계는 늘 푸르렀다.



졸업을 앞두고 우리는 떠나기로 했다. 그녀의 방식으로, 무작정 비행기 표부터 구매하고 일정을 꼼꼼히 세웠다. 스물네 살 유월에 만난 제주도는 수학여행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친구와 단둘이 처음 떠난 여행에 살짝 겁이 났지만, H와 함께여서 처음 그대로의 믿음이 단단하게 자리했다. 지도를 보며 버스를 타고 발길을 디디면서 우리만의 여행을 만들었다. 갈치조림, 오분자기 뚝배기를 먹기도 하고 라면을 끓여 먹는 그 모든 순간이 즐거웠다. 숙소 뒤 바다를 바라보는 그네에 나란히 앉아 제주도의 푸른 밤 아래 파도 소리를 들으며 나눈 이야기가 여전히 생생하다. 그날 우리가 나눈 것은 아마도, 영원히 반짝이는 푸른 별일 것이다.



우리는 졸업했고 둘 다 취업이 안 됐다.

우리는 취업을 했고 둘 다 원하는 분야에서 일했다.

우리는 결혼을 했고 둘 다 딸을 품에 안았다.

지금 H는 워킹맘으로 나는 전업맘으로 살고 있다. 비슷한 듯 다르게도 사는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도 스무 살로 돌아간다. 대학 시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H였다. 스무 살 내 김치볶음밥 위 달걀노른자를 H가 깨뜨리며 나는 내 알을 깨기 시작했다. 우리 둘, 황혼에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그녀가 내게 항상 말했듯, 우리의 미래는 늘 기대가 된다.

상해 여행을 다녀와서 아큐정전을 원서로 읽자던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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