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교실에서 잔 까닭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by 시샘달 엿새

나쁜 마음은 없었다. 고1이 되면서 특히, 보충수업 때 잠을 많이 잤다.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책상에 엎어지기도 했다. 분명 나는 자려고 하지 않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수업 종이 울리는 중이거나 참다 참다 못 참으신 선생님의 복잡한 눈동자가 느껴지곤 했다. 평소 왁자지껄한 쉬는 시간도 어떤 날은 교실에 수면제가 뿌려졌는지 반 친구들 모두가 잠이 들기도 했다. 참으로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우리 모두를 깨우는 일은 다음 수업 선생님의 몫이었다. 우린 여기에 왜 있는 걸까, 왜 교복을 입고 불편하게 자는 걸까. 그때는 미처 하지 못했던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고등학생 시절 입시만을 위해 학교에 가는 것 같았다. 매달 치는 모의고사에 중간 기말고사, 학력평가, 수행평가까지 점수로 평가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우리는 처음부터 어색했다. 하긴 해야겠지만 무언가에 짓눌려 압박받는 기분이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차분히 생각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늘 쫓기듯 시험을 치르면 다른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고 더 힘들었던 것은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지만 성적은 유가증권처럼 오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단지 희망만 있을 뿐이었다. 나중에는 이마저도 희미해졌지만.



재차 강조하지만 나는 수업시간에 자려고 하지 않았다. 거의 매일 정규수업 앞뒤로 0교시와 보충수업이 있었다. ‘AM 8 to PM 6’ 일과로 기억한다. 가까스로 도착한 0교시 수업은 젖은 머리카락과 아침의 번뇌로 가득 찼다. 웃고 떠들면서 잠이 서서히 깨면 오전 과목을 듣고 학년별로 점심 급식을 먹었다. 곧이어 식곤증과 사투를 하는 오후 수업이 이어졌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이 되면 예체능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하나, 둘 학교를 떠났다. 나머지 친구들과 온전한 자유였던 저녁 시간을 즐기다가 자유와 시간의 유한함을 느끼며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입학 당일부터 시작한 야간 자율학습은 초저녁 잠이 쏟아지는데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 정석의 집합만 뒤적였었다. 교실 문을 활짝 열어 썰렁한 밤공기를 벗 삼아 졸다가 걸리기도 하고 9시 50분부터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가방을 열심히 싸면서 조금씩 그 생활에 익숙해졌다. 야자는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이어졌다. 고3 때는 12시까지 학교에 있었다. 집에 오면 자정이 넘는데 늘 출출해서 뭐든 먹고 잤다. 신진대사가 왕성한 나이였지만 소화시키고 자려면 1시는 넘겼던 것 같다. 다음날 8시까지 학교 가려면 하루도 평온한 아침이 없었던 것 같다.



방학도 학기와 다르지 않았다. 1, 2주 정도의 진짜 방학을 제외하면 기본과목 중심의 보충수업을 위주로 나머지는 야간 자율학습으로 채워진 나날을 보냈다. 여름에는 홀로 움직이는 것 같은 선풍기 소리 혹은 매미 소리에 잠이 들었고 운 좋게 라디에이터 근처 자리에 앉은 겨울에는 뜨끈하게 감싸는 온기에 나도 모르게 몽롱해졌다. 우리도 알고 있었다. 집에 있으면 공부를 더 안 할 것이기에, 학교이기에 가능한 공부 환경에 고마움을 느끼며 급기야 고3 때는 야자 시간을 더 늘려달라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성적이 우리의 삶에 중요한 것임을 점차 인지하면서 잠을 물리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수업시간에는 선생님께 양해를 구해 교실 뒤에 있던 사물함을 책상 삼아 서서 수업을 받거나 찬물에 세수하고 왔다. 자율학습 시간에도 마찬가지 방법을 쓰면서 점차 차의 세계에 빠져 커피, 녹차를 마시며 정신을 차려보았다. 선생님들께서도 우리들의 잠 기운을 없애려 많이 애쓰셨다. 그중에서도 수업과 관계없는 이야기만 나오면 모두의 정신이 말짱해졌던 것 같다. 이렇게 우리는 빛나는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을 교과서와 문제집에 둘러싸여 집보다 학교에서 가족보다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쉬는 시간 쪽잠도 활용했지만 수업 중 감기는 눈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잠을 무찌르기 위해 스스로 노력을 했으나 어쩌면 선생님들의 배려를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중에 자고 있으면 얼마나 기분이 언짢으셨을까. 요즘 나오는 우리 아이들의 ‘스라밸(Study and life balance)’을 지키자는 EBS 광고를 보니 우리를 보는 모습이 딱하셔서 크게 혼내지 않으셨던 것 같기도 하다. 3년 동안 훌륭하신 선생님들과 좋은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어서 지금은 친구들만큼이나 그리운 분들로 남아 있다.



이 숱한 잠에 대한 기억마저도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추억으로 남았다. 늦었지만 그 시절 우리를 많이 이해해주신 우리 고등학교 선생님들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을 보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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