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
처음에는 그냥 덩그러니 놓였었다. 갑자기 변한 세상은 나에게 어찌할 바를 모르게 했고 덩달아 주어진 자유는 시간이 무한한 줄 착각에 빠뜨렸다. 여러 강의와 심지어 교수님을 선택하는 것도 내 몫이라니, 어떤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한 학기를 결정하는 것은 일종의 모험 같았고 그렇기에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입학 후 어찌어찌 과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수강신청을 하고 그마저도 교양 영역은 스스로 선택해야 했다. 다행히 단짝 친구를 빨리 만나 이 부분은 그녀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어쨌든 모든 걸 선택하는 대학생이 된 나는 어리둥절한 스무 살을 시작하였다.
그런 상태에서 수업을 받고 가끔 서울 구경도 하면서 놀고 시험 보고 방학이 되면 집에 내려가던 시절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2학년 어느 날, 나는 어떤 이유로 재학생 의견을 듣는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때 처음 어떤 교직원분을 직접 뵙게 되었다. 가끔 증명서 발급을 위해 찾았던 행정실 같은 곳에서 마주쳤던 분과는 다르게 뭔가 다정한 인상이 여운이 남았다. 그 행사가 끝나고 필요한 일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연락해도 된다고 말씀하셔서 꽤 놀랐던 기억이 남아있다. 아니, 대학에서도 이런 느낌을 얻다니. 처음이라 좀 어색하긴 했지만 왠지 기분은 좋았다.
개강이 거듭할수록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점차 커졌고, 우리가 내는 등록금에는 수업 외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학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기업처럼 모든 부처가 필요했는데, 그중에서도 학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서도 많았던 것이다. 어느 날부터 자연스럽게 학교 홈페이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인기가 많았던 프로그램은 경쟁이 치열해서 학점은 물론 영어 성적이나 다른 스펙(!)도 필요했다. 고학년이 되면서 스펙에 목말랐던 나도 여느 학생들처럼 동분서주 바빠졌다.
그러고 살고 있는데 다시 그분을 만났다. 2년 만의 일이었다. 재학생들에게 교수 학습법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를 운영하는 부서에서 근무하셨던 것이다. 나름대로 면접까지 통과한 우리는 학교에서 주최하는 특강을 지원하고 학생들에게 홍보하는 역할을 했었는데, 유명 인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가 컸다. 그런데 유명 인사보다 우리를 관리해주시던 교직원분들을 만났던 것이 더 큰 선물이었다. 2년 전 처음 뵈었던 그 교직원 선생님뿐만 아니라 그분의 직장상사이셨던 팀장님과 다른 분들까지도 마음이 갔다.
알고 보면 모교 출신이 많아서 그랬을까, 그분들은 하나같이 다 다정하셨다. 마치 좋아했던 선생님을 만난 것처럼 우리는 비슷한 마음이었고 11년 전 스승의 날에 함께 케이크를 사서 사무실을 찾았다.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데 평소 너무 궁금했던 얘기가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선생님들은 어떻게 그렇게 동안이세요?” 정말, 그분들은 baby face이셨고 늘 웃고 계셨다. 적어도 우리에게만큼은. 그 답이 궁금했다. 우리도 훗날 동안이 되고 싶을 테니까. “너희들 때문에 얼굴이 이래.” 호탕하게 웃으시는 팀장님의 말씀에 우리도 같이 웃었지만 난 정말 동안의 비법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정말, 우리의 에너지가 동안의 비법이라면 나도 캠퍼스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시간이 흐르면서 학교를 떠날 준비를 할 때 사적으로 찾아가기도 하고 또 새로운 정보를 얻고 다른 부서와 이어 주시는 여러 모습에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얻었다. 타향살이에 적이 외로웠던 나는 나도 모르게 의지를 하고 있었다. 졸업 후 가끔 학교에 가면 뵙기도 했는데 시간이 흐른 만큼 퇴직하신 분들도 계셔서 아쉬운 발걸음도 있었다. 당시에는 당연한 건 줄도 알았지만 지나고 보니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참 감사한 기억이 많이 남아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행운은 없다. 내게 있어 대학은 우리를 아껴주는 분들과 함께했기에 가장 소중하고 찬란하다. 갓 얻은 자유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랐던 내게,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기 전에 헤맸던 내게, 세상이 그래도 따뜻하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아무리 각오했다고 해도 졸업 후 마주한 세상은 가혹하도록 시렸다. 그래서 늘 그리웠다. 길었던 터널을 혼자 걷다가 내 자리를 드디어 찾았을 때, 가장 먼저 그때가 떠올랐다. 그 시간을 찬찬히 돌아보니 이제는 내가 그곳에서 그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커지는 이유인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eEWB_Y3w-j8
- 그 시절 자주 들었던 음악
‘그런 사람이기를’ by.브아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