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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Apr 02. 2020

집콕 육아 상생을 위한 잔머리

너를 사랑하는 시간

“엄마, 나 심심해. 같이 숌꿈노리(소꿉놀이)하자.” 

어우 난 안 심심한데. 평화롭던 내 눈동자는 갑자기 흔들리고 이내 머리를 굴려본다. 여기서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오늘 하루가 결정되기에 중요한 순간이다. 주위를 쓱 둘러보며 같이 할 놀이가 있는지 찾아본다. 엄마도 같은 놀이 반복은 이제 정말 지겹다. 순발력이 발휘되지 않는다면 꼬마에게 물어본다. “오늘 엄마랑 뭐 하고 놀까?” 꼬마는 갑자기 눈을 굴리며 곰곰이 생각한다. 고심 끝에 아까 말했듯이 숌꿈노리라고 말한다. 그래, 이 정도 됐으면 하자. 해야지.




요즘 가장 좋아하는 소꿉놀이 장난감은 미니 햄버거 가게. 꼬마 손가락보다도 작은 감자튀김과 햄버거 재료로 참 열심히도 만든다. 사장님도 됐다가 손님도 됐다가 별안간 바뀌는 역할에 혼란스럽지만 연연해하지는 않는다. 꼬마와 엄마는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 햄버거를 조몰락거린다. 내 손바닥만 한 프라이팬에 베이컨, 패티, 달걀프라이, 빵, 양상추, 치즈, 토마토 죄다 넣고 지글지글 열심히 구워 본다.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그냥 내가 말도 안 하고 재미있게 놀면 어느 순간 본인이 하겠다고 내 장난감을 다 빼앗아간다. 성공이다. 오늘 점심을 고민하며 눈치를 보고 엉덩이를 떼 본다. “엄마!!! 어디가!!!” 앗, 깜짝이야. 실패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감자튀김 장난감도 뒤로 하고 갑자기 TV로 옮겼다. 오늘 교육방송에서는 개학이 늦어져 피폐해지는 가정을 살리기 위해 특별한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었다. 패널들이 웃으며 이야기하다가 화면이 바뀌었다. 순간 꼬마가 좋아하는 뿡뿡이가 나오면서 친구들이 김밥 놀이하는 장면이 나왔다. 우리 모녀는 열심히 화면에 열중했다. 이불을 김으로 삼아 넓게 펼치고 그 위에 아기들이 눕는다. 다른 작은 소품들을 김밥 재료로 삼고 아빠가 이불을 돌돌 말면서 꼬마 김밥을 만드는 장면이 연거푸 나왔다. 꼬마를 힐끗 보니 그냥 웃고 있었다. 그런데 부러움이 뚝뚝 떨어졌다. 소꿉놀이에 지친 엄마는 당장 할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꼬마 김밥을 말았던 아빠 얼굴에는 땀이 흥건했기 때문이다. 모른척하고 다시 나서려는데 올 것이 왔다. “엄마, 나도 김밥.” 맙소사. 그런데 지금은 정말 못 할 것 같다. “엄마 지금 배가 너무 고파서 힘이 없어. 우리 같이 점심 먹고 김밥 만들기 놀이하자.” “그래, 좋아.” 효녀다.



점심을 어떻게 먹긴 했다. 두 식구 먹는 단출한 식탁인데도 늘 언제나 설거지거리는 싱크대 선을 넘는다. 설거지에 집중하는데 웬일인지 조용하다. 이럴수록 더 두려워져서 꼬마를 찾아보니 방에 있는 장난감을 거실로 이사 중이셨다. 맙소사. 오늘 청소 하나도 안 됐는데. 또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여기서 내가 청소 모드가 되면 나는 내 안의 주부 자아와 엄마 자아가 싸우게 되고 결국 아이는 울게 될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청소를 버리자.




청소를 버린 덕에 설거지를 무사히 끝냈다. 지금 이 순간 아이스 아메리카노 원샷이 절실하다. 꼬마 간식과 내 커피를 만들며 집안을 스캔하니 삽시간에 난장판이 됐다. 아니, 꼬마의 유토피아가 완성된 것 같다. 역시 주부 모드를 꺼야 마음이 평온하다. 나름 망중한을 즐기는데, 갑자기 또 느닷없이 집에 있는 모든 공들이 거실로 집합했다. 공을 굴리고 위로 던지고 발길질을 하며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아, 얼마나 뛰어놀고 싶을까. 커피 덕분인지 나의 각성상태는 꼬마에게 측은지심을 느끼게 했고 곧이어 즉흥 놀이를 생각해냈다. 거실로 죄다 나와 있는 소꿉놀이 소스 통을 세워놓고 공을 굴려서 볼링 놀이를 했다. 여섯 개 볼링핀을 세우는 것도 굴리는 것도 스패어 처리도 스스로 하는 기특한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혀서 씻고 싶단다.




오케이. 바로 목욕을 준비했다. 큰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장난감 몇 개를 넣어주니 혼자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인형 목욕도 시키고 꼬마도 씻으면서 바쁜 모양이었다. 평온한 목욕 시간이 꽤 길어 손가락이 퉁퉁 불었다. 목욕을 마무리하고 방으로 와서 머리를 말리는데 내 피로를 날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나 졸려.” 그래 졸릴 만도 하지. 보송보송하게 머리를 말리고 깨끗한 옷을 입으니 잠이 솔솔 오는가 보다. 수건을 정리하는 사이 꼬마 스스로 침대 위에 올라가 잠이 들었다. 나는 자유다.




자유가 아니다. 꼬마의 유토피아를 회수해야 할 시간이다. 살금살금 장난감을 치운다. 무슨 장난감이 이렇게 많은지 내가 장난감을 좋아해서 많이 샀다고 하지만, 이젠 정말 장난감 미니멀 라이프를 꿈꿔야 할 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자아 성찰을 하며 장난감만 치우니 1시간이 훌쩍 갔다. 빨래를 돌리고 저녁 메뉴 생각하고 재료를 다듬으니 또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오늘 내 할 일을 해본다. 아주 잠깐 뭔가를 했을 뿐인데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머리가 덜 말라 까치집을 한 채 일어난 우리 꼬마. 잠깐 내 품에 안겨서 잠을 깨더니 김밥 놀이를 하자고 한다. 그래, 하자. 해야지. 자기 전에 계속 생각했나 보다. 좋아하는 이불을 펼치고 몇 번이나 꼬마 김밥을 말았다. 분홍색 이불은 딸기 김밥, 보라색은 포도 김밥, 하늘 김밥까지. 세 번 말고 타협했다.



아빠 퇴근에 맞춰 저녁을 준비하고 함께 밥을 먹었다. 또 산더미 설거지를 마치고 각자의 자유시간도 가졌다. 되돌아보니 오늘은 안 울었던 것 같다. 아이가 심심하다는 말은 뇌가 심심하다는 의미라는 것을 어디선가 들었다. 그럴수록 함께 놀아야 한다는 책 속의 말씀이 떠올랐다. 확실히 심심할 때 엄마가 함께 하느냐, 피하느냐에 따라 그날 아이의 컨디션이 달라지는 것을 클수록 더 강하게 느낀다. 엄마 아빠의 컨디션은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는 늘 고민으로 남아있다. 꼬마의 웃음으로 피곤이 풀리는 묘약이 오래 지속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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