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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Jan 31. 2023

(미공개 원고) 밥 굶는 나라가 원전 지은 사연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발전소 있었어요. 전쟁이 박살냈지만.


이 글은 올해 봄에 나올 한국경제사 입문 책(휴머니스트)에 수록될 예정이었으나 분량 문제로 뺄 가능성이 98.3%쯤 되는 사이드 원고입니다. 이거 안 넣어도 500페이지 넘거든요.


배경은 이렇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대기업들이 경성 이북에 민영 발전소를 잔뜩 지었는데, 분단 직전부터 남쪽에 가는 전기를 차단하기 시작해 전쟁을 겪고서는 더욱 엉망이었어요. 전기 민영화니 공영화니 하는 논쟁도 사실은 50년 이상 된 논쟁입니다. 어쨌든, 산업발전에 진심이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1950년대부터 이를 갈며 원전을 가져오려고 노력해, 20년만에 상업용 원전을 보유하게 됩니다. 결코 순탄한 과정이 아니었겠지요. 


편집을 전혀 하지 않은 초고이기 때문에 읽기 불편하거나 오류가 있을 수도 있어요. 브런치가 게시글 5개 채워야 이런저런 기능 열어준다고 해서...





원전, 좋아? 나빠?


전 지구에 찾아온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에너지 시장에서 가장 치열한 싸움 주제는 원전이에요. 원자력발전소에서는 핵이 분열할 때 나오는 강력한 에너지로 발전기 터빈을 돌려 전력을 생산하지요. 핵분열을 통해 전기를 얻는 방식은 굉장한 옹호와 강렬한 비토를 동시에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원자력 발전 비중을 늘려야 할까요, 한동안 유지해야 할까요, 그도 아니면 줄여나가야 할까요? 


원자력 발전에는 굉장한 장점과 강력한 단점이 동시에 있습니다. 장점을 꼽자면 저렴하고 효율적이며 환경오염 걱정도 적다는 것이에요. 반면 한 번 사고가 나면 돌이킬 수 없으며 전기를 만들고 남은 핵폐기물은 봉인해서 저장할 뿐, 현대 기술로 완벽한 해소가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원자력발전소를 계속 운영하거나 건설해야 하는지, 아니면 작동을 멈추거나 건설을 그만해야 하는지 양쪽 의견 대립이 뚜렷합니다.


원전 찬성론자: 현실적으로 원전을 없애고 어떻게 청정에너지를 생산할 건데? 신재생에너지가 그렇게 쉽게 개발돼? 아직은 답이 핵발전뿐이야. 경제적으로도, 수출까지 하는 우리 원전 기술을 그냥 버리다니 말도 안 돼!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 석유하고 천연가스가 무기로 사용되는 것 못 봤냐? 21세기에 세계 최정상 선진국들이 에너지가 없어서 추위에 떨던 꼴을 못 봤냐고!


원전 반대론자: 그럼 어떻게 처리할 수도 없는 핵폐기물을 계속 생산할 거야? 게다가, 원전 돌리면 싸고 좋으니까 기업이 다른 신재생에너지에 굳이 투자하지 않는다고! 당장 사탕 먹다가 충치 백만 개 만들 테야? 원자력발전소에 한 번 문제가 생기면 얼마나 위험한지. 1979년 미국 쓰리마일이나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까지 갈 것도 없어.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기억 안 나?


대체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원자력 발전이 우리나라에서 무척 중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실 원자력을 이용한 발전 기술이 그렇게 만만한 존재는 아니에요. 2020년대에도 원자력발전소 건설 기술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프랑스·영국·러시아·캐나다·일본·중국 등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주요 국가들밖에 없습니다. 또 2021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기준 전 세계에 원자력발전소를 운전하고 있는 나라는 32개국뿐이에요. 2020년대에도 이러니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더했겠지요. 사실 원자핵을 분열시켜 전기를 얻을 수 있다는 개념 자체가 100년도 되지 않은 개념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흐뭇할 뿐


옛날 한국인: 나는 요즘 사람들의 찬반 논의 자체가 뿌듯하다네.

요즘 한국인: 왜죠?

옛날 한국인: 어쨌든 원자력 발전 기술이 우리 손에 있으니까 이걸 키우자, 말자 난리인 거 아니야. 1950년대에 찢어지게 가난할 때는 원자력발전소 세우잔 이야기 나왔을 때 다들 그게 뭔지도 몰랐어. 

요즘 한국인: 1950년대요? 그렇게 빨리 원전을 세우자고 했다고요?


시카고대학에서 원자력으로 전기를 얻을 수 있는 기술이 발명된 해가 1942년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원전 도입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해가 1953년, 실제로 뭔가 해보려고 실무진을 꾸리고 계획을 세운 해가 1958년이에요. 이게 얼마나 빠른 논의였냐 하면, 1960년, 세계를 통틀어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는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4개국에 설치된 단 17개였습니다.


1940년대는 핵무기가 실제로 전쟁에 사용됐던 제2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1950년은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이 날카롭게 대립하며 서로에게 핵탄두를 겨누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더더욱 원자력 관련 기술이 극비로, 미국과 프랑스, 영국 같은 오래된 동맹국 사이에서도 관련 정보를 서로 주고받지 않았어요.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보면 세계 최고로 가난한 나라였던 1950년대 우리나라에 원자력발전소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하지요.


옛날 한국인: 1958년에 원전 필요하다고 해서 20년 동안이나 애를 쓰고 공을 들여 1978년에 첫 원전을 세웠지. 그게 바로 지금은 폐쇄된 고리 1호야.

요즘 한국인: 원전 한 기 건설하는 데 20년이나 걸렸어요?

옛날 한국인: 건설 자체에 20년 걸렸겠어? 지어줄 회사 찾아다니고, 그 돈 마련하고, 지어주면 운영 잘하겠다고 설득하고, 이거 지어놔도 절대로 원전 이용해서 핵무기 만들지 않겠다고 신뢰 얻고 그러는 데 걸린 시간이 20년이란 거지.

요즘 한국인: 세계 최초로 상업용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서 전기를 공급하기 시작한 게 1956년 영국이라던데 우리나라 도입 논의는 거의 빛의 속도였네요.

옛날 한국인: 핵에 대한 집착도 있었고 전기가 엄청 급했어. 전기가 처음부터 없었으면 그냥저냥 적응해서 살았을 텐데, 그게 아니라 전기가 있다가, 없어졌거든.

요즘 한국인: 왜요?

옛날 한국인: 우리나라에 발전소 있었어. 도시 사람들은 전기를 자연스레 사용했다고.


해방 당시, 전력 생산시설은 북한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이전에 우리나라에 건설된 발전소는 일본 식민정부가 일본기업과 함께 건설한 발전소들입니다. 당시에는 안정적인 석탄 및 석유 공급이 어렵기도 해서 화력발전보다 수력발전이 여러모로 현실적이었어요. 



일본기업은 발전소를 북쪽에만 지었어


우선 일본의 재벌인 닛치츠(日窒)가 함경남도 부전강과 장진강에 수력발전소를 세웠습니다. 당시 발전소와 전기회사들은 모두 민영이었습니다.


닛치츠의 민영 수력발전소에서는 평양을 거쳐 서울(경성)까지 전기를 보냈습니다. 그 후에도 북한지역에 진출한 일본기업들은 곧잘 발전소와 전기회사를 세웠는데 남한 지역에서는 수력발전소 건설이 지지부진했어요. 원인은 대체로 일본기업들 사이 이권 싸움 때문이었습니다. 일본 식민정부는 무엇보다 일본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했습니다. 당시 기술로는 한반도 남쪽에 경제성 있는 발전소를 짓기 어려웠어요. 그러다 보니 현재 남한 지역은 발전소 부족으로 항상 불안정한 전기 공급에 시달렸지요. 그러다가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고, 일본의 기업들은 우리나라에 굳이 발전소를 더 지을 만큼의 여유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1945년만 해도 우리나라 전체의 발전 설비 89%가 북한지역에 있었고, 남한 지역이 소비하는 전기의 60%는 북한지역에서 공급받았습니다. 북한이 한국전쟁을 일으킬 때 바로 이 약점을 이용해 단전부터 시키기도 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정부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북한보다 전기를 빨리, 많이 만드는 게 무척 중요했습니다. 어떤 정치적 체제가 더 우월한지 증명할 방법 아니겠어요. 게다가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실제로 전기가 매우 필요했으니까요. 이승만 전 대통령은 원자력 발전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학계에서도 자발적으로 연구를 시작했어요. 우리나라 원자력 산업 시작은 당시 민간 학자들의 헌신에 크게 힘입었습니다. 


학자들의 연구와 요구에 따라 정부는 정책과 제도를 준비합니다. 1956년, 우리나라와 미국은 한·미 원자력협정을 체결했고, 1957년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가입했으며 1958년에는 「원자력법」을 공포해요. 선진국의 원자력 산업 발전 추세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노력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본 히로시마 원폭과 함께 끝나면서 1950년대는 어떤 나라든 원자력과 핵무기를 볼 때 공포와 선망을 동시에 드러냈어요. 너무 무섭고, 무서울 만큼 강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1950년대 말, 우리나라에는 미국의 핵무기가 배치됩니다. 1991년 노태우 정부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까지 우리나라에는 미국의 핵무기가 배치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원자력발전소를 짓기는 무리였어요. 미국이 우리나라의 원자력 산업 발전을 돕기로 한 한·미 원자력협정에도 발전용 원자로는커녕 연구용 원자로와 중요한 핵물질 등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주한 유엔군도 우리나라의 발전용 원자로 도입을 반대했습니다. 언제 핵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나라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어놓으면 일이 커지지 않겠어요. 게다가 우리나라는 관심만 있을 뿐 기술도, 기술을 이해할 인력도, 심지어 기술을 가진 회사를 고용할 돈도 아직 없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려면 1960년대가 무르익어야 했습니다. 그때도 우리나라 사정이 여유로웠던 건 아니었지만요.



전기회사 민영화? 공영화? 국영화?


옛날 한국인: 전국에 전기회사가 세 군데 있었거든. 조선 전업, 경성전기, 남선전기. 그게 통합해서 지금 한국전력이야. 민영 회사를 공영화하네, 국영화하네, 아니면 그냥 민영체제로 계속 두네 하고 정치권에서도 말이 많았다고. 발전소도 마찬가지였고.

요즘 한국인: 그때 회사들은 어차피 전기도 다 외국 돈 원조받아서 돌리고, 경영도 부실하고 그랬다고 들었어요.

옛날 한국인: 거의 50년을 식민지 됐다가 전쟁 났다가 했는데 모든 게 예쁘고 아름답게 돌아가면 지금쯤 미국 말고 우리나라가 세계 초강대국 아니었을까?

요즘 한국인: 그렇긴 해요.

옛날 한국인: 어쨌든 결론적으로 싹 통합해서 공기업 세웠어. 한국전력.


그렇게 1961년 지금의 한국전력, 즉 한전이 탄생합니다. 정부, 특히 과학기술처와 원자력연구소는 1960년대 후반이 되자 반드시 원전을 건설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됩니다. 경제가 초고속 성장을 하면서 전기공급량이 수요를 못 따라갔거든요. 


화력발전소로 수요를 채우자니 석탄과 석유를 안정적으로 들여올 자신이 없고, 수력발전소를 더 세우자니 공사 기간도 길고 돈도 많이 들어서 '그 기간에 그 돈이면 차라리 원전'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핵전쟁이 나네, 마네 하는 처지라 원자력 기술도 탐이 나고 말이지요. 1960년대 초반만 해도 어마어마한 초기 투자 비용 때문에 원전 도입을 반대하던 한전도 슬슬 원전 찬성 쪽으로 기울어요.


옛날 한전: 석탄이랑 석유 가격 비싼 거 생각하니 머리가 아찔하네요. 원전, 괜찮을지도? 아니, 이제는 큼지막한 화력발전소 지을 부지도 더 없고요.

전문가들: 원전을 세우지 못하면 우리에겐 매일 밤 시커먼 블랙아웃 뿐이야! 개개인은 참는다고 치자고요. 그런데 공장은 어떻게 돌려서 언제 경제성장을 해요?

옛날 정부: 저기, 그런데, 우리가 돈이랑 기술이 둘 다 없어…. 인프라도 없고, 인력도 없고, 하여튼 있는 게 없어….

전문가들: 그럼 계속 석탄이랑 석유로 발전소 돌려요? 와 석유 엄청 비싸다! 나라 곳간에 달러가 아주 텅텅 비었네요!

옛날 정부: 알았어. 빚이라도 내서 지어볼게.


1950년대는 물론 1960년대까지 사실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은 크게 인기 있는 발전 방식이 아니었어요. 원자력 기술을 가진 나라 자체도 얼마 없었고, 무기화가 두려워 기술 보유국끼리도 교류가 적었습니다. 무엇보다 주요 에너지원인 석유가 무척 저렴했어요. 석유파동 전까지 석유가 배럴당 2달러, 3달러 하던 시절이에요. 싸고 좋은 원유를 펑펑 사다 쓰면 되는데 무엇 하러 무섭게 원자력을 이용하겠어요. 얻을 것에 비해 위험성이 너무 큰 도전이었죠.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얼리어답터


하지만 1970년대가 되며 석유파동이 벌어지고, 원자력 관련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사정이 달라집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기술을 가진 정부와 기업들은 해외에 원자로를 팔아 돈을 벌기로 해요.


바로 그즈음 우리나라는 1년 치 국가 예산의 30% 정도를 투자해서 원전을 짓기로 해요. 1966년 정부는 1974년까지 30만kW급 원전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포함합니다. 1968년에는 IAEA 조사단과 함께 부산 고리에 1호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확정해요. 같은 해 우리는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과 웨스팅하우스사, 컨버스쳐엔지니어링(CE)사, 그리고 영국의 원자력수출공사를 상대로 견적을 달라고 합니다. 1969년에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사와 턴키(turn-key) 방식으로 일하기로 하죠. 


웨스팅하우스사는 효율성은 좀 떨어지지만 대신 안전성이 높은 가압경수로(PWR) 기술을 갖고 있었어요. 정치권에서는 정치적으로 우리나라를 많이 도와주었고 효율성이 높은 가스냉각로(GCR)를 밀었는데, 학계와 기술자들이 가압경수로를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1970년에는 고리 땅에 공사가 시작됩니다. 주민들의 반발이 어마어마했지만, 수년에 걸친 협상 끝에 한전이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며 마무리가 되었어요. 공사 시작 직전까지 계획이 계속 수정되기도 했는데, 결국에는 30만kW였던 발전 용량이 50만kW급으로 확대되고 완공 일정도 1974년에서 1976년으로 바뀝니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돈도 기술도 없는 절대적인 약자였고, 심지어 영어를 구사하는 인력도 드물었는 데다 국제계약에 익숙하지 않다는 데서 발생했어요.


시공 회사: 그러니까, 공사해줄게. 근데 한국 사람들 너무 아무것도 몰라. 그냥 우리가 다 알아서 할게. 우리나라 사람 데려와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온 부품으로 한국에서는 조립만 할 거야.


이런 걸 완성된 건물을 열쇠 돌려서 문만 열고 들어가면 된다고 턴키 방식이라고 하죠. 우리나라 말로는 일괄발주 방식이에요. 턴키 방식은 돈만 내면 모조리 해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런 경우 과정에 참여할 수 없어 기술을 배우기 어렵다는 커다란 단점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갑질의 역사


우리나라는 자료라도 착실하게 챙겨서 공부하려고 노력했으나 그조차 쉽지 않았어요.


옛날 정부: 알았으니까 그렇게 짓고 나서 우리한테 자료만 제대로 넘겨줘. 우리도 공사가 제대로 진행되는지 검토도 해야 하고, 나중에 안전 관리도 해야 하잖아.

시공 회사: 그랬나? 그렇게 해주기 싫은 것 같은 기분인걸요.

옛날 정부: 저기.

시공 회사: 공사비도 미국, 영국, 캐나다에서 각자 쪼개 빌려오면서 뭐라는 거예요. 공사대금이나 꼬박꼬박 갚아내쇼.

옛날 정부: 그런데 계약서가… 아니 여기 왜 영국 회사가 또 끼어들어 있어? 공사 회사가 두 개야?

시공 회사: 아, 뭐 그렇게 됐습니다. 원전 짓는 게 얼마나 복잡한데요. 한 회사가 그걸 다 못하지. 그렇다고 칩시다.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이렇습니다.


… 76년 10월에 준공되어 산업계와 가정에 전력을 공급하게 될 고리원자력 발전소는 … 한국전력은 이 고리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위해 지난해 6월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와 원자로, 증기발생설비, 핵연료공급계약을 맺었고 영국의 「잉글리쉬·일렉트릭」 및 「조지·웜피」와 터빈 발전기 및 원자로 격납용기 건설과 기타 공사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여 19일에 착공하기에 이르렀다 …
(경향신문, 1971.03.19.)


원래 주계약자는 웨스팅하우스였는데, 협상을 통해 계약서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영국의 EEW가 사전 합의도 없이 계약자로 포함되어버릴 정도로 어수선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공사를 시작하고 나서도 순탄하게 흘러간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습니다. 일단 계약했던 기간 내에 공사가 끝나지 않았어요. 60개월 안에 지어주기로 했던 것이, 27개월이나 더 걸렸거든요. 추가 공사 2년 3개월간 발생한 공사 비용을 누가 책임질 것인지도 싸움거리였고, 공사 기간에 석유파동이 발생해 모든 자재의 원가가 오르면서 회사들이 손해를 보느니 공사를 그만두고 싶다며 태업하거나 수시로 현장 사고가 나고, 공사 중에 국제 안전기준을 맞추지 못한 부분이 드러나서 난리가 나기도 했어요. 


그래서 1978년 가동을 시작하고 나서도 고리1호기는 고장이 참 많은 원자로가 되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 기업과 엔지니어들이 고리1호기를 어떻게든 운영하고 유지·보수하면서 기술을 익힐 수 있었던 기회가 됐음도 사실이에요. 고장이 난 부분을 찾아내 국산 부품으로 하나씩 교체해 나가면서 우리나라 원자력 산업이 시작됐습니다.


요즘 한국인: 대단하긴 한데, 엄청 위험하게 들리기도 하거든요. 그러다가 큰 실수나 실패라도 했으면 완전히…

옛날 기술자: 다들 목숨 걸었던 거야. 말을 안해서 그렇지 그렇게 덤빈 기술자 중 피폭된 사람들도 많았을 거라고.

요즘 한국인: 아니, 근처 지역이 다 피폭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옛날 기술자: 일단 고장이 난 상황이라니까? 위험하다고 놔두면 고장이 저절로 고쳐져? 오히려 그 상태로 놔두면 그게 폭발하거나 해서 큰일이 나지 않았을까?


모두의 필사적이고 절박한 노력은 이 시기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공통된 배경이에요. 고리1호기를 건설하면서 우리나라는 원자력 발전 관련 기술을 갖춰야 한다는 의지가 강력해졌습니다. 고리 3, 4호기와 월성 1호기 등 다음 원전을 건설하며 우리나라 정부는 미국 벡텔에 공사를 맡겼어요. 그때도 기술이전은 해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술자들은 미국에 건너가 어떻게든 자료를 훔쳐보고, 배우고, 챙겨와서 기술을 익혔다고 해요. 경제가 발전하고 대학 교육 이상을 받은 엔지니어들이 늘어나는 1980년대에는 이야기가 또 달라집니다만(과거의 강력한 장점이 현재의 치명적인 단점이 되는 일은 흔하지요), 우리나라에 원자력 발전이 도입된 시기의 산업 서사는 대략 위와 같습니다.



산 넘어 산, 물 건너 물


이제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 산업의 핵심 주제는 원자로 건설 기술이 아니라 방폐장 건설이에요. 세계적으로도 건설 기술보다는 수명이 끝난 원자로의 해체 기술이 경쟁력으로 떠올랐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을 친환경 발전으로 인정할지 고민이 많은 상황이에요. 물론 친환경 대체에너지가 아직은 무르익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 원자력 에너지를 완전히 버릴 수 있는 나라는 얼마 없을 겁니다. EU가 원자력으로 만든 전기를 조건부 친환경 에너지로 인정하기로 한 것만 봐도 그래요. 


다만 고준위 방폐장 없이는 소용없어요. 일단 EU의 기준을 맞추어 수출하려면 노후 원전을 해체하는데 필요한 기금이 이미 마련돼 있어야 하고, 고준위 방폐장을 2050년까지 가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하거든요. 꼭 수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60년 가까이 원자력으로 전기를 생산해온 우리나라는 이제 사용후핵연료인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고준위 방폐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2022년 연말 기준 우리나라 사정은 심각합니다. 


2000년대 초반, 원자력 발전 과정에서 직원이 입은 옷이나 장갑 등의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하는 방폐장을 경주에 건설하는 데도 20년 가까이 걸렸거든요. 하지만 고준위 방폐장 건설은 아직 계획조차 없다고 해요.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려던 1960년대, 실력은 미치지 못하더라도 정책 방향만은 분명하던 시점과 꽤 비교되지요.


관련 기사: 핵폐기물 저장고 곧 차는데 주요국 중 한국만 대책 없다(한국경제, 202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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