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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Feb 02. 2023

(칼럼) 자가 마련에 성공하는 사람에는 세 종류가 있다

2022년 10월 싱글즈 기고

싱글즈는 패션잡지인데 매달 내 글을 가져가 주신다. 그 중 지난 10월에 기고했던 글을 올려둔다. 한국경제신문에 실린 칼럼의 원본격이다. 브런치는 개인사 이야기가 주류인데, 나는 전문가가 아니면서 전문적인 내용의 기초만 앵무새처럼 떠든다. 그게 내 정체성이자 업인 것을 어쩔 수가 없다.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돈 없는 무주택자에게 용감하게 '타협'을 말하기 때문이다. 다들 첫 주택일수록 똘똘한 한 채를 노려야 한다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른걸. 음, 사실 브런치 보고 기고 요청 많이 들어온다길래 올렸다(ㅋㅋㅋ)


이 또한 편집자의 손을 거치지 않은 원본이다. 오타와 비문,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자가 마련에 성공하는 세 가지 방법

경제 뉴스를 전달하는 레터를 만들다 보니 구독자 여러분에게 재무 목표를 여쭤볼 일이 자주 생긴다. 그런데 돈을 알뜰하게 모으고 계신 분도, 돈을 대체로 당장의 행복을 위한 도구로 여기시는 분도 저축 목표는 비슷하다. 서울·수도권(내지는 광역시)에 내 집 마련하기. 그러면서 한숨과 함께 덧붙이는 한 마디.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두 저축한다고 해도 집을 사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여기까지 오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도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 걱정은 사실이기도, 사실이 아니기도 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1997년 외환위기가 지나간 이후 내 집 마련은 평범한 사람들에겐 언제나 어려웠고, 그럼에도 부동산으로 알차게 부유해지는 사람들은 항상 있었다.  


자가 마련에 성공하는 사람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부모님의 도움이 있는 사람이다. 두 번째는 환경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정도로 개인적으로 탁월한 사람이다. 세 번째는 부동산 가격이 일반적으로 통화량과 금리의 영향을 받고, 우리나라 통화량과 금리는 미국의 통화량과 금리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너무 어렵다면 이렇게 풀어 보자. 집값이 오를 때가 있으면 떨어질 때도 있다. 집값 방향은 금리 방향을 고려해서 판단하자. 평소에 충분히 준비해두면 집값이 떨어졌을 때 부동산을 마련할 기회가 온다. 경제뉴스에 양적완화 끝 내지는 긴축, 테이퍼링 이야기가 나올 때 무리한 추격매수는 위험하다. 다른 많은 시장과 마찬가지로 부동산시장 대세 방향은 미국 정책의 영향이 크다. 


그 정책은 신이 와도 안 먹혀요

코로나19가 전세계를 휩쓸었던 2020년과 2021년, 부동산 가격이 무섭게 올랐다. 2020년은 ‘돈이 복사된다’거나 ‘벼락 거지’가 됐다는 말이 처음 등장한 해다.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자산가격 폭등은 코로나19가 남긴 강렬한 기억이다. 물론 2014년부터 부동산시장은 쭉쭉 성장하고 있었다. 서울 아파트 매매 중위가격이 5억 원을 넘긴 것은 KB부동산 기준 2015년 6월이다. 2년 만인 2017년 4월, 중위가격은 6억 원을 넘었다. 단숨에 1억 원이 오른 거다. 한국부동산원 기준 상승률을 봐도 마찬가지다. 2013년에 전년 대비 -1.28% 성장한 아파트 매매가격은 2014년 1.99%로 상승 전환하더니 2015년에는 6.71%나 상승했다. 이후로도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꾸준히 올랐고, 2017년에서 2018년 사이에는 상승률이 8.03%로 점프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하락세로 전환한 시장이 5년 만에 기지개를 켜기 시작해 10년 후 정점을 맞은 셈이다. 지난 정부는 이 시점에서 부동산이 하락안정되기를 바라며 정책을 쏟아냈지만 효과는 없었다. 잘못된 판단으로 부동산 활황을 더욱 부추겼다는 평가도 있다. 어쨌든 웬만한 사람들은 그 시점, 정책이 의도대로 먹히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시장 전체가 들썩이며 대세를 만들 때는 어차피 우리나라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정책은 대세가 흘러가는 속도를 완화하거나 강화하고, 사각지대를 보완하거나 범죄행위를 막을 뿐이다. 그렇다면 부동산 활황의 대세를 만드는 요소가 무엇일까? 그게 바로 통화량과 금리다. 


돈이 돌 때 3억 vs. 안 돌 때 3억

통화량은 시장에 돈이 얼마나 풀려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자영업자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돈이 돌아야 해’라는 한 마디가 핵심 키워드다. 사람들이 활발하게 거래할수록 돈도 활발하게 돌아다닌다. 돈이 바쁘게 돌아다닐수록 중앙은행은 돈을 더 찍어내고, 은행은 고객의 예·적금을 기업에 곧잘 빌려준다. 경기가 좋으면 사람들은 돈을 쓴다. 기업들도 돈을 쓴다. 돈을 쓰므로 통화량은 늘어난다. 경제뉴스에서는 유동성이 풍부하다고도 한다. 그런데 세계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오랜 경기침체를 겪었다.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미국이 나서서 10년 가까이 시장에 돈을 풀었다(양적 완화). 사람들이 대출을 받아서라도 돈을 쓰고, 그 돈이 시장에 돌아다니며 경제를 부양하기 원했기 때문에 금리를 낮췄다. 금리가 낮아야 대출을 부담 없이 받을 테니까. 경기를 띄워야 하는 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질문. 목돈 3억 원을 연 3%로 빌려서 30년간 갚아도 된다면 집을 사시겠습니까?


3억 원을 연 3%로 빌려서 30년간 갚으려면 원리금이 한 달에 120만 원이다. 성실하게 경제활동을 해 나가는 사람에게 평생 주거에 투자하기 부담스러운 돈은 아니다. 만약 내가 원리금을 갚는 동안 아파트 가격이 더 올라서 차익을 보고 팔 수 있다면 더더욱 투자할 만하다. 그런데 2015년 기준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야 5억 원을 넘겼지만, 수도권은 아직 3억 원 대였다. 게다가 부동산 시장이 상승 대세를 타기 시작했다. 저금리를 이용해 자산을 키워보려는 계획이 서 있던 사람들은 모두 참여했다. 다들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고 싶어했기 때문에 부동산 상승은 계속됐다. 여기에 전세대출을 이용한 갭투자가 끼어들며 사태가 심화됐다. 


중요한 건 금리다. 여기서 같은 조건에 금리만 7%로 올리면 갚아야 할 원리금이 한 달에 200만 원이 된다. 2022년 현재, 주택담보대출은 8%를 바라보고 있다. 이러면 아무도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주택공급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공급이 많아도 보통 사람들이 신규주택을 분양 받으려면 결국 대출을 받아서 들어가야 한다. 대출받을 결심을 하려면 역시 금리가 중요하다. 10년동안 시장에 풀린 돈과 저금리가 부동산 시장을 밀어 올린 거다. 각국 정부가 돈을 거두어들이니 마니(테이퍼링) 하던 시점에 코로나19가 팬데믹을 불러왔고, 다들 다시금 어마어마한 돈을 뿌렸다. 전세계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2018년 8억 원대에 진입한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2019년 연말까지 2년간 쭉 8억 원대에 머물렀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2020년에는 9억원을 넘겨 2021년에는 10억8천만원대에 진입했다.


부동산, 급락은 없고 대출은 필수

2022년, 금리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금리가 크게 오르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올해 국토연구원 실증연구결과에 의하면 금리가 1%p. 오를 때마다 15개월 후 아파트 매매가격은 최대 5.2% 떨어진다. 왜 15개월 후를 말하느냐 하면, 부동산 거래는 시간차를 두고 이뤄지기 때문이다. 저금리 시절에 무리해서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한지라 금리가 오르며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나도 끝의 끝까지 매도를 미루며 버텨보는 사람들이 많다. 다주택자라면 임대라도 놓으며 기다려볼 수 있다. 정부도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급등만큼이나 급락도 개개인의 경제상황에 충격을 준다. 전문가도 아직까지는 부동산 시장이 ‘조정’될 거라고 예측하지 ‘급락’할 거라고 예측하지는 않는 상황이다. 이렇게 침체 기사가 쏟아지는 2022년 9월에도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아직 10억9천만원 대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부동산 구매를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금리가 오른다는 건 현금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다음 저금리 시대를 기다리며 시드머니를 모으자. 3억 원을 3%로 대출받아 서울이나 수도권에 평균적인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었던 시절에도 최소한의 종잣돈으로 집값의 10%에서 30% 정도는 필요했다. 대출을 한 푼도 받지 않고 주택을 구매하기란 보통 사람들에게 비현실적인 목표다. 아파트 가격이 9억 원이라면 ‘9억 원을 언제 모아’라며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을 수 있는 대출의 최대금액과 적정금리를 따져본 후 남는 금액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또 언제든 정부의 정책적 저금리 상품이 있다면 필수로 이용해야 한다. 보금자리론 같은 정부 지원이 신혼부부나 아이가 있는 부부처럼 기혼자에게 집중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생애 최초로 주택을 구매한다거나 소득요건이 상품 조건에 부합하면 민간 금리보다 훨씬 저렴한 금리를 적용 받고 대출을 이용할 수 있다.


우리에게 타협은 미덕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 수 있으면 정말 좋겠지만, 무주택자라면 첫 주택의 입지에 대해 어느정도 타협할 필요가 있다. 재테크계에 ‘똘똘한 한 채’라며 학군도 좋고 강남 접근성도 좋은 ‘상급지’에 부동산을 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정석으로 돌고 있지만, 그건 정말로 재테크 이야기다. 부동산으로 재테크를 고민할 정도라면 이미 재무상태가 어느 수준은 넘어선 것이다. 평범한 무주택자에게 똘똘한 한 채는 ‘누가 봐도 상급지’에 있는 주택이 아니라 ‘내가 살 수 있는 곳 중에 가장 좋은 곳’이다. 


부동산도 주식과 비슷하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면 돈을 번다는 단순한 원칙이 적용된다. 하지만 내가 바닥에서 살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지나봐야 바닥인 줄 아는 바닥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금액대의 상품을 나에게 맞는 금리에서 구매하는 것이다. 적절한 기회를 잡으려면 나에게 맞는 지역과 금액, 주택 형태를 미리 정해 두고 계획적으로 돈을 모아가야 한다. 금리와 통화량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 상태는 경제뉴스를 꾸준히 보면서 항상 체크하자. 또, 우리나라의 금리와 통화량은 미국의 그것을 따라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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