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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Feb 12. 2023

(콘서트) 신촌블루스 앙코르

2023년 02월 11일, 스페이스브릭

한 달 전인가 배우자님이 난데없이 공연을 하나 보러 가자기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일에 신촌블루스라는 오래된 밴드의 공연인줄 알았다. 가끔 배우자님이 기타로 치곤 하던 곡 몇 개가 그 밴드의 곡이었다. 공연 시작 전에 급하게 정보를 검색해보고 나서야 우리나라 블루스 밴드의 전설적인 존재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특히 한영애란 이름. 한영애 선생님이라고 해야 하겠다. 


한영애 선생님의 곡은 '조율'과 '바람'밖에 모르지만 그 두 곡을 하루에 삼십 번 정도 반복해서 들은 적이 있을 만큼 좋아한다. 그 분의 목소리는 무당의 목소리야. 어딘가 접신해서 혼과 백, 귀와 신을 불러내고 땅과 물을 움직이는 목소리라니까. 음악 같은 거 전혀 몰라서 한영애 선생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도 모르지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목소리 때문에. 만신에게는 선생님이라고 하는 거잖아. 


신촌블루스에 한영애 선생님이 객원보컬로 계셨다는 글을 읽어서 이번 공연에도 혹시 오는 건가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배우자님은 밴드 멤버들과 마주치거나 아는 사람을 만나서 뒷풀이에 끌려갈까봐 열심히 피해다니시고 나는 어수선한 공연장 분위기에 좀 기가 빨렸는데 그게. 공연이 시작하고 나서는 완전히 분위기가 반전되어서.


무대 위에서 음악을 하는 그들이 정말 마음껏 자유로워 보여서 마음이 누가 밟고 간 흙탕물처럼 지저분하게 찰랑거렸다. 신촌블루스는 내가 태어나던 해인 1988년 활동을 시작한 밴드라고 한다. 나이가 칠십대인데 여전히 청춘이야. 푸를 청에 봄 춘. 무엇무엇에 잔뜩 발목 잡힌 사람에게 저 멀리 있는 타인의 온전한 자유를 확 끼얹으면 그냥 사라져 버리고 싶어지지. 나는 정말 묶인 곳이 많은 것 같아. 사실은 신체와 삶 자체에 쓸데없이 묶여 있는 것 같아. 


저 사람들도 무대 밑으로 내려오면 먹고 사느니 구질구질하겠지만(아니, 이 정도 원로 음악인이 여전히 빌딩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돼?) 재능이 자유를 주다니. 나의 재능은 너무 알량하고 심지어 대단해진다 하더라도 나를 이 비루한 땅에 더욱더 강력하게 못박아둘 뿐인데. 저이들이 저렇게 자유로운 채로 무대에서 현실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소천해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서 괴로웠다. 아니면 내가 사라져 버리거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인 것처럼.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까 인간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며 자신이 전능할 수 있는 세계를 자꾸만 빚어내는 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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