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인 Feb 21. 2023

(영화) 공수창의 R포인트

그래서 베트남 귀신은 있는 걸까, 없는 걸까

알포인트(2004)를 관통하는 질문은 ‘그래서 베트남 귀신은 있는 거냐, 없는 거냐’다. 정확히 말하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희생자들은 귀신이 죽인 것이냐, 자기들끼리 미쳐 버린 것이냐. 보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두 갈래 모두 말이 된다. 귀신이 죽였다고 하면 공포가 될 테고, 본인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미쳐버렸다면 심리 스릴러가 될 거다.


아직 만화·비디오 대여점이 살아 있을 때 빌려 봤던 기억이 난다. 나는 미성년자고 알포인트는 미성년자 관람 불가였을 것 같지만 동네 장사란 게 단골에게 그렇게 칼 같지 않다. 회사에서 원소스 멀티유즈 가능한 영화 리뷰 콘텐츠를 만들기로 해서 다시 틀어봤는데, 열일곱살 때는 몰랐고 지금은 단박에 알아챌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초반, 베트남에 파병된 국군 장병들이 팬티를 벗고 나온다.


영화든 소설이든 어떤 문장이나 장면을 들어내도 이야기가 이어진다면 그 문장, 그 장면은 무조건 들어내야 하는 군살이라고 했다. 꽤 잘 만든 공포/미스터리 영화인 알포인트도 마찬가지다. 극의 주인공인 최 중위(감우성)이 영화 속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소나, 처음으로 희생되는 어린 병사가 죽음을 맞이한 장소가 알포인트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그냥 설정된 장소가 아니라는 것. 공수창 감독의 이전 필모그래피를 보니 더욱더 그렇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6개월 전에 죽은 병사가 3일 전에 연대본부에 때린 무전이 들려온다


1972년, 베트남전 막바지. 영화는 총소리와 고함소리가 뒤섞인 현장에서 무전이 들려오며 시작된다. '우린 다 죽는다, 하늘소'. 무전실에서는 '당나귀 삼공 나오라'고 응답한다. 그러고는 현장에서 구출된 당나귀 삼공의 유일한 생존자가 얼굴을 포함한 전신에 붕대를 감고 등장. 이 생존자는 제정신이 아니다. 부대장은 생존자가 구출된 현장에 최중위(감우성)를 보내 다른 생존자가 없는지 알아보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런데 주인공 최중위(감우성)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 사창가다. 영화의 첫 희생자도 바로 이 사창가에서 나온다. 최중위가 수색을 위해 꾸리는 수색부대원들은 간호사 앞에서 팬티를 내리고 성병 검사를 받는다. 성기 검사로 발견할 수 있는 성병에는 곤지름과 매독, 헤르페스 같은 것들이 있다. 집단으로 성병에 걸렸다는 건 매춘을 했다는 뜻이다.



몸과 마음을 더럽힌 사람들


사실 전쟁 중인 국가에서 강간과 매춘은 군부대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한국전쟁 직후 우리나라에서도 그랬다. 기지촌 ‘양공주’, 외화벌이라든가. 1960년대 우리나라 신문에 보면 기지촌이 외화 획득의 전초지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전초지란 전쟁 최일선에서 임시로 머물면서 다음 진격을 준비하는 곳을 뜻한다. 군사 용어다. 먹고 사는 게 전쟁이었던 시절.


2023년 2월, 우리나라 법원은 1심에서 베트남 퐁니·퐁녓 마을에 대한 국군의 전쟁범죄를 인정했다. 군은 바로 반발했다. 딱히 반발할 일이 아니건만. 우리나라 군대가 학살자고 특별히 야만적이어서가 아니라 전쟁은 그냥 그렇다. 전쟁에서 각종 폭력이 없어? 인류 역사를 통틀어 그런 전쟁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열심히 고문과 강간과 학살을 저지르고 있을 거다. 전쟁 난민이 된 우크라이나 여성을 납치해 매춘산업에 팔아넘기는 인신매매 범죄도 국제적 이슈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만 악마일 리 없지만, 우리나라 사람들만 천사일 리도 없다.


미군감축과 기지촌 경제 (1) 용역 (동아일보, 1970.07.17)


베트남을 포함해 동남아시아는 돈 좀 번다는 나라의 남성들에게 매춘의 천국 역할을 하고 있다. 경제가 변변찮은데 정부가 부패하면 자국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미국 달러를 갖고 있어야 밀수입으로 들어오는 생필품을 살 수 있다. 외국 군부대라도 주둔하고 있으면 외화 획득과 군부대에서 파는 군수물자가 아주 경제적 선순환을 이룬다. 젊은 여성의 성은 외국 군인이 그 나라에서 매력을 느끼는 거의 유일한 서비스가 된다. 지금도 사정이 비슷한데 베트남전 당시에는 어땠을까. 그래서 최중위(감우성)의 새로운 수색부대원들은 팬티를 내렸다.


많은 리뷰에서 부대원들이 걸린 병이 매독이라고 추측한다. 일리 있다. 영화 중간에 마원균 병장(박원상)이 매독에 걸렸다는 대사가 나온다. 매독균이 신경계를 침범한 경우 병이 진행될수록 정신이상을 일으키고, 사망률도 높다. 가만히 놔둬도 죽을 놈들을 죽을 자리로 보냈다거나, 죽을 짓을 한 놈들을 죽을 자리로 보냈다 싶은 설정이다.


그래서인가 생존자를 수색하는 부대원들에겐 그닥 열의가 없다. 이거 다 무의미하다는 대사도 자주 등장한다. 심지어 미군이나 프랑스군도 나와서 헛짓거리를 한다는 비웃음과 경고를 날려주고 간다. 그들 모두 나중에 부패한, 혹은 백골이 된 시신으로 발견된다. 모두 다 귀신이었던 거야.


내 생각에는 출동 이후 거기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죽은 사람들이다. 왜냐면 부대원들이 배에서 내려서 현장으로 향하는 장면부터 이미 사람 숫자가 하나 늘어나 있거든. 죽은 사람이 섞여 있다니까. 다들 죽었으니까 모두 함께 있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영화를 다시 한 번 보면 또다른 느낌으로 감상할 수 있다.


포스터가 미학적으로도 뛰어나서, 인기있는 관광기념품이 됐다


베트남에 침공한 미군과 베트남을 오래 식민지배했던 프랑스군은 다들 베트남에서 도망쳐 나갔다. 베트남은 미군을 이긴 국가라는 국가적 자부심이 드높다. 회사 워크숍으로 베트남에 놀러가서는 베트콩 프로파간다 포스터 모음집을 사왔다. 대개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이 주체다.


베트남은 모계 사회고 전쟁에서 평범한 여성들이 그렇게 많이들 게릴라가 됐다고 한다. (소비에트 연방 계열이 그런 점에서 비슷한 PR 전략을 갖고 있긴 하지만) 특히 여성 전쟁 영웅이 많다. 그러니까 영화가 진행되면서 최 중위(감우성) 눈에 비치는 흰색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 귀신이 그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거다.



귀신은 역사가, 헛것은 마음이 만든다


문제는 흰 아오자이를 입은 그 여성이 정말 귀신이냐는 것이다. 그녀가 베트남의 여성 게릴라들을 대표하는 상징이라면 해석이 달라질 여지가 있다.


죽을 자리를 찾아들어와 죽은 군인들을 곁에서 보며 비웃는, 사실 외국 군인들의 시신보다 훨씬 많이 그 땅에 피를 뿌리고 죽은 여성 게릴라라면 어떨까. 혹은, 매독에 걸려서 미쳐가는 군인들이 그런 형태로 헛것을 보고 있다면? 영화에서 군인들은 자살하거나, (성병 때문인가) 발광하는 동료의 손에 살해당한다. 귀신에 빙의당했다고 볼 수도 있고, 그냥 미쳤다고 볼 수도 있다.


베트남에 있는 전쟁기념관에 갔을 때 당시 사진 중에서 가장 경악스러웠던 것은 사지가 찢겨진 베트남 게릴라의 시신을 거꾸로 들고 웃는 미군 사진이었다. 발목을 잡고 들어올렸는데 팔과 배는 터져나가서 없고, 드러난 척추 밑에 머리가 간신히 달랑거리고 있었던가. 사람이 끔찍하게 죽는 것도 잔인하지만 무엇보다 잔인한 건, 해체된 시체를 들고 환하게 웃을 수 있게 된 파괴된 인간성이다. 그 미군이 전쟁을 치르기 전에도 그런 사람이었겠느냐고. 보통 사람들은 개나 고양이는 물론, 평소에 즐겨 먹는 소나 돼지도 그런 참혹한 상태로 해체된 걸 보면 기겁한다고.


그래서 돌아온 군인들은 PTSD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괴물’이 되어버린 자기자신에 대한 혐오에 시달리거나, ‘괴물’임을 끊임없이 합리화하며 오토바이 뒤에 LPG가스통을 매달고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오래 전 전쟁터에서 마주쳤던 적을 현재로 소환해 욕설과 협박을 내뱉거나. 알포인트에서 거의 모든 등장인물은 베트남 어딘가에 지박령이 되어 영원히 그 장소와 그 시간을 떠돈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든 월남에서 돌아온 존 병장이든 영혼 어딘가가 영원히 전쟁의 참혹함에 묶여 떠돌게 되는 것처럼.


알포인트에서 살아 돌아가는 병사는 성병에 걸리지 않았던 소년병 장영수 뿐이다. 장애를 얻기는 하지만 목숨은 건졌다. 전쟁범죄에 몸을 더럽힌 적은 없으나 전쟁 참여 자체가 어떤 오염이 된다는 은유이지 싶다. 어쩌면 보고 들은 것이 그의 영혼 어딘가를 영원히 불구로 만들었다는 은유일 수도 있겠다. 영화에서는 초반에 비석에다가 손에 피를 묻힌 자, 돌아가지 못한다는 문구를 새겨서 해석을 편리하게 도와주었다. 영화 내내 일관된 은유가 작동하기 때문에 과하게 잔인한 장면이나 기괴한 귀신 크리쳐가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심리적 긴장감이 곧잘 유지된다. 집중해서 본다면 맥락을 추적하면서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재미도 있는 편.



20세기 베트남에서 벌어진 전쟁의 역사는 길다. 베트남은 1946~1954년 프랑스에서 독립하기 위해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벌였고, 1964~1975년은 북베트남이 남베트남과 통일하기 위해 남베트남&미국 연합군과 전쟁을 치렀다. 이 전쟁은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월남전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1965년부터 1973년까지 32만 명이나 되는 군인을 파병했다. 덕분에 미국이 차관으로 보내준 달러가 국내로 들어왔고,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됐으며, 박정희 정부의 정치적 기반은 공고해졌고 한미동맹은 굳건해졌다. 월남전에 참여한 우리나라 역사를 말할 때 전쟁의 참혹함에 초점을 맞추든 경제 발전에 초점을 맞추든 상관없다. 둘 다 사실이니까. 둘 다 사실이라는 말은 어느 하나를 없었던 척 묻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 베트남전 프로파간다 포스터를 판매하는 사이트

* 월남전과 영혼, 군인과 매춘 사이 관계를 더 깊이 해석하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은 책은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 불어판은 물론 영문판으로도 발간돼 아직 널리 읽히고 있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콘서트) 신촌블루스 앙코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