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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Mar 13. 2024

(일기) 폭력은 황홀한 종교다

2022.03.13. 시작을 말거나, 강력한 규칙과 질서를 요구한다

폭력은 휘두르는 자에게 종교적 황홀경을 선사한다. 자아를 잊은 황홀경을 무아지경이라고 한다. 무속인 굿판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붕붕 날아다닐까 싶은데, 기본적으로는 러너스 하이와 비슷할 거다. 죽어라 뛰다 보면 마약을 투약한 것처럼 팔다리가 가벼워지고 리듬감이 생기며 피로가 싹 가신다. 시간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고 내가 숨을 들이마시는지 내쉬는지도 모르며, 마치 빙의라도 된 것처럼 육신의 짐을 내려놓게 된다. 


그런데 이게, 사람을 두들겨 팰 때도 러너스 하이가 온다. 어렸을 때 몇 시간씩 뒤지게 맞다 보면 엄마의 눈이 희번득 뒤집히면서 갑자기 나를 때리는 손놀림과 발길질이 굉장히… 춤을 추는 것처럼 신명나게 바뀌는 시점이 있었다. 육체적 만족감과, 잘못을 징벌한다는 심리적 만족감이 합일되어 아무런 추궁도 욕설도 없이 리듬을 타고 휘둘러지는 물리력. 그 지점을 한 번 알아채고 나니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폭력이 달리 보였다. 원하는대로 제 팔다리를 휘두르는 남자애들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하루가 다르게 근육이 붙으며 자라나는 팔다리의 에너지를 마음껏 분출하며, 누군가를 영원히 두들겨 팰 수 있다면 영원히 칼춤을 출 수도 있을 것이었다.


대학에 들어가, 태권도부에서 실제로 사람과 대련을 할 때 홀연히 깨달았다. 정말로 사람을 때리는 것은 신나고 즐거운 일이구나. 마음껏 주먹과 발을 휘두르는 것은. 피하는 상대를 어떻게든 차서 넘어뜨리는 것은. 반격을 당해도 좋다. 나도 한 대 얻어맞아도 좋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타격하는 그 감각이다. 나의 손과 발로 사람을 치는 그 감각. 그러고 나서 샤워를 하면 근육이 확 이완되면서 굉장히 개운했다. 온몸에 근육통이 일지만 약간의 쾌감마저 가져다 주는 것이다. 마치 종교이고 마약이었다. 그래서 가정폭력을 '이해'했다. 마약을 끊지 못하는 중독자의 의지를 비난할 수는 없으니까. 


폭력은 중독적이고 황홀한 행위다. 한 번 맛보면 헤어 나올 수 없다. 아예 처음부터 그 맛을 모르게 해야 한다. 폭력에 이유 같은 건 없다. 그냥 사람 패는 게 사람에게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행복이어서 그런 거다. 그러니 한 번이라도 맞으면 그냥 그 관계는 그만두시길. 당신도 상대방도 화학적 중독에 희생되어 버릴 거다. 궁금하면 대련할 수 있는 스포츠를 한 번 시도해 보시라. 사람 패는 거 진짜 짜릿하다. 내가 백 대 맞고 한 대 치더라도 그 한 대가 진짜 짜릿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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