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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May 03. 2024

(일기) 봄비 내리는 가리봉동

2023.05.03. 물에 잠겨도 웃으면서 곁에 있어라 

책상 앞에 앉아 일하노라면 배우자님이 발밑에서 뒹굴며 tv시청을 하시다 말고 간간히 여보 여보 나 심심해 나 관심 줘를 시전하시는데 그러던 지난주 일요일에는 진심으로 답답증을 호소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 비도 추적추적 오고 기온도 4월 말 답잖게 차갑고. 불현듯 떠오른 도삭면. 하지만 도삭면으로 유명한 산시쑹화는 건대입구에나 가야 있고. 그래서 무작정 검색을 해보니 역시 대림역과 가산디지털단지역 주변에 가게들이 좀 있는 것이다. 


도착해서야 알았다. 내가 있는 곳이 바로 가리봉동임을. 이곳은 한국말이 단 한 마디도 들려오지 않는 곳이다. 이이들의 고향인 중국의, 그 어느 빈민가에서도 이렇게 거친 분위기는 풍기지 않으리라. 험악한 공기를 뚫고 좁고 끈적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가격이 저렴하기로는 10년 전 가격이라 메인 메뉴들이 5천 원에서 7천 원 값을 뽐내고 있었다. 도삭면 두 개를 시키고 먼저 나온 짜사이를 먹어봤는데 감칠맛이 어마어마. 그때부턴 옆 옆 테이블에서 금방이라도 돕바 품속에서 회칼을 슥 꺼낼 것처럼 누구 조지는 이야기를 한국어 중국어 섞어 말씀하시는 건장한 아저씨도 예뻐 보여. 뒷머리에 까치집 짓고 살벌하게 침 뱉는 총각도 싫지 않아.


잘 먹고 나오는 길에 괜히 뿌듯한 것이, 이런 내 올드 앤 삐끕 취향과 함께 해줄 사내도 그다지 없으려니 싶은 것이다. 웬만해선 낡고 좁고 더럽고 바닥에 침 뱉고 욕질하고 식당 문앞에서 담배 피는 손님들이 찰랑이며 고이는 할렘가에 같이 가자면 학을 떼겠지. 앞으로도 나는 많은 순간, 삶의 때가 치덕치덕 묻어 있는 씨바 좆같은 동네에서 은근슬쩍 내 자리 저 자리 두 개 깨진 플라스틱 의자로다가 끼워넣으며 자주 웃고 싶은 것이다. 잘 살거나 못 살거나. 얼마나 높은 하늘을 보거나 얼마나 낮은 물에 잠기거나 개의치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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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굉장히, 여러모로 힘든데, 그래도 웃어 보자. 이 비가 그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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