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08 | 네이버 블로그 정리하면서 긁어왔다
비공개 날적이
2012. 7. 8. 21:52 수정 삭제
1.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이 있으리라고 믿는다. 원하는 장면이 연속된 삶이든 원하는 서사가 펼쳐지는 삶이든 상관없이. 삶이 세상 속에서 맞물렸다가 떨어지고 다시 닿았다가 멀어지는 건 개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 있지 않다. 본인이 본인 마음 가는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은 아주 적고 사소한 것들 뿐이다. 이것들을 조정해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야만 한다. 나는 목표나 이상향이 뚜렷한 편이고 그렇기 때문에 거의 모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요소들을 그 목표에 맞춰놓는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들은 내가 거기에 가 닿았을 때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다만 그 요소들이 태어나고 맞춰진 시점이 내가 목표로부터 멀리 있을 때이므로 어느 정도의 괴리와 갈등을 늘 포함할 것이라는 부분을 명심해야 한다. 무언가는 아무리 좋아도 내가 걸음을 뗀 시점에 적합할 수도 있다. 어떤 것은 별 것 아닌 것 같았는데 훗날 중요해질 수도 있다. 내가 판단하는 건 아니다.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2.
내 무례함, 내 오만함, 내 미숙함과 서투름과 쉽게 상처입히는 공격성을 눌러주고 참아주는 친구들에게 존경을 담아. 문득 문득 그 당시엔 몰랐다가 지금에 와서야 사과하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있다(많다). 그렇지만 공연히 꺼내서 다시 이야기하기엔 그냥 자기만족이 될 것 같으니까 참는다. 이 죄책감을 견디는 것도 잘못을 저지른 내 몫일 것이다.
3.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비참하고 절박한 상태에 있다. 나를 취하게 하는 순간들을 나는 혐오한다. 내 현실적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 결국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나를 내버려두고 말 마약같은 순간들을 증오한다. 어떤 마약은 진통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진통제는 진통제로 남아야 한다. 진통제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어버린다면, 그러니까 고통을 견디기 위한 약이 365일 24시간 필요하다면 그건 역설적으로 내가 얼마나 처참한 고통 상태에 있는지 말해줄 뿐이다. 나는 그걸 깨닫지 못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 나의 지성은 이미 그 단계는 넘어섰다. 모든 마약은 내성이 있다. 그리고 모든 약쟁이들이 항상 약쟁이인 것도 아니다.
4.
내가 '지금' 누구지? 사실을 나열해본다. 내 엄마의 딸. 한국 국적의 00시민. 00상업고등학교 졸업. 000대학교 0000학과 0학년. 00지역 영어 강사. 00지역 논술 강사. 내가 원하던 나의 모습이었던가? 때로 어떤 직업은 그저 그 일을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나는 그 맥락들을 좋아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원하는 맥락 속에 살지 못하고 있다. 나의 기쁨은 나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내가 나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순간들에는 그 무엇에도 만족할 수가 없다. 사람들을 보면서 십 년 전을 짚어본다. 사람들을 보면서 십 년 후를 짚어본다. 과거와 미래가 얽혀 현재를 낳는다. 과거도 미래도 충족시켜야만 나는 내가 원하는 현재에 발을 딛고 설 수 있다. 사람들은 언젠가 저희들이 죽을 걸 알면서도 살아간다. 하지만 오늘 병원에서 당신이 앞으로 세 달 밖에 못 살 것이란 통보를 들은 불치병 환자와는 같지 않다. 모두가 시한부지만, 모두가 언제 죽을 것인지 알고 사는 건 아니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는 끝날 관계들이지만 어렴풋이 어느 시점이면 멀어지겠거니, 하고 시한을 알려주는 관계는 맺기가 힘들다. 사람을 적당히 사귈 줄 모른다. 느리고 꾸준하고 성실하고 그렇지만 서투르다. 많이 주고 싶지만 홀대받고 싶진 않다. 도움이 되고 싶지만 이용당하고 싶진 않다. 그리고 뒤집어,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대방에게도 한계를 주고 싶지 않다. 당신이 어디에 가 있건 나는 당신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이고 싶다.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앞으로 3, 40년에 걸쳐 만날 모든 세상과 사람들이 기껍고 기대가 된다. 나는 언제 어디서 매력적인 당신을 만나더라도 당신에게 매력적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가 함께 만들 수 있는 무언가가 몹시도 즐겁고 힘이 셀 것이다. 겪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다. 너무나도.
5.
세상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 곁에 있고 싶다. 누군가 세상을 외면할 때 나는 그가 나를 외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세상에 의해 고통스러우므로. 한 순간도 세상이 내게 가한 부당한 대우를 자각하지 못하는 적이 없으므로. 내 소중한 이들이 감내하고 있는 억울함을 나는 마치 내 것인 양, 그러나 그들의 무력함까지 내 것으로 느껴왔으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용상, ‘너희가 부유한 바리새인에게 내 이름으로 헌금하는 것보다 주린 자에게 베푼 것이 곧 내게 베푼 것’이라고 말씀하신 게 곧 그런 뜻이 아니었을까 하고 짐작만 해 볼 뿐이다.
아니다. 그냥 성격이 참고 사는 성격이 못 된다. 옆에서 누가 자꾸 참아, 참아, 하면 홧병이 나 죽을 거다. 왜 참아야 하지? 그게 내 마음이 편해서? 마음이 정말 편해지려면 문제를 없애야 편해지지 참는데 어떻게 마음이 편해지는 걸까. 내가 제일 공감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다. 참고 살기엔 내가 너무 약하다. 나는 떨어트린 유리잔처럼 부서지고 말 거다.
6.
십 년 후를 생각하는 건 십 년 후의 십 년 전인 지금의 내가 너무나도 불안하고 허약하며 한없이 무력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당연히 기대를 이후에 걸 수 밖에. 나아지리라고 믿으며 박차를 가할 수 밖에.
IELTS를 6월 30일에 보았다. 잘 한 것 같기도 하고 잘 못 한 것 같기도 하다. 상대적으로는 지난번보다 잘했고 절대적으로는 모르겠다. 비가 많이 왔었다. 시험관이 작년과 바뀌어서 많이 헤맸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입실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택시가 다가왔다. 시험장을 물어보았다. 모른다고 했다. 나도 찾고 있노라고. 그 청년은 나에게 같이 타고 가지 않겠냐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러마고 했다. 시험을 보고 만나서 밥을 먹었다. 헤어졌다. 청년이 다시 왔다. 그가 한국에서 쓰는 연락처를 주었다. 주어야 할 것 같았다고. 나머지 시험을 보았다. 청년이 다시 왔다. 나머지 시간을 같이 쓰자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청년은 다시 그가 살고 있는 호주까지 닿을 수 있는 연락처를 주었다. 나는 연락하지 않았다. 시험결과가 나오면 연락할 예정이다. 그는 호주로 돌아갔을 것이다. 내가 호주에 갈 일이 없다면 이 연락처는 무용해진다. 그리고 시험을 잘 보면 호주든 어디든 해외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과거가 현재를 만들었듯 내 현재가 미래를 빚는다. 나의 현재는 어떠한가. 어떠한 조금 먼 현재는 여전히 오늘이 아니라서 내가 그것을 담보삼아 어떤 미래를 예정할 수가 없다.
하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것. 나의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낫다. 그리고 오늘은 내가 그리는 내일에 너무나도 부족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내가 오늘 누리고 있는 것들은 그 내일에 가까이 오면 올수록 서로를 견디지 못해 분리될 공산이 크다. 함부로 예측할 수 없는 건 오직 사람이다. 그 사람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므로. 그 사람의 내일과 나의 내일이 어떻게 닮아가거나 멀어질지 당사자들조차 모르므로. 나는 다만 나의 내일을 낫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상대방의 내일이 더 나아졌을 때 내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뒤처져 분리되고 싶지는 않다. 그건 나를 무척 상하게 할 것이다. 게다가 이미, 오늘보다는 내일에 더 맞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 좋은 사람들과 충분히 가까워지기도 전에 멀어져 버리고 싶진 않다. 뒤에 남겨져서 추억이나 곱씹으며 비루한 현실을 과거 파먹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단 말이다. 보바리 부인도 아니고, ‘그 땐 그랬었는데…' 하면서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오늘을 나누는 내 예전 사람들 모습을 동경하며 방바닥 걸레질이나 하고 앉았긴 싫단 뜻이다.
7.
토요일에 신림에서 논술 강의를 끝내고 수돌이를 불러 중식 코스를 먹고 서울대까지 걸어가서 셀프 맥주 바에 갔다. 캄보디아에서 팔찌를 사와서 줬다. 모히토와 머드셰이크를 마셨다. 다음주 주말에 루브르 박물관전을 보러가기로 했다. 수돌이가 이번엔 큐레이터의 설명 테이프를 사서 깊이 감상할테니 방해하지 말라고 했다. 뭐 보러갈 때 방해하지 말란 소리를 내가 듣다니ㅠㅠ 근데 수돌이랑 있으면 맨날 내가 수돌이를 방해하는 것 같으니까 그냥 수긍했다. 나는 얘가 왜 공부에 재능이 없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ㅡㅡ... 아 근데 맨날 과 수석 하는 애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참 그렇긴 한데 우리 수돌이는 진짜 바보란 말이야. 그러니까 나랑 친구해주고 있나 흑흑. 수돌아 고마워.....
이집트는 비행기값만 일단 백만원 정도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