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대大코로나 시대 이후, 정부의 일방적 의대정원증원 발표로 의료계는 안팎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대다수 전공의는 그만둔 지 오래였고 남아있는 교수들도 줄사직이 이어지며 대학병원들이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는 막장 바로 직전 단계였다.
“백성들이 의료대란으로 다 죽어가게 생겼는데 의회에서는 야부리만 털면서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니…”
허생은 미국 북가주 상항(桑港, 샌프란시스코)만에 살았다. 산타크루즈 산이 태평양으로부터 대륙을 감싸고 있고, 그 중심에 스탠퍼드가 있었다. 비싼 물가를 제외하고는 사시사철 온화한 지중해풍 기후의 지상낙원이었다. 그러나 혼란해진 나라와 의회에서의 정쟁에 회의감을 느낀 허생은 속세와 연을 끊고 본인은 홀로 메타분석을 돌리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냈으나, 부인이 친정에서 받아오는 돈을 가지고 입에 풀칠할 뿐이었다.
"바른말을 하는 충신은 어디로 가고, 남은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매국노들뿐인가?"
하루는 그 부인이 몹시 못마땅해 울며 말했다.
“당초에 당신이랑 한국 의료계가 무슨 상관이 있어요? 한국서 못해먹겠다고 미국에 왔으면, 맘 편히 의사 노릇하면 될 것이지 코크란 리뷰가 다 뭐예요? 우리 애 써머캠프라도 보내야 할거 아니에요”
허생은 쓸쓸한 미소를 지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NIH 펀딩을 타지 못하였소.”
“T32로는 만족하지 못하시나요?”
“리서치를 시작한 이상 R01은 받아봐야 하지 않겠소?”
“그럼 돈이라도 되는 펠로우쉽이라도 못하겠어요?”
“몸이 예전 같지 않아 더 이상의 임상 트레이닝은 받기가 힘드오”
“그럼 로컴 (locum tenens, 알바)라도 못하겠어요?”
“로컴 특성상 지속적인 거처가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살아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하겠소?”
부인이 왈칵 성을 내며 말했다.
“밤낮으로 통계만 돌리더니 기껏 ”못하겠소 ‘ 란 소리 밖에 못한단 말이에요? 펠로우쉽도 못하고 로컴도 못하겠다면, 몬타나라도 못 가나요? 켄터키라도 못 가나요? “
허생은 남은 프로틴 셰이크를 한 모금을 들이켜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코크란 리뷰를 뛰어넘는 메타분석과 체계적 문헌고찰 플랫폼을 만들고자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인제 4년인걸..”
하고 에어프레미아 이코노미를 타고 휙 한국으로 가버렸다.
허생은 한국에 서로 알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강남에 가서 모발이식이나 제모 레이저를 하는 사직전공의들을 붙들고 물었다.
“누가 국회의원 중에 믿을만하오?”
이주영을 말해주는 이가 있어서, 허생이 곧 이 씨의 집을 찾아갔다. 허생은 이 씨를 대하여 길게 읍(揖)을 하고 말했다.
“내가 국란(國難)을 맞이해 무얼 좀 해보려고 하니, 비례 자리 하나 주시기 바랍니다.”
이 씨는
“나도 비례이고 초선이라 그럴 권한이 없소. 이준석 의원을 찾아가 보시오.”
하고 이준석 의원을 소개해주었다.
동탄에 이 씨 집을 찾아갔다. 마찬가지로 비례 자리를 하나 부탁하였다.
이 씨는
“그러시오.”
하고 당장 비례 자리 공천을 주었다. 허생은 감사하단 말 없이 가버렸다. 이 씨의 보좌관들이 허생을 보니 미국 교포였다. 구릿빛 얼굴에는 자글자글 주근깨가 가득했고, 셔츠는 품이 커 꺼벙하였으며, 몸에서는 다우니 섬유유연제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허생이 나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이제 하루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비례 공천권을 그냥 내던져 버리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이 씨가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너희가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부탁을 하러 오는 사람은 으레 공손한 척 하지만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을 중언부언하기 마련이다. 특히나 미국물 좀 먹었다는 인간들은 한 달만 미국에 있었어도 영어를 여기저기 섞어가며 티를 내면서도, 스타벅스에서 카페라테 하나 영어로 주문 못하기 마련이다. 저 이는 형색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명예 없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해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인데, 나 또한 그를 시험해보려는 것이다. 안 주면 모르되, 이왕 비례 자리를 주는 바에 이름은 물어 무엇을 하겠느냐?”
허생은 비례 대표로 개혁신당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바로 대전으로 내려갔다. 대전의 충남대병원은 세종시 공무원들의 이기주의로 무리하게 세종충남대병원을 건설해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의료 농단으로 인해 오늘내일하고 있었다. 전공의들이 떠난 자리엔 교수들이 뺑이를 치고 있었다. 간단한 경증으로 응급실에 와서 빨리 봐주지 않는다고 의사 멱살을 잡고, 술을 먹고 깽판을 치는 등 개판이었다. 허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중증도 구분이 전혀 되어있고 최선을 다해도 결과가 안 좋으면 소장이 날라 오니, 우리나라 악수과 의사들의 형편을 알만하구나.”
허생이 교수들을 모아놓고 물었다.
“한 교수당 얼마나 당직을 서지요?”
“줄 당직이요”
다들 놀라 돌아보니 흉부외과 교수였다.
“과마다 다르지만, 이젠 몸이 못 견디겠소”
“모두 자녀는 있소?”
“있소”
“부부관계는 어떠하오?”
교수들이 어이없어 웃었다.
“자녀는 미국에 공부 중이고 와이프는 당연히 자녀 따라가 있으니, 우린 다 기러기요.”
“정말 그렇다면, 왜 대학에서 나와 usmle를 치려 하지 않는가? 그럼 십수 소리도 안 듣고 살면서, 가족과 같이 살며 부부의 낙이 있을 것이요, 의사로서의 보람도 느끼며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텐데.”
“아니. 왜 바라지 않겠소? 다만 나이가 있고 영어가 후 달려 못 할 뿐이요.”
허생은 웃으며 말했다.
“의학용어를 쓰면서 어찌 영어를 걱정할까? 미국에선 나이를 신경 쓰지 않소이다. 내가 능히 당신들을 위해 마련할 일이 있소. 내일 각자 이메일을 확인해 보오. 맘에 들면 찾아오시구려.”
허생이 교수들과 언약하고 내려가자, 비뇨기과 PA가 그를 미친놈이라며 비웃었다.
이튿날, 교수들이 이메일을 열어보았더니, 과연 영어 스피킹과 리스닝 미국 현지 ESL 과정 접수증, 스탠퍼드 병원 옵서버쉽 패키지가 들어있었다. 모두들 대경실색하여 허생 앞에 줄지어 절했다.
“오직 선생 시키는 대로 하겠소이다”
이에, 주니어 스태프들이 다투어 NIW 신청을 하였으나, 리서치 실적이 부족해 실제로 그린카드를 받은 자는 손에 꼽았다.
“너희들, 전문의 자격 요건에 논문을 필수조건으로 넣어놓고서도 그린카드도 못 받느냐? 너희들이 한국에 남아서 아무리 필수 의료 살려보려고 해도, 정부는 너희를 쓰고 버리는 카드로 밖에 생각하지 않으니, 살릴 수가 없다.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릴 것이니, J 비자나 신청해서 오너라.”
허생의 말에 주니어 스태프들은 모두 좋다고 흩어져 갔다.
허생은 몸소 usmle 과정을 돕고 기다렸다. 주니어 스태프들은 빠짐없이 모두 패스했다. 허생이 허리 역할을 하던 주니어 스태프들을 몽땅 쓸어가니 충남대병원은 도산했다.
대량의 정리해고가 있었다. 보건의료노조가 나와서 머리를 깎고, 몸에 휘발유를 붓고 난리를 쳤으나 도산을 돌릴 순 없었다. 전공의라는 값싼 노동력이 없어지자 교수, PA 들만으로는 로딩을 감당하기 힘들었고, 교수들은 버티다 버티다 사직했다. 충남대가 망하고 얼마지 않아, 같은 일이 반복되며 적자만 쌓여가던 지방 병원들은 줄도산을 했다.
윤석열은 매우 분노했다. 검찰청을 통해 허생을 국가내란죄로 기소하였으나 영장 발부에 실패했다. 이에 국힘당은 청문회를 열어 그의 죄를 묻고자 했다. 현황을 잘 모르는 국민들도 부화뇌동하여 허생을 잡아 죽이라고 소리쳤다.
행방이 오리무중이던 차, 허생은 스스로 동탄 이 씨를 찾아갔다.
“이 씨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칠 순 없다.”
허생이 가서 이 씻을 보고
“나를 알아보시겠소?”
하고 묻자, 이 씨는 놀라 말했다.
“그대가 지금 병원 파산의 원흉으로 되어있는데, 혹시 실패 본 것 아니오?”
허생이 웃으며,
“대학병원들이 줄도산을 한 까닭은 예측된 일이오. 내가 어찌 원인이 되겠소?”
하고 태연자약한 얼굴로 무언가를 꺼내 건네어주었다.
“내가 하루아침의 갈굼을 견디지 못하고 통계 돌리기를 그만두었으니, 당신에게 비례 자리를 청했던 것이 부끄럽소.”
이 씨가 자세히 보니 스탠퍼드 대학 신경과 테뉴어 교수 직함이 찍힌 명함과 독수리 여권이었다.
이 씨는 대경해서 일어나 절하였지만, 허생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이 씨는 어서 미국으로 몸을 피하라고 하자 허생이 잔뜩 역정을 내어
“당신은 나를 김윤으로 보는가?”
하고는 청문회장으로 스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모여있던 기자들 앞에서,
“빨간 하늘은 이미 죽었다. 주황 하늘이 온다. 갑진년이 되면 천하는 대길이다!”
소리치더니 홀연히 청문회장으로 들어갔다.
여야 의원들이 잡아먹을 듯한 눈을 부라리며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고, 증인석을 보니 보건복지부 장차관, 교육부 장차관, 청와대 고위공무원, 충북대 심장내과 배장환 교수, 여러 대학 총장,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 등이 같이 나와 있었다.
“어찌 역적들과 같은 자리에 앉으랴!”
허생은 의자를 마다하고 땅바닥에 가부좌를 틀었다.
청문회가 시작되었다. 야당 의원들이 보좌관들을 조지면서 짜낸 질문들을 던졌다. 질문의 깊이가 낮고, 화만 버럭버럭 내기에 대미지가 들어가지 않았다. 야당 의원들도 속으론 값싼 노동력을 빨리 보충하고, 전라도 자기 지역구 의대 설립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전공의/전임의 교육이나 지속 가능한 의료형태를 고민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당의 조모 의원은 배 교수에게 “왜 필수 의료를 지키지 않고 다들 파업한 것이냐. 직무유기 아니냐”라고 물으며 의료계에 악마 프레임을 씌우려고 시도하는가 하면, 야당의 김 모 의원은 “세상을 고치는 김 모 의원”이라며 야심 차게 시작하였으나 티브이를 보던 사직전공의들의 조소만 살 뿐이었다. 배 교수는 사태의 이유와 합리적 해결점을 제시해보려고 하였으나 의원들이 상대해주지 않고 닥치라는 핀잔만 먹었다.
허생의 차례가 되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기술인을 홀대하여 인재가 제자리에서 나서 제자리에서 사라짐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직접 목도하니 더하는구나! 청문회가 하나 마나 한 말들과 시간 제약으로 하고 싶은 말도 할 수가 없구나. 시간 낭비일 뿐이다, 공무원들은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하고, 입만 벌리면 구라니, 뻔뻔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진실에 털끝만큼 가까워지질 않는다. 사직이라고 한지가 언젠데 아직도 파업이라는 말을 하며 의사를 악마화시키려는 자와 의대 이천 명을 주장해 놓고 국회에 들어가니 말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는 자는 나라의 녹을 먹는 신하가 맞는가? 대학병원이 스탑럴커 경락마사지로 후들겨 맡고 줄도산을 했는데 지금 무엇이 중한가?”
“의료가 지속불가능했던 것은 누구나 알던 것이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폭탄 돌리기 하던 것이 이전 정부들이었다. 윤뭐는 낮은 지지율로, 인기에 영합하고자 이천공의 이천을 따라 폭탄 무서운 줄 모르고 의대정원 이천 명을 선거 직전에 늘렸다. 미래에 희망이 없어진 전공의들이 사직을 하였으나, 사직도 못하게 하였다. 의대생들도 학교를 안 가는데 수업도 듣지 않은 마당에 진급을 시킨다는 둥 주먹구구식으로 꼼수만 부리니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돌아오지 않음이 자명한데,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다는 식으로 죽은 자식 부랄만 만지고 있구나!”
“수도 없이 늘려버린 간호대는 어떠한가? 오래 일하려는 자가 없고 틈만 나면 H비자를 통해 헬조센 탈출을 하려는 자들과 장롱면허 소유자들이 넘쳐나는데 조선은 ”너 아니면 할 사람 많아 “ 방법밖에는 모르는 것인가? 어쨌든 대학병원들이 다 망하였으니 리겜 해서 제대로 된 시스템을 다시 만들어보시오!”
위원장이 허생의 발언을 제지하려고 하자,
“당신은 나를 충북대 총장으로 아는가?”
하고는 소매를 뿌리치고 휘적휘적 가버렸다.
이 씨는 가만히 그를 따라 에어프레미아 이코노미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탔다. 허생이 2008년식 도요타 캠리를 끌고 조그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한 삼성 주재원이 H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 것을 보고 이 씨가 말을 걸었다.
“저기는 누구 집이오?”
“허 선생 집이지요. usmle를 보고 도미하여 레지던트/펠로우쉽까지 마쳤지만, 환자는 안 보고 NIH 펀딩 딴다고 밤새 미쳐서 통계만 돌리다가 하루아침에 집을 나가서 수년 도록 돌아오질 않았어요. 테뉴어라고 너무 배 째라 아녜요?”
이 씨는 비로소 그의 성이 허 씨라는 것을 알고, 탄식하며 돌아갔다.
이튿날, 이 씨는 일찍이 그 집을 찾아가 절하며, 대통령 선거 캠프에 들어오기를 권하였으나, 허생은 거절했다.
“내가 한 자리해 먹고 싶었다면 스탠퍼드 종신교수 자리를 버리고 한국 미니정당 비례 대표를 했겠소? 이제부터는 당신이 한국 소식이나 전해다 주시오. 가끔 나를 와서 보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해주도록 하오.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왜 명예욕 때문에 정신을 괴롭힐 것이오?”
이 씨는 허생을 여러 가지로 권유하였으나, 끝끝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 씨는 그때부터 허생이 월세가 밀릴 때쯤 되면 몸소 찾아가 도와주었다. 허생은 그것을 흔연히 받아들였으나, 혹 매매라도 권할라치면 좋지 않은 기색으로,
“나에게 재앙을 갖다 맡기면 어찌하오. 캘리포니아 property tax가 얼만지 아시오?”
하였고, 혹 프로틴 셰이크를 들고 찾아가면 아주 반가워하며 서로 하체를 조지며 양껏 마셨다.
이렇게 몇 해를 지내는 동안에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이 날로 두터워 갔다. 어느 날, 이 씨가 왜 도미하여 수련을 받았는지 물어보았다. 허생이 대답하기를,
“그야 대답하기 쉽지요. 보건복지부야 원체 못된 놈이지만, 의사단체 역시 자정 하려는 의도도 없이 면허 박탈도 되지 않은 중범죄자들, 어떻게든 한탕치고 빠지려는 기회주의자들, 통증, 내시경을 비롯한 건강검진, 피부미용에 들러붙어있는 돈에 미친 GP들이 득실대는 까닭에 외/내부로부터 신뢰를 잃은 지 오래지요. 거기에 의료 시스템 자체도 공산주의처럼 정부/심평원이 철퇴를 휘두르면 인기과고 낙수과고, 한방무당이 아니면 얻어맞기 일쑤라. 이런데 제대로 된 수련이 될 수가 있겠소? 수련을 받아도 대학에 남기도 힘들고 나가면 더 힘들어, 제대로 치료하면 수지가 맞지 않고 결과가 안 좋으면 감옥에 가는데. 딱 보면 똥인 줄 된장인 줄 알지 먹어봐야 똥인 줄 아는 것은 당신네들 하는 짓 아니오? 난 이미 본과생떼 사이즈를 보고 주변에 탈조 센 경고를 했었지만 미친놈 소리만 들었었지”
“처음에 제가 선뜻 비례 자리를 내어 줄 줄 알고 찾아와 청하였습니까?”
허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당신만이 내게 꼭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능히 공천권이 있는 사람치고는 누구나 다 주었을 것이오. 나 스스로 재주가 족히 한 나라의 운명을 논할만하다고 생각했으나, 한국 양궁도 늘 10점만 쏘는 것은 아닌 것을. 낸들 해보기도 전에 어찌 알겠소? 다만 능히 나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도 운이 있는 사람이라, 반드시 내가 한 일이 잘되게 하는 것은 하늘이 시키는 일일 텐데 어찌 주지 않았겠소? 이미 비례 자리를 받은 다음에는 그 복에 의지해서 일을 한 까닭으로, 하는 일마다 곧 성공했던 것이고, 만약 내가 사사로이 했었다면 성패는 알 수 없었겠지요.”
이 씨가 이번에는 딴 이야기를 꺼냈다.
“다음 대통령 선거를 나가 그동안 윤 씨가 망쳐놓았던 대한민국을 치유하고 새로운 100년의 비전을 세우고자 하니, 지금이야말로 재야의 인재들이 먼지를 털고 일어날 때가 아니겠습니까? 선생의 그 재주로 어찌 R만 돌리며 괴롭게 파묻혀 지내려 하십니까?”
“어허, 자고로 뜻있고 재주 있는 자가 한둘이겠소? 내가 본 3 일 때 영상 치프 레지던트였던 X 선생님은 눈감고도 판독을 하였으나 도미하여 클리브랜드 클리닉에서 레지던트 2년 차가 되었고, 한때 경기도 OS 매출 탑을 찍었던 Y 선생님은 역시 도미하여 지금 텍사스 저 시골에서 FM 3년 차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통계를 잘 돌리는 사람이라, 경우의 수를 굴려보니 아무리 높은 감투를 줘도 받지 않는 것은, 이 나라의 의료계는 이미 막장이기 때문이지요.”
이 씨는 한숨만 내쉬고 돌아갔다.
이 씨는 본래 박 씨 보건복지부 차관과 어느 정도 아는 사이였다. 박 씨가 이 씨에게 혹시 쓸 만한 인재가 없는 가를 물었다. 이 씨가 허생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박 씨는 깜짝 놀라면서,
“기이하다. 그게 정말인가? 그의 이름이 무엇이라 하던가?”
하고 묻는 것이었다.
“소인이 그분과 상종해서 3년이 지나도록 여태껏 본명도 모르옵니다.”
“그인 이인(異人)이야. 자네와 같이 가 보세.”
박 차관은 전세기를 이용하여 이 씨를 데리고 허생을 찾아갔다. 이 씨는 박 차관을 문밖에 서서 기다리게 하고 혼자 먼저 들어가서, 허생을 보고 박 차관이 몸소 찾아온 연유를 이야기했다.
허생은 못 들은 체하고,
“당신 가져온 전세기나 보여주시오.”
했다. 그리하여 즐겁게 전세기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것이었다. 이 씨는 차관을 밖에 오래 서있게 하는 것이 민망해서 자주 말하였으나, 허생은 대꾸도 않다가 야심해서 비로소 손을 부르게 하는 것이었다. 박 차관이 방에 들어와도 허생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박 차관은 몸 둘 곳을 모르며 나라에서 어진 인재를 구하는 뜻을 설명하자, 허생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밤이 짧은데 말이 들어서 듣기에 지루하다. 너는 지금 무슨 벼슬에 있느냐?”
“보건복지부 차관이요”
“그렇다면 너는 VIP의 졸개이자 의료 농단의 주범이로군. 내가 와룡 선생(臥龍先生) 같은 이를 천거하겠으니, 네가 용산 VIP에게 아뢰어서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하게 할 수 있겠느냐?”
박 차관은 고개를 숙이고 VIP의 격노를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제이(第二)의 계책을 듣고자 하옵니다.” 했다.
“나는 원래 ‘제이’라는 것은 모른다.”
하고 허생은 외면하다가, 박 차관의 간청을 못 이겨 말을 이었다.
“사직전공의들이 몸을 갈아서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며 봉사하였으나, 돌아온 것은 조롱과 협박이었다. 너는 청와대에 청하여 의대 정원 백지화와 의사들이 신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하고, 낙수가 출신 의사들 30명에게 여당 공천권을 줄 수 있겠느냐?”
박 차관은 또 머리를 숙이고 생각하는 척하더니,
“어렵습니다.”
했다.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하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느냐? 가장 쉬운 일이 있는데, 네가 능히 할 수 있겠느냐?”
“말씀을 듣고자 하옵니다.”
“의대 교수 트랙을 임상 트랙과 테뉴어 트랙으로 만들어, 임상 트랙은 정말 환자만 보도록 하고 이 트랙 교수 숫자를 늘려 로딩을 줄여야 한다. 현행 의사면허 체제로는 교수의 면허와 전공의 면허가 같은 레벨의 의사로 의료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전공의가 덤터기 쓰고 교수는 먹튀 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전공의 면허를 수련 면허로 바꾸어 무슨 일이 있어도 교수가 책임을 지도록 한다면 교육에도 소홀하지 않을 것이고, 전공의들도 부담 없이 수련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상급종합병원과 경증 질환에 관해서 본인 부담금을 올려 문턱을 높여 스타벅스 커피 한잔보다 못한 1500원을 내고 의사를 만나면서 의료쇼핑하게 끔 하는 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 한의사는 지금이나 20년 전이나 크게 달라진 바가 없고 사술에 지나지 아니하니 건강보험에서 제외하고 의료인 자격에서도 박탈해야 한다. 이 정도만 한다면 당장 국민들의 반발은 클 수 있으나, 교과서에 나오는 바람직한 정부형태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평타 이상을 친 정부로 후대에 평가받을 것이다.”
박 차관이 힘없이 말했다.
“국민들은 병원 가는 것을 편의점 가는 것보다 쉽게 가고, 싼마이로 진찰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 격렬한 저항이 예상됩니다. 그 후폭풍은 모두 여당과 정부로 올 텐데, 빤히 보이는 상황에서 어떻게 입에 올릴 수 있겠습니까? 한방도 요즘 추나가 그렇게 잘 나가는데 어떻게 체외충격파만 받으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허생은 크게 꾸짖어 말했다.
“소위 공무원이란 것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현황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큰 소리만 치고, 전공의/학생들 처지를 볼모 삼아 진급/지원기간/사직기한으로 사기나 치다 사태가 커질 때까지 수수방관,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있느냐? 정책이 조변석개(朝變夕改)로 바뀌고, 광복절 문제, 채 해병 문제, 디올백 문제 등 무엇이 공정이고 무엇이 정책이란 말인가? 정주영은 대의를 이루기 위하여 빈대가 들끓는 합숙소에서 잠자는 일을 개의치 않았고, 이병철은 뛰어난 기술력을 위해 학력보다 실질적인 성과를 중시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제 대의(大義)를 위해 결단을 내린다고 하면서, 그깟 대중적 인기와 자존심 따위를 아끼면서, 그따위를 정치라고 한단 말이냐? 내가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신임받는 졸개라 하겠는가? 녹봉을 먹는 산하라는 게 참으로 이렇단 말이냐? 너 같은 자는 전뇌방사선조사 (Whole Brain Radiation)을 해야 할 것이다.”
하고 Epic에 오더를 넣으려고 했다. 박 차관은 놀라서 일어나 급히 뒷문으로 뛰쳐나가 도망쳐서 돌아갔다.
이튿날, 다시 찾아가 보았더니, 집이 텅 비어 있고, 허생은 간 곳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