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기자라는 건 사람을 대해야 하는 직업이니, 늘 긴장한 상태로 휴대전화가 울릴 것을 기다려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써낸 기사가 갱지에 찍히기 전에는 시급한 수정사항이 생길 수 있으니 늦은 밤에도 휴대전화를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점도 그러려니 했다. 메시지에 답장하는 게 어디 대순가. 답장할 문구를 고민하다가 탈 열차나 내릴 정류장을 놓쳐버리는 처참한 멀티태스킹 능력도 시간이 지나면 늘 줄 알았다. 하지만 일 년 넘게 뱃살 말곤 아무것도 늘지 않았다.
한 번은 카카오톡 메시지가 동시에 몰려 컴퓨터 화면 한쪽에 ‘알림 탑’이 세워졌다. 차례로 답장하려는데, 답장에 돌아오는 답장도 어찌나 빠르던지. 어떤 메시지는 급한 대로 읽기만 하고 다른 메시지를 먼저 처리해야 했다. 그러다 한참 동안 답장을 까먹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특히 바쁜 날에는 며칠만 알림 없이 살아보고 싶단 생각이 간절해졌다. 때마침 후배가 도파민 단식이라면서 한나절 간 휴대전화를 끄고 산 뒤의 소회를 담은 체험기를 냈다.
'이거다'
동해 바다에서는 일출을 볼 수 있다. 사진 실력이 달려서 숙소 측 사진을 올리지만 실물도 다르지 않다.
휴가란 몸과 정신을 쉬게 하는 시간이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휴가 날만 정해지면 땡처리 항공권과 가성비 숙소만 찝적대다가, 막상 떠나서는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하던 일상보다 바쁜 일정에 제 몸을 욱여넣고는, 촉박하게 돌아와 미처 풀지 못한 여독을 정신적 후폭풍 정도로 비웃으면서, 다만 추억 담긴 사진은 남고 고생은 쉽게 잊히는 거라서 결국 그다음 휴가 때도 같은 우매를 저지르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 나도 아마 그런 휴가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강원 고성에는 조용한 해변이 많았다. 젊은 남녀들이 속초를 거점으로 양양 쪽으로 남하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이곳의 숙소와 식당은 값이 저렴했다. 한 물횟집에는 떠나는 손님들 손에 복권 한 장씩 쥐어주는 인심도 남아있었다. 봉포 해수욕장 앞에 있는 숙소를 잡았다. 한 주에 50만 원도 되지 않았는데, 넓은 방 두 개에 둘 모두를 드나들 수 있는 발코니가 딸려 있었고, 전자레인지나 냉장고, 정수기 등 생활가전에도 모자람이 없었다. 특히 좋았던 건 종일 뜨거운 물이 나오는 월풀 욕조였다. 욕조에 누워 발코니를 열면 바닷바람과 파도소리를 곧장 얼굴로 맞을 수 있었다. 밤에 불을 끄면 따듯한 바다 위에 떠있는 듯한 착각 같은 것도 들었다.
숙소 바로 앞에는 예쁜 카페도 있다. 사람도 많이 없어 한적한 분위기에서 글을 쓸 수 있었다.
장소를 정한 다음 규칙을 정했다. 휴가 내내 휴대전화를 꺼버릴까도 생각했지만, 휴가 중에도 중요한 연락이 올 수 있었다. 부모님도 하루이틀에 한 번 정도는 안부를 물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그래서 전화와 문자는 살려두기로 하고, 유튜브, 인스타그램, 카카오톡처럼 사용량이 많은 앱을 모두 지워버렸다. 휴대전화 바탕화면에는 사진첩과 네이버 지도, 조간신문을 볼 수 있는 앱만 남겼다. 목표는 한주 간 ‘알림 지옥’으로부터 달아나 몸과 정신을 충분히 쉬게 하는 것이었다.
일요일 낮,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발코니 문을 열어 시원한 바닷바람을 들인 뒤 방금 간 듯한 폭신한 이불을 덮고 맨발을 치댔다. 갑자기 너무 큰 행복이 닥치면 헛웃음이 나온다는 걸 알았다.
물고기를 잡았는데 성인 남성 서른 명을 골로 보낼 수 있는 독을 지닌 복어라는 걸 알고 바늘을 빼다 혹시 독주머니를 건들지는 않을까 봉돌을 산 낚시점으로 조르륵 달려갔다.
일과는 단조로웠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심심하면 낚싯대를 둘러메고 근처 항구로 향했다. 반나절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발이 푹푹 빠지는 백사장을 걷기도 했다. 바다가 있으면 밤에도 길 잃을 걱정이 없다. 많은 욕구를 억제하는 대신, 허락된 영역에서는 철저히 몸의 원을 따랐다. 몸을 꼼짝하기도 싫은 날엔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박완서와 장강명의 수필을 번갈아 읽거나 발코니에 앉아 글을 끄적였다. 휴가 중에 전화는 네 번 왔는데 급한 연락은 아니었다.
햄버거나 치킨처럼 짧고 굵은 흥분을 주는 음식들 역시 금기로 정한 터라 일주일 동안 내 식단은 햇반(혹은 우유와 오트밀), 닭가슴살, 두유, 마늘장아찌, 구운 아몬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마지막엔 질려서 메추리알과 버섯볶음을 추가해야 했다. 먹는 걸 참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에 도중에 도무지 못하겠다, 나자빠지는 건 아닌지 우려스러워 휴가 넷째 날인 목요일엔 미리 작은 일탈을 계획하고, 어떤 유명 기타리스트가 공연 일정이 없을 때만 내려와 연다는 고즈넉한 해변가 바를 찾아 ‘관자와 감자’ 요리에 와인을 곁들였다.
이렇게 열여덟 끼를 먹었다.
한순간에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신비로운 체험은 하지 못했다. 멍하고 졸린 기운에 반 수면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가장 많았다. 책을 일곱 권이나 챙겨갔지만 두 권도 채 못 읽었다. 체질이 이런 종류의 체험과는 맞지 않거나, 도파민 단식을 권장하는 후기들이 실은 과장된 건지도 몰랐다. 베스트셀러 <도둑맞은 집중력>을 쓴 요한 하리는 한 달 정도는 지나야 단식의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꼭 장점만 있지도 않았다. 닷새 정도 지나니 슬슬 불안했다. 급한 메시지가 왔는데 못 읽고 있는 상황이면 어떡하지. 인스타스토리는 하루가 지나면 평생 못 보는데 두고두고 회자될 이벤트를 놓치진 않았을까. 역사의 줄기를 바꿀 대형사건 같은 게 터져서 모든 기자들이 동원되는 중인데 나만 모르고 있다면. ‘정 급하면 전화가 오겠지’라며 불안을 떨쳐내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나중엔 좀처럼 가만히 누워있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일주일 뒤 확인했을 때 천 개 넘게 쌓인 카카오톡 메시지 중 나를 찾는 건 열 개도 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손주와 해변을 달리고 있다. 이런 풍경이 아름다워 뵈니 제법 나이가 들었나.
인적 드문 작은 해변에서 홀로 지내려니 외로움도 사무쳤다. 평소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성향도 아니고, 늘 혼자만의 시간을 부르짖어 왔는데도 막상 바다와 모래와 바람 밖에 없는 장소에서 살려니 적막을 견딜 길이 없었다. 업무 전화를 빼면 거나하게 낮술을 갈긴 동기가 한 번 전화한 게 전부였다. 난 그 전화마저도 재빨리 끊어지지 않도록 부단히 애써야 했다. 휴가 전 휴대전화 끊고 살겠다고 엄포를 놓아서 내버려두는 걸까. 아니면 원래 사회에서의 관계라는 게 업무라는 명분이 없으면 굳이 유지되기 어려운 탓일까. 잊히는 건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다만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의미 없는 영상이나 보면서 이 긴 시간을 보냈을 생각하니 아무래도 그거보다는 낫겠지 싶다. 경험에는 대조군이 없어서 소중함도 쉽게 묻히고 마는 거니. 다음 휴가 땐 휴대전화 사용시간은 똑같이 줄이더라도, 연락을 아예 끊진 말아야겠다. 너무 혼자만 보내려 하진 말고, 사람을 좀 만나야겠다. 바다는 늘 한결 같은 모습이어서 다시 찾게 된다지만, 당분간찾을 일은 없을 듯하다. 날 좋으면 올 가을에, 못해도 다음 봄에는 다시 찾아뵙겠노라고 주인 아주머니에게 너스레를 떨었건마는.
폭죽소리에 뛰쳐나간 게 아마 자정쯤이었나. '주민'으로서는 불편했지만 이 또한 낭만인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