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지 선행매매 사태
얼마 전 한 대형 은행에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재테크 강연을 연다고 해 화제가 된 적 있다. 그 은행에서 일하는 주식, 부동산, 연금 투자 전문가들을 불러 기획한 일종의 릴레이 강연이었다. 국내주식과 미국주식 중에 어디에 투자할지, 부동산은 어디를 볼지, 퇴직연금 어떻게 굴릴지 등 평소 돈을 내고서라도 듣고 싶었던 주제가 많이 포함돼 있었다. 현직 전문가에게 이런 고급 정보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은행은 기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이 강연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강연 안내 포스터에는 "기사 마감보다 중요한 건 기자님의 내일이니까요"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별생각 없이 신청하려는데 주변에서 반응이 좋지 않았다. 아마 포스터 문구가 문제인 듯했다. 다들 나름의 직업의식을 갖고 일하고 있는데 '당신의 일보다 인생이 더 중요하잖아요'라는 메시지는 (비록 맞는 말이라도) 적절하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우리가 불쌍해서 알려주겠다는 뜻이냐' '기자들을 아주 걸뱅이로 본다'는 반발이 튀어나왔다. 돈은 없어도 가오는 잃지 말자는 결의 같았다. 그런 싸늘한 여론을 의식한 듯 은행은 이틀 뒤 강연을 연기한다고 안내했다. 신청 인원이 많아 장소를 다시 구해야 한다는 이유였지만 장문의 공지가 풍기는 뉘앙스를 봤을 때 다신 열릴 것 같지 않았다.
정말 그런 이유로 강연을 취소했는지는 모른다. 그렇다 해도 은행 입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경제부 기자들은 은행 홍보들과 자주 밥을 먹는데, 밥값을 주로 홍보들이 낸다. 오래전부터 굳어진 관행이다. 천문학적인 돈을 버는 은행들이 도의적인 차원에서 사주는 것도 맞지만, 그렇게 사주다 보면 기자들한테도 어떤 부채의식 같은 게 생겨서 기사 톤이 누그러지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홍보들은 계속 사주는 위치에 있다 보니 기자를 무의식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보게 되고, 반대로 기자들은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시선에 대한 은근한 피해의식과 발작 증세가 생긴 것이다.
아무튼 돌아가서.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사태가 있은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기자들의 자존심에 큰 생채기를 낸 사건이 터졌다. 모 경제지 기자들이 미리 알게 된 취재 정보로 주식을 사고파는 '선행매매'에 연루돼 본사가 압수수색을 당했다. 아직 조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이들 한 명당 수억 원에 달하는 이득을 챙겼다고 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자신의 SNS 계정에 압수수색 뉴스를 공유하면서 전국민적 관심사로 부상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작년에도 여러 언론사 기자들이 선행매매·미공개 정보 이용 내부거래 등 범죄를 벌이다 덜미가 잡혀 재판을 받고 있다.
투자 열기가 뜨거웠던 만큼, 이번 사건을 둘러싼 개미들의 원성도 높았다. 댓글창에는 '경제지 기자들 오랜 전통이다' '경제지들 전부 폐간해야 한다'는 등 적개심과 증오 어린 댓글이 많았다. 경제부 기자 혹은 기자 집단 전체를 매도하는 댓글도 많았다. 몇몇 기자들의 일탈로 집단의 이미지와 신뢰도가 크게 훼손된 것이다. 기자들이 모인 익명 커뮤니티에서도 성토가 이어졌다. 업계에 너무나 치명적인 사건인 만큼 엄벌의 선례를 남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언론의 레거시는 과거부터 지켜온 신뢰 위에 세워져있고, 이것이 흔들리는 순간 우리는 한낱 종이공장에 불과하다는 위기의식이었다.
경제부 기자로 일하다 보면 그런 유혹이 많은 건 사실이다. 남들보다 먼저 중요한 정보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꼭 직접 취재한 정보가 아니더라도, 다른 부서의 취재 정보를 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어서 실상은 같은 언론사에서 일하는 모든 구성원이 비슷한 시험에 들게 된다. 여기에 가족이나 배우자를 동원한 차명 거래가 안 걸릴 것이란 믿음이 더해지면 유혹은 더욱 커진다. 얼마 전 한 지상파 매체 직원이 넷플릭스와의 협업 정보를 미리 듣고 몰래 주식을 샀다가 걸렸는데, 아버지도 이걸 샀다고 한다. 처음부터 아버지 계좌로만 욕심 안 부리고 했다면 걸리지 않았을 범죄다.
압수수색을 당한 경제지는 며칠 뒤 신문 1면에 사과문과 새롭게 마련한 윤리강령을 보도했다. 취재 분야 개별 종목 투자를 금지하는 해외 언론보다도 규정을 강화해 비취재 분야 주식 투자를 제한한다는 취지였다. 종목 투자는 반년 이상 장기 투자할 목적으로만 할 수 있고, 반기마다 보유 종목을 신고해야 한다는 규정도 추가됐다. 내부적으로 원성이 터져나왔지만, 전사적인 위기 앞에 그런 불만은 설 자리가 없었다. 파장은 업계 전체로 번졌다. 우리 회사는 아직 투자를 막는 움직임은 없지만, 단기 투자는 지양하는 분위기가 됐다. 재테크를 한다는 주니어 기자들은 이제 관찰의 대상이 됐다.
한편으론 요즘 주니어 기자들의 낮은 처우와 맞닿은 문제 같다. 은행의 말처럼 기사 마감만큼 기자의 내일도 중요한 법인데. 주변에서 앓는 소리가 점점 많이 들린다. 10년 넘게 업계에 남겠다는 동료가 없다. 대기업 수준의 초봉은 옛말이고, 기렉시트는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전에는 높은 초봉으로 낮은 임금인상률을 위로했지만 앞으로는 둘 다 낮은 상황에 시달릴 처지다. 당장은 하후상박식 임금 인상으로 불만을 덮어도, 전체 파이가 줄어드는 산업에서 언제까지 더 버틸 수 있겠나 싶다. 오히려 재테크는 장려돼야 했다. 이번 사태로 그 반대가 됐다. 앞으로 탈직 행렬이 더 길어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