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에 이 곳으로 이사를 했다. 오래돈안 한 곳에서 머물러 있으려고 했지만 본의 아니게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는 매우 성가신 일이다. 이사를 할 렌트 집주인한테 전화하고, 찾아가고, 짐을 싸고, 보증금을 준비하고, 또 짐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이사를 하는 게 정말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지금 이사한 렌트 하우스와 그전에 콘도와는 불과 15분밖에 안 걸리는 거리지만 정말 쉽지 않았다.
캐나다에 오고 나서 그동안 생활필수품이라고 생각하고 산 물건들이 정말 너무 많았다. 무거운 책들, 두툽 한 겨울 잠바들, 몇 년째 입지도 않고 있었던 티셔츠와 바지들, 예전에 사놓고 그냥 잠자고 있던 프로그램 CD/DVD, 용도에 맞게 필요에 의해 그때그때 샀었던 접시, 컵, 용기들...
순간 든 생각!
다 버리고 이사가자!
이사하기 전에 다 버렸다. 정말 나에게 지금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다 버렸다. 100권 가까운 책들과 프로그램 CD/DVD는 Donation Centre에 줘버리고, 겨울 잠바와 안 입고 있었던 티셔츠와 운동복은 헌 옷 수거함으로 직행했다. 접시와 수저들은 전 집에 두고 나왔다.
이렇게 버리고 났더니 이삿짐이 딱 여행가방 두 개였다.
나에게 너무 소중한 재산 1호 맥북프로, 아이폰, 그리고 30GB USB, 그리고 나머지 모든 문서는 모두 PDF로 만들어서 구글 드라이버에 올려버렸다.
영어 관련 교재, 그리고 내가 힘들 때 읽으면 영감을 주는 책들만 남겼다. 캐나다에 와서 목돈을 주고 그때그때 새책을 샀던 교재는 모두 Used Text Book으로 페이스북을 통해서 팔아버리고, 지금 내가 하는 GeoTech, Inspector에 관련된 책만 남겨주었다. 영어 교재는 수시로 하고 있는 영어 투터를 위해서 일단은 남겨두었을 뿐이다. 언제 다 버릴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명상을 하기 전에 주로 읽은 영적인 책, 두세 권뿐이다. 그간 써봤던 로션 중에서 내 피부에 맞는 로션과 힐링크림, 양치를 했을 때 제일 기분 좋게 해주는 치약만 쓰기로 했다.
원래는 조금 큰 장지갑과 작은 포켓 지갑 두 가지를 가지고 다녔다. 데빗카드, 신용카드, 포인트카드, 기프트카드 쿠폰 등등 다 가지고 다녔었다. 이사를 할 때 보니 장지갑이 야외에서 일을 하면서 다 헐어버려서 이 참에 버리고, 작은 포켓 지갑에 데빗, 신용카드, 운전면허증만 넣고 다닌다. 나머지 포인트카드 등등은 모두 Apple Wallet으로 포인트 적립하기로 했다.
출근할 때는 전자시계, 차 키, 지갑만 넣고 나간다.
먹고는 살아야 한다. 나에게 있어서도 먹는 낙이야말로 멍청 인생에서 크게 차지한다. 그러나 그동안 내가 집에서 해 먹은 음식은 그렇게 많지 않다. 찌개, 볶음 요리에 꼭 필요한 식기로 줄였다. 커피 마시는데 중요한 트레블 머그, 그리고 도시락통, 그리고 아이스 보온병. 이 정도면 먹고사는 데는 충분한 것 같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옷도 꼭 필요한 것만 있다. 작업복 세벌, 후드티 한벌, 봄/가을 잠바 하나/ 가죽재킷/겨울 재킷/ 청바지 하나/ 면바지 하나/ 면 티 3개 벨트, 일주일치 속옷과 양말 이 걸로 끝이다. 안전화/장화/스니커즈/샌들 하나씩 있다.
지난주에 YouTube를 보다가 Recommanded에 '사사키 후미오' 일본 직장인의 다큐를 보게 되었다. YouTube를 타고 영상을 보다 보니 나처럼 꼭 필요한 물건으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말 그대로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사람들. 정말 필요한 물건을 제외하곤 과감히 버리는 사람들 이야기였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정보와 식량 과잉, 그래서 이제는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공유 Share의 문화로 사회가 바뀌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조금 다른 Minimalism이다.
바로 생존이다.
생존 때문에 미니멀리스트 아닌 미니멀리스트로 자처하게 된 것이다.
외국에서의 룸 렌트 생활이라는 것이 말이 좋아 생활이지, 장기 여행 체류자 같은 느낌이다. 상황이 조금만 바뀌면 이사를 하게 된다. 대학교에 입학하면 학교 옆으로 이사를 가야 하고, 렌트비가 조금이라도 낮다고 하면 또 이사를 해서 생활비를 줄일 때도 있고, 지금처럼 직장을 잡게 되면 출퇴근 시간을 줄이려고 회사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또 하게 된다. 물건을 사고 싶어도 나중에 짐이 될까 봐 정말 물건 살 때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가볍게 생활에 해보니 너무 좋다.
설거지도 그릇 한 두 개만 하면 되고, 아침마다 뭐 입을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물건 정리하면서 시간 낭비하는 일도 없어지고, 청소하기 전에 청소할 것을 만들지 말자는 주의라서 청소 횟수도 많이 줄었다. 그 남는 시간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사진 감상을 하고, 내일 업무를 위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이곳 이민 생활도 얼마나 헉헉 되면서 살아봤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가볍게 살아보니 나 스스로에 대해 관리하는 시간이 오히려 많아져서 주변의 인간관계가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에 집중을 하고 그 일을 위해서 나머지 시간이 더 소중해져서 익숙하게 습관적으로 하게 되는 인간관계보다는 더 의미 있는 만남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매일 같이 카톡 하고 같이 밥 먹고, 술집에도 가서 밤새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하지만, 이런 행동은 의식적이기보다는 무의식적인 습관에 가깝다. 아무런 자극이 없는 타성에 젖은 인간관계는 서로 발전이 없다.
인간은 고독하다. 늘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다. 다시 말하면 사회적 동물이라서 늘 항상 인정받고 싶어 하고 관심받고 싶은 욕구가 개개인마다 있다. 물론 좋은 사람들과 의미 있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면 이 욕구가 충족되고 충만한 기분으로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지만, 이것 또한 일시적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가치를 잊어버리거나 인지하지 못하면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 인간관계이고 사회생활이다. 미니멀리스트는 자기만의 시간에 투자하고 그것에 자신감을 가지게 됨으로써, 그 시간에 오히려 나를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생활양식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자신의 가치를 확실하게 인정해주는 소수의 사람들과 교류함으로써 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욕망의 절제이다. 주변 친구들 보면 무언가를 꼭 사고 싶다거나 꼭 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 욕망이 자기 자신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욕망을 멈추지 못한다. 사회적으로 이런 개개인의 욕망을 자극하여 이익을 보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 많이 없다고 해서 나에게 물질에 대한 욕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욕망을 잘 조절하고 있을 뿐이다. 강렬한 욕망 자체를 끊기랑 정말 힘든 일이다. 미니멀한 삶의 자세, 가볍게 살아가는 것은 바로 이 욕망을 바로 보고 잘 다루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다.
아침마다 차를 타고 출근하면서 생각하는 게 있다. 나는 내 갈 길이 바쁘지, 다른 차들이 어디를 가는지 서로 관심이 없다. 단지 사고를 내지 않도록 차선을 지키고, 양보를 하고, 속도도 준수한다. 복잡한 교통체증에서도 서로 부딪히지 않고 각자 알아서 목적지로 결국은 간다. 교통질서를 통해서 서로를 지켜주고, 전방 주시하면서 운전해 가는 것이다. 앞 뒤, 양옆의 차가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나는 알 필요가 없는 것이다.
꼭 필요한 물건을 도구로 인식하고 꼭 필요한 것만 사용함으로써, 인간관계 역시 나를 뽐내거나 인정받으려고 만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존재로서 만남을 할 수 있을 거라 본다. 그렇게 해야, 상대에게 뭘 요구하지 않지만 진지하게 부담 없이 만남을 계속할 수 있다고 본다.
내 주변의 모든 것을 손님이고 나 또한 이 세상의 손님처럼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딱 하나만 더
카메라만 있으면 된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