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rry Choo May 30. 2021

세상이 정말 살기 좋아졌을까?

토요일


송도에 학원으로 출근했다. 아침을 안 먹고 나와서 그런지 허기가 져서 수업 중간에 급하게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이 편의점에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있는데 정말 지난 6개월을 봐 왔지만 단 한 번도 빠짐 없이 전화를 하고 있고, 계산할 때도 한 손으로는 휴대전화를 들고 상대방과 이야기하면서 박 코드를 찍는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이 편의점을 이용하는데 한 번도 변함이 없이 통화하고 있다.


불쾌하지만 그냥 웃어넘겼다. 마지막에 "안녕히 가세요~"라는 말에 의미를 두고 넘어간다.




시끄러운 식당 음악
택시 기사의 라디오


가끔 식당에 가면 시끄럽게 음악이 들릴 때가 있다. 그래서 음악 소리를 조금 작게 해달라고할 때가 있었다. 음식 소리 때문에 음식의 맛을 제대로 못 느끼는 경우가 있고 같이 밥을 먹는 상대와 대화를 하기 힘들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부터는 그냥 조용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 시끄러운 식당 음악의 이유를 알고 나서부터는...


급할 때 택시를 타면 꼭 라디오 소리가 너무 크고, 듣기 싫은 음악 소리가 울릴 때가 있을 때도 나는 소리를 꺼달라고 하거나 볼륨을 줄여달라고 했었다. 그러나 그 음악과 라디오 소리를 크게 한 이유를 짐작하고 나서는 그냥 조용히 뒷좌석에 앉아서 목적지까지 간다. 




고급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가면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그래서 귀에 거슬릴 필요가 없다. 왜 그럴까? 그만큼 우리가 가격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모범택시를 타면 아주 편안한 승차감을 내가 돈을 낸 만큼 누리고 목적지까지 간다. 예전에는 내가 지불한 금액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지불한 만큼 무조건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노동에 대한 등가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홀 서빙을 하시는 분들을 위한 노동요였고, 일반 택시의 라디오와 음악은 기사분들의 피로를 풀어주는 수단이었던 것이었다.


손님이 왕이 아니다. 손님이 왕이 되려면 노동자에게 충분히 대가가 지불되었을 때, 적어도 등가 법칙이 만족할 때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새벽 배송이 정말 필요한 걸까?


밤늦게 운전을 하다 보면 새벽 배송 기사분들을 많이 보고 새벽 배송을 하는 만큼 저 기사분들이 일반 배송보다 두 배, 세배의 돈을 벌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아니라고 들었다. 우리가 새벽 배송을 주문하면 배송비를 두 배, 세배 더 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새벽 배송이 필요한 걸까라는 생각을 매번 해본다. 




캐나다에 있을 때, Canada Post 전체 파업으로 거의 3개월 이상 우편배달과 택배 배달이 멈춤적이 있었다. 긴 3개월이었지만 모두 참아 주었다. 그 파업의 이유가 초과 노동에 대한 임금 협상의 결렬 때문이었다. 


세상이 살기 좋아졌을까?



세상 살기가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착취가 이루어져도 허름하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자세하게 살펴보지 않는 이상 세상살이가 정말 힘들다는 것을 실감하기 힘들게 되었다. 



예전에는 착취라는 것이 허름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가시적으로 세상살이라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 보였다. 이제는 세련된 시각적 외향 속에서 착취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몸으로 눈으로 직접 안 느껴지는 것이다. 착취도 세련되었다는 것이다. 허름하게 보이지 않는다. 제복을 입은 플랫폼 노동자들의 모습은 세련되어 있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도 겉모습은 허름하지 않다. 허름하지 않은 착취를 하므로 세상살이가 좋아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음식점,  편의점 아르바이트분들의 모습이 허름하지 않다. 맥도널드, 배스킨라빈스, 메가 커피전문점에서 일하는 분들의 모습에서 허름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세상살이가 그렇게 함하고 고통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이제는 사람을 갈아 넣는
사회에서 탈피하자


그래서 산업재해가 우리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사람의 목숨이 처참하게 더 충격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산업재해의 죽음이 과거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더 충격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착취의 비열함과 허름함이 안 느껴지다가 처참한 모습으로 확 나타나기 때문에 더 충격적이다. 배스킨라빈스, 편의점, 우리의 직장 곳곳에서 일어나는 착취도 가혹한 것이지만 무감각해져 있다가 뉴스나 보도로 그 처참함을 접하기 때문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문제는 
국가의 투자이다.



그럼 그 개인 사업주들이 악마들일까? 나는 예전에 고용주들이 악마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런 논리는 부동산 오르는 것이 투기꾼 때문이다고 몰아가는 논리랑 비슷하다. 사람은 다 똑같다. 자리를 바꾸면 똑같아진다. 그 제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살펴보고 제대로 제도가 돌아가기 위한 비용을 국가가 지불해야 한다. 


캐나다에서 토목 공부할 때 교수님이 그랬었다.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나면 꼭 운전자 책임이 아니다. 설계 때부터 안전을 생각해서 설계해야 한다. 비용이 더 들더라고 토양을 튼튼하게 만들고 안전한 곡률로 설계되어야 한다


투자한 만큼 사람 목숨을 구할 수 있다.최근 몇 년간 교통사고 사망자는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도로 CCTV의 확충이다. 정부가 돈을 써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도 비트코인 해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