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 갠지스강에 버리고 얻은 것들

걷다 보면 걸어진다. 살다 보면 살아진다.

by 탱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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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인도여행의 마지막 도시에 도착했다. ‘마지막 도시’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마음을 죄어 온다. 당시 나의 내면에는 누적된 상처와 분노가 결이 분명한 지층처럼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그로 인해 육중한 지층의 무게로 숨을 헐떡이곤 했다. 다행히 오래전에 예정되어있던 2주간의 인도 배낭여행이 숨구멍이 되어 주었다.


배낭에 함께 담아온 짐


배낭을 꾸렸다. 2주의 여정이라 배낭이 무거웠다. 여행 필수품만 담은 것이 아니라, 내가 해결하고 싶은 중량감 있는 삶의 문제를 함께 구겨 넣었기 때문이다. 그 여행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어야 한다고.


그렇게 인도에 가서 최소한 감정적으로 쌓인 것들을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눈물 나는, 인생의 에피소드 같은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고 기대했다.


인도에 도착했다. 잔뜩 부푼 기대를 안고 일정을 따라 성실하게 발자국을 남겨보았다. 그런데, 일행들이 느끼는 감탄과 감동 정도만 그것도 살짝 경감되어 나에게 다가올 뿐이었다. 이 도시, 저 도시 여정에 따라 이동하고 있지만 특별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꼭 감정과 눈물이 솟구쳐 오를 만큼 극적이지 않아도 된다고 타협했다. 나를 향한 따뜻한 위로, 혹은 돌아가서 내 삶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약간의 깨달음이라도 바랬다. 하지만 마음은 자이살메르의 사막처럼 건조했고, 머리는 복잡한 델리 거리의 한복판처럼 산만했다. 그러다가 일정의 마지막 도시 바라나시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바라나시 강물에 던져버린 것


바라나시에 도착했다는 사실은 나에게 2박 3일의 시간이 남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더 조바심이 났다. 뭔가 해결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가 뭘 더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결론이 그랬다.


배낭에 함께 담아온 숙제이기도 했고, 혹은 여행을 통해 받고 싶은 선물이기도 했던 특별한 경험. 임팩트 있고, 뜨겁고, 감동적인 그 서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그저 여행하는 것밖에 없었다. 막다른 길에 다다르고 나자 현실적으로 판단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렇게 체념하고 포기한 것일수도 있다.


더 끙끙대지 않기로 하자. 여행에 대해 후회하거나 아쉬워하지 말자 다짐했다. 꼭 돌아오고 싶었던 인도에 왔으니까. 그냥 남은 시간 편한 마음으로 여행을 하자. 내게 남겨진 유일한 선택지였다. 포기하는 마음으로, 억지스럽게 짊어지고 온 짐과 기대를 갠지스강에 던져 넣었다.


얻은 것 하나 : 여행이 삶이고, 삶이 여행이다.


마음이 편했다. 강박에서 벗어나 여행에서 처음으로 자유를 느꼈다.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억지로 만들어내려 했던 감동도, 강요된 깨달음도 내려놓으니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목적도 없이, 발 길 닿는 대로 걷는 다는 것이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그간 괜히 마음에 힘을 주고 여행을 했나 싶었다. 뭔가 간증 거리 하나 정도 만들고 싶은 천박한 욕구였을까? 불필요한 짐을 버리니, 그만큼 여유로워졌다.


텅 빈 마음으로 바라나시를 관통하고 있는 갠지스 강변을 걷고 또 걸었다. 꼬박 이틀을 그렇게 강변을 따라 걸었다. 3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인도의 적절한 친숙함을 즐기며 걸었다. 여전히 생경하고 낯선 것들에게 시선을 건내며 걸었다. 가끔 누군가와 함께 걷기도 했다.


걷다 보니 더 이상 걸어서 갈 수 없는 강변의 어느 지점에 다다랐다. 그러다 문득 이제 여행이 진짜 끝이 났구나 하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여기가 일정상 마지막 도시라서가 아니다. 뭔가 특별하길 기대했던 이 여행이 내 일상처럼 편안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거기서 여행은 끝이 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지점으로부터 내가 마주해야 할 삶이 연결되어 희미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았다. 여행의 끝과 삶의 시작이 연결되고 있었다. 특별해야만 할 것 같은 여행은 일상처럼 끝이 나고, 특별하지 않을 것 같은 내 일상은 새로운 여행이 되어 시작되는 것 같았다.


여행이 삶이고, 삶이 여행이었다. 짊어진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얻었다. 그러자 여행이 끝나 가는 것이 두렵거나 초조하지 않았고, 다시 내 삶과 마주하는 것이 싫지 않았다.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저 깊은 곳에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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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은 것 둘 : 나는 걷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전까지 여행 내내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이 여행에 특별한 일을 기대하고 있었다. 일종의 도피였다. 내 힘 들이지 않고 뭔가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는 요행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없다. 여행은 여전히 잠잠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냥 걷는 것 뿐이었다. 여행의 막바지에서 여행이 일상이 되고, 일상이 여행이 되어갔고, 그 지점에서 내 삶은 나에게 어서 돌아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결국 삶이란 계속 걸어 가는 것이구나. 지금 내가 어두운 동굴 어디쯤을 지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힘든 일이건, 쉬운 일이건, 그저 받아들이고 그 안으로 뚜벅뚜벅 걷다 보면 결국 관통하고 지나가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동굴 끝에 다른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보려면 나는 존재해야 하고, 그렇게 하기위해서 나는 걸어서 이 동굴을 내 두발로 걸어 나와야 했다.


강변을 따라 묵묵히 걸으며 결심했다. 그냥 이렇게 걸어 들어가자고. 돌아가서도 오롯이 내 힘으로 두 다리를 지탱하고, 앞으로 걸어 나가자고. 내 인생의 다음 챕터를 꼭 확인해보자고.


나는 걷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돌아와서


그리고 정확히 10년이 흘렀다. 다시 맨몸으로 맞이한 내 삶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삶에서 도피하지 않고, 길이라 여겨지는 것을 더듬어 가며 걸어가고 있다.


지금은 두 아들의 아빠가 되었고, 40대 중반의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10년 사이 삶을 휘청이게 하는 크고 작은 위기들이 있었다. 내 모든 것을 쏟아 넣고 싶었던 일을 결국 내려 놓았다. 전혀 다른 영역에서 새로운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미루고 미뤄두었던 무거운 숙제 하나도 끝내기로 결심했다.


여전히 기우뚱 거리고 앞걸음 질과 뒷걸음 질을 반복하기도 한다. 가끔 삶이 너무 하다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땐 종종 바라나시 강변을 걷던 그 순간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럼 그냥 힘을 빼고 한 걸음 한 걸음만 더 걸어 가보자고 다짐하고, 걷는듯이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삶에서 선물 같은 순간들도 주어지고, 조금씩 변화도 생겼다. 이 여정 속에 독서와 글쓰기라는, 내 앞으로 삶의 주제와 소재로 삶고 싶은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앞으로 10년 뒤쯤에는 작은 북 카페를 운영하며 책과 글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꿈도 꾼다.


지금 내 삶의 걸음은 10년 전 바라나시 강변을 걷던 그 걸음에 닿아있다. 10년 전 그 걸음들의 연장선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노래 가사가 마음에 쿡 들어와 박힌다. 그래 걷다 보면 걸어진다. 살다 보면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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