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쾌락사이! 난 무엇을 어떻게?

에리히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서

by 탱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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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경험한 기쁨


그날의 경험은 꽤 극적이고 인상적이었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쯤, 일주일에 삼사일 정도 하루 십 오분씩 함께 공부를 했다. 기초연산! 손가락을 굽혔다가 폈다가 하며 끙끙대며 더하기 빼기를 익혀갔다. 드디어 두 수를 더해서 10이 넘어가는 단계에 왔다. 예를 들자면 7+8 이런 것이다. 가능한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쉽게 계산을 하기 위해 7을 10으로 만들어주어야 한다. 8을 3과 5로 먼저 갈라주고, 3을 7과 더해 10을 만들고 남아있는 5를 더해주어야 한다는 식으로.


처음에는 숫자를 가르면서 더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둘째가 혼자 안쓰럽게 끙끙대다 가 갑자기 깨우침이 왔나보다. 갑자기 얼굴이 환해지더니 손뼉을 치고 소리를 지른다. 깨달음이 온 것이다. 그러더니 혼자서 신나게 연산 책을 풀어내려갔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둘째가 웃고 떠들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아왔지만 이날 보다 더 극적으로 기뻐한 모습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글쎄 이런 느낌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기쁨..기쁨 중에서도 최고의 기쁨. 우리가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만족감 혹은 환희! 아마도 우리 몸에서 도파민이 최대치로 발산되는 순간일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가끔 이런 경험을 하곤 한다. 첫째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었다. 더 어린 3-4살 시절, 기저귀를 떼는 연습을 할 때, 처음으로 펭귄 모양의 간이 소변기에 혼자서 소변을 보았을 때, 그리고 동물모양 스탬프를 혼자 잉크를 뭍여 종이에 찍어 냈을 때 지었던 그 환희에 가득찬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기쁨과 쾌락에 대한 정의 : 에리히 프롬의 표현을 빌리자면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 에서 기쁨과 쾌락을 이렇게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우선 원문을 그대로 옮겨 보겠다. "기쁨은 생산적 능동성에는 으레 붙어다닌 것이다. 그것은 갑자기 최절정에 이르렀다 끝나 버리는 '절정 경험'이 아니라 오히려 고원(高原)으로서 그 사람의 본질적인인간능력의 생산적 표현을 동반하는 감정상태이다.쁨은 순간적인 망아의 불꽃이 아니다. 기쁨은 존재와 함께 오는 빛이다. 쾌락과 스릴은 이른바 절정에 이른 뒤에 슬픔을 가져온다. 왜냐하면 스릴은 경험했지만 그 그릇은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내적 힘이 증대되지 않은 것이 다. 승리의 순간까지는 성공한 것처럼 느끼지만 승리에 이어 깊은 슬픔이 그를 엄습한다. 그의 내부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정리를 해보자면, 쾌락은 절정의 경험 후에 사라지는 것이고 기쁨은 내 존재 안에서 나의 성장과 힘이 증대되면서 느낄 수 있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고 내 안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감정이라 할 수 있겠다.


성장이라는 기쁨


우리는 한 인간이다. 나라는 몸을 가졌고, 나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이 의식과 몸을 가지고 살아갈 때 삶은 우리에게 "체험" 이라는 형식으로 다가온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활동, 혹은 대화, 영화를 보는 것이나, 음악을 듣는 것도, 운동을 하는 것도, 공부를 하 고 책을 읽는 것도 그 모든 것은 우리에게 체험으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기쁨을 허락하는 체험은 무엇일까? 몸과 의식을 아우르는 하나 된 나라는 존재가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혹은 최선의? 아니면 가장 유익한 체험은 무엇일까? 나는 아마도 둘째와 수학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처럼 "성장하는 체험" 이 최고라 생각한다. 몰랐던 것을 깨닫게 되고, 할 수 없었던 것을 할 수 있게 되고, 그래서 내가 더 나아진 사람이 된 것 같고, 삶이 이전 보다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하는 느낌. 나라는 총체성에 뭔가 질적인 변화가 느껴지는 것? 이 모든 것을 포함해 하는 개념으로 "성장” 하는 체험이 기쁨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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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장과 기쁨 : 읽고, 생각하고, 쓰고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성장시키고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을 줄까? 그것은 바로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을 읽으면서 내 사유의 한계를 도끼로 쪼개고, 나의 내적 체계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생각속에서 머물면서 나의 체계를 다시 세운다. 다시 건설하는 과정에서 연결이 되지 않고, 복잡하게 얽여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지점에서는 글을 쓴다. 그러다보면 새로운 지평이 열리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해답을 발견하며 일련의 과정을 잠정적으로 마무리 하게 된다. 그 후 나는 좀 더 확장되고 성장하고, 단단해져 있음을 확인하고 내가 내딛지 못한 더 넓은 세계를 향해 용기를 내어 나간다.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이 순간들이 나에게는 가장 큰 기쁨과 환희를 선사한다. 내 안에서 나에게만 일어난 고유한 체험, 내 의식과 세포에 새겨져 있어서 절대 누구에게 빼앗기지 않고 또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확신이 있기에 쾌락과는 분명하게 구분을 할 수 있다.


남겨진 과제 : 기쁨과 쾌락사이에서


나에게 남겨진 과제는 이것이다...기쁨과 쾌락! 어떻게 하면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나에게 더 유익한 것을 선택하며 삶에서 채워나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한 중간에서, 두 아이의 아빠로, 그리고 직장인으로 살아내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다. 아빠 & 직장인! 나를 이 두 단어로 표현되기 위해서 나는 내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의 99%를 소진시킨다.


내 불씨가 사그러 들지 않고 다시 활활 태워오르기 위해서 기쁨의 연료가 필요하다. 그래서 할 수 있다면 맑은 정신으로 기쁨의 활동으로 내 에너지 레벨을 끌어올리려 한다. 하지만 하루의 삶 속에서 겪는 육체적 감정의 부침들. 피로와 불안과 분노와 슬픔, 그로 인한 충동과 무기력함들은 많은 경우, 나를 스마트폰에서 얻을 수 있는 쉽고 편한 쾌락에 머무르게 하곤 한다.


그러한 나를 채찍질 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일종의 휴식이고, 쉼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이기도 하니까. 그러다 다시 일어나 책상으로 몸을 옮겨 다시금 책을 펴기도 한다. 기쁨이 더 좋은건 알지만, 단 하나의 단점이 있다면 생산적인 일이라 어느정도의 힘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찌들어 있는 우리들이 늘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쉬운 선택을 하는 것이 딜레마이기도 하다.


어짜피 완벽할 수는 없으니 그리 불편한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다만 기쁨과 쾌락을 구분하고, 나를 좀더 강화시키는, 성장시키는, 확장시키는 기쁨을 경험할 수 있는 선택을 내 일상 속에서 한번 더 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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