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인격수양
아빠 저 차들은 왜 안 멈추고 빨리 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하이패스 단말기를 장착한 차들이 하이패스 전용 차선으로 슥 지나가는 걸 보고 둘째 아이가 물어본다. 그렇다. 내 차에는 하이패스 단말기가 설치되어있지 않다. 톨게이트가 나오면 곧게 뻗은 하이패스 전용차선에서 옆으로 빠져서, 몇 칸 되지 않는 현금 결제 칸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앞차들이 빠져 나가길 기다렸다가 멈춰서 카드로 결제를 하고 다시 출발을 하곤 한다.
고속도로에 아주 심한 정체가 된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하이패스 차선이 톨게이트를 더 빨리 통과한다. 정지하고 현금이나 카드로 결제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주행하던 속도에서 살짝만 줄이고 멈춤 과정 없이 부드럽고 빠른 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나간다.
역시 ‘편리’, ‘빨리’를 좋아하는 우리나라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시스템이다. 꽤 효율적이고 톨게이트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혼잡을 많이 줄여 준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왜 이 효율적인 하이패스를 이용하지 않는 것일까?
꼼꼼히 따지고 보면, 하이패스는 매우 편리하고 나에게나 혹은 나와 같이 차를 타고 다니는 아이들에게나 매우 유용한 수단임에 분명하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 혹은 운전 중에 도로가 정체되는 것, 약속시간이나 계획된 일정에서 늦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나에게 하이패스는 분명 잘 어울리는 것이고, 나의 주행을 윤택하게 하고 나의 정서를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직까지 단말기를 설치하지 않은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나는 빠른 걸 좋아하고, 기다리거나 지연되는 걸 싫어하고, 모든 상황이 내가 예상하고 계획한대로 흘러가길 원하는, MBTI 로 설명하자면 '슈퍼 파워 J'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장착하지 않고 있다. 아니, 장착을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조급한 내 성격, 항상 상황이나 일정을 통제하려는 욕구가 강한 내 성향은 가면 갈수록 더 강해져 가고, 이로 인해 내가 겪는 내적 불편함과 고통이 더 커져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뭔가 매끄럽게 계획대로 빠르게 진행되지 않으면 내 내면에는 뭔가 방아쇠가 당겨지고, 감정이 탕 하고 터져나간다. 20~30대는 더 심했던 것 같고, 이제는 40대가 되어서 그나마 많이 누그러지기도 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정도로의 내공도 생겼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괜찮은 것은 아니다. 중심이 흐트러진 감정을 다시 수습하기 위해서는 여러 번의 깊은 심호흡과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삶을 살아온 시간이 누적되면서,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고,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들을 많이 겪었나보다. 삶이란 것이 변수가가 많고 통제 불가능 하다는 것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삶이 그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지연이 되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감정의 방아쇠를 당기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편하게 넘기고 훈련이 필요했다. 내 중심을 잃지 않으며 그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내 존재를 바꾸는, 나라는 사람의 경향성을,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바꾸는 일이라 쉽지 만은 않고 여전히 지금도 노력중이다. 이러한 변화가 자연스러워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필요했다. 나의 방아쇠를 조여 오는 상황에 대한 자각도 중요했고, 그 상황에서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 의지도 키워야 했다. 이러한 것들은 거저 얻어지지는 않았다. 노력을 해야 했는데, 노력 보다는 훈련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그 중에 하나, 가장 중요한 훈련은 바로 마음챙김 (mindfulness) 이다. 내 마음을 내가 인식하고 알아주는 것이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상황에서 내가 기분이 어떠한지, 내가 얼마나 감정이 들끓고 있는지를 내가 바라보며 나를 성찰하는 것이다.
불쾌한 상황 한 중간에서 감정이 부글부글 하는 나로서 그 상황과 감정에 매몰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그렇게 내가 겪고 있는 모든 감정을 다 느끼고, 바라보고, 인정하고, 거기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는 것이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마음챙김에 대해 이렇게 간단하게 요약을 해서 정리를 하기가 쉽지가 않다. 감정에 빠져있을 땐 오히려 그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다만 한 발짝 물러나서 나와 내 감정을 바라봤을 때, 그 감정을 더 잘 느끼고 이해할 수 있고, 또 쉽게 벗어날 수 있다는 건 분명했다.
또 다른 훈련도 했다. 내가 힘들어 하는 문제 상황을 일부러 만들고, 그 상황 속에서 나를 밀어 넣고, ‘나는 괜찮아’ 라는 걸 인정하고 확인하는 훈련이다. 일종의 '예방주사'라 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훈련의 하나가 바로 하이패스를 설치하지 않는 것이다. 고속도로에 차가 많아서 정체가 되고, 혹은 톨게이트가 혼잡해서 빠져나가는데 시간이 걸릴지라도 괜찮다는 것이다. 그 상황들이 내가 불편해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지만, 내가 그런 상황을 일부러 선택하고, 직접 그 불편함을 느끼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기로 한 것이다.
차가 밀려서 예상보다 조금 늦어도 괜찮고, 앞차가 느리게 가도 괜찮은 것이다. 나는 토요일, 일요일 아이들과 정기적으로 다니는 곳들이 있어서 주말마다 꾸준히 고속도로를 이용한다. 톨게이트를 지날 때, 내 옆으론 하이패스를 설치한 차들이 쌩쌩 달리곤 하지만, 나는 톨비 결제를 위해 꼭 멈춰야 한다. 그리고 창문도 내렸다 올려야 한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한번 멈춰서는 것도 괜찮다고, 창문을 내리고 공기를 환기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되새긴다.
더 빨리지고 예측 불가능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모든 것이 빠르고 더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더구나 극도의 효율과 통제를 지향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서 조금마한 기다림과, 지체, 나의 통제를 벗어나는 일, 즉 아주 작은 자극으로도 나는 쉽게 평정심을 잃곤 했다.
그런데 앞으로 세상은 더 빠르고 매끈하게 돌아갈 것이고, 나는 자연스레 이에 적응하고 편승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가다보면 아마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더 작은 자극에도 내 감정의 방아쇠가 쉽게 당겨길 것이고, 돌아서서 나는 후회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나를 멈춰 세우고 새롭게 변화시키기 위한 몸부림을 선택했다.
살다보니 그렇더라, 내 계획대로 되는 일보다 되지 않는 일이 많고. 내 시간표에 맞춰서 진행되기보다 그렇지 않는 경우가 많고,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변수들은 그냥 일상적으로 빈번하게 일어나곤 한다. 이것이 우리 인생, 세상사의 본질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받아들이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방아쇠를 누르지 않아도 된다. 괜히 불필요한 동요와 감정적 문제를 만들어 내지 않게 된다.
그래서 나는 좀 더 편안하고, 안정감 있게 살아가기도 한다. 아마도 난 이전 보다 더 너그러워졌을 것이고, 마음의 중심 축이 무너지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생산적이기도 한 것 같다. 나의 기질과 경향성을 파악하고, 이를 다룬다는 것은 쉽지 않긴 하다. 하지만 그걸 조금이라도 해내고 나면 삶의 질적인 향상과 성장의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당분간 여전히 하이패스를 설치하지 않을 계획이고, 여전히 나는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깊은 숨을 한번 들이마시면서 ‘괜찮아’ 라고 나에게 말해줄 것이다.
하이패스를 설치하지 않는 것은 나의 변화, 성장을 위한 하나의 수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