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낫 디 온리원

by 김태훈

음악에 휘감기는 순간이 있다. 별 감상 없이 노래를 들으며 걷다가도 그 순간은 문득 찾아온다. 세상은 일순 페이드아웃 되고, 도로시를 감싸고 간 그 바람처럼 음악은 나를 어딘가로 데려간다. 소울컴퍼니, 오아시스, 쏜애플…. 나와 같은 진동수를 공유해온 음악들을 사랑한다. 지금도 그 음들을 조물락거리다 보면 불현듯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안으로 흘러들게 되고, 내가 또 어떤 질감을 느끼면서 한 시절을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생(生)의 표제 같은 음악. 내가 지금 통과하고 있는 3년의 긴 터널도 결국 백현진의 ‘모과’(미발매곡)와 이장혁의 ‘스무살’로 시작과 끝이 정리될 것이라 짐작해 본다. 플레이리스트를 차곡차곡 채우다 보면 삶은 음악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내가 죽고 나서도 음악들은 어딘가에서 재생될 것이다. 작년 우리 곁을 떠난 사카모토 류이치는 죽기 전에 플레이리스트를 하나 남겼다. 자기 장례식에서 틀어주길 바라는 노래 33곡을 담았다.


언젠가 내 아버지도 운전하다 조수석에 앉은 내게 류이치 같은 부탁을 한 적이 있다. 자기가 죽으면 장례식장에서 안치환의 ‘위하여!!’를 틀어 달라고. 나는 미리 그날을 떠올리며 초상 뒤 넋 없이 앉아 있을 내 모습을 그렸다. 향처럼 은은히 틀어둔 음악에서 안치환은 목 놓아 위하여, 위하여 하겠지. 그리고 나는 장성한 아들을 차에 태워 학교에 바래다주던 그때의 아버지의 옆모습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2022년 겨울 백담사.


음악이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손과 손을 포개어놓기도 한다는 걸, 경험한 사람은 안다. 2022년 겨울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술을 많이 마셨다. 한 형님은 나를 예뻐하며 나중에 정치를 하라고 부추겼다. 사장님은 내친김에 네가 바라는 세상을 말해보라 채근했다. 나는 성실하게 헛소리를 주절거렸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일단 에너지가 필요하니까…근로시간을 줄여야죠. 또 이렇게 낯선 이들끼리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많이 필요하고….


“개소리죠?” 나는 멋쩍게 헤헤 웃었다. 사장님은 올백에 꽁지머리를 했다. “아니. 존 레논의 이매진 알지? 거기 이런 가사도 있잖아. 유 메이 세이 아임 어 드림어(너는 내가 몽상가라 할지 몰라). 벗 아임 낫 디 온리 원(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야).” 자연스럽게 사장님은 빔프로젝터에 존 레논의 이매진을 틀었고, 그날 처음 만난 우리 예닐곱은 3분 53초 동안 조용히 그리고 가만히 함께 한 화면을 응시했다. 포개어질 또 다른 손과 시간을 생각하며. 유후-우우우.


<B>


2024. 9. 30. <고대신문> 2006호 ‘냉전’


낙산사. 게스트하우스 같은 방 형과 함께 갔다.
형이 찍어준 사진들. 잘 지내시나요. 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