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들

by 김태훈

어느 날 외계인이 찾아와 당신이 인간인 증거가 무엇이냐고 묻는 상상을 해본다. 나는 내가 예술이랍시고 창조한 것들을 드러내 보아 존재 증명을 시도할 수 있다. 심보선 시인의 분석에 따르면, 외계 문명이 존재한다고 가정할 경우 그 세계에 예술은 없다. “그들이 예술을 행했다면 벌써 오래전에 지구인과 접촉했을 것이다. 예술가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존재들이니까(<외계인, UFO, 그리고 예술에 대한 궤변>, 미출간원고).” 하지만 이제 AI도 시를 쓰고 노래를 짓는데? 그리고 그것들의 실력이 나보다 나은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언명도 고도로 발달한 지적 생명체 앞에서는 무용할 것이다. 이것은 동물과 인간의 차이점일지언정 인간과 외계인의 차이점이 될 수는 없다. “나는 자유롭다.” 그러면 외계인은 단지 기일게 늘여져 있을 뿐인 내 목줄을 쳐다볼지도 모른다. “생김새를 보면 모르겠냐.” 팔과 다리를 흐느적거리며 항변하면 외계인은 그건 당신이 몸뚱이인 증거일 뿐이라며 나를 다시 채근할 것이다. 차라리 항복을 선언하고 사실 나는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 짓지 않는 종평등주의자라고 거짓 자백하는 편이 속 시원할지 모른다.


살면서 외계인을 만날 가능성은 없겠지만, “네가 인간이냐”는 다급한 질문들은 언제든지 다종다양한 형태로 제기될 수 있다. 나는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듣는 애인들의 표정에서, 주말에 노가다를 뛰고 소파에 앉아 멍하니 티비를 보는 아버지의 말 없음에서, 내 차를 긁고 “선생님, 어떻게 처리하시겠어요?”하는 이웃의 물음에서, 나에게 의지하던 친구가 내 친절이 결국 습관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은 낭패의 표정에서 “네가 인간이냐”는 음성을 느끼고 시험장에 들어선 수험생과 같아진다.


오, 어쩌면 나는 헛것을 느낀 게 아니라 정말 외계인들을 만난 것인지도 모른다. 심보선 시인은 외계인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은밀히’ 다가왔을 가능성을 검토하지 않았다. 이 가능성은 흥미롭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예술적이다. 물론 나의 이러한 가설은 반증 불가능하고 그러므로 비과학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외계인일지 모를 그 사람(들)을 기습적으로 끌어안는 상상을 해본다. 고양이도 포옹을 한다고 하기는 하나, 여전히 타인을 ‘확’ 끌어안아 버리는 종족은 아직 인간 밖에는 없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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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9. 2. <고대신문> 2002호 ‘냉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