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 드라마의 도파민 퍼널

슬롯머신과 플랫폼의 유사성을 중심으로

by TY


1. 최근 중국의 숏드라마 업계 지인과 나눈 대화가 흥미로운 통찰을 주었습니다. "숏드라마는 광고를 보고 본편을 시청해야 결제가 일어난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이 숏드라마 광고는 대량의 콘텐츠 속에서 랜덤하게 발견되어야 한다"는 그의 조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이 대화를 시작으로, 숏폼 드라마가 창출하는 도파민과 그 메커니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도파민 퍼널(?)'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며, 대체 이 도파민은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서 끝나는가에 대해 나름의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작년 6월 슈퍼센트 공준식 대표님께서 언급하신 내용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숏폼 플랫폼에서 숏츠를 넘기는 그 순간의 도파민이 마치 카지노의 슬롯머신을 당기는 순간과 비슷하다는 것이었죠. 이 두 가지 생각을 엮어보니, 숏드라마 비즈니스에서 도파민의 역할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 슬롯머신의 레버를 당기는 숏폼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넘기는 행위는 놀랍도록 유사한 심리적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습니다. 7-7-7이 정렬되는 그 순간의 희열이, 마음에 드는 숏폼 콘텐츠를 발견하는 순간의 도파민 분비와 매우 흡사하죠(사실 7-7-7 정렬되어 본적 없어서..그냥 추측입니다). 슬롯머신에서 우리는 1달러, 2달러라는 화폐를 투자합니다. 숏폼 플랫폼에서는 우리의 시간이 그 화폐가 됩니다. 3초, 5초, 15초... 각 콘텐츠에 머무는 그 시간이 바로 우리가 지불하는 코인인 셈이죠.


3. 이러한 환경에서 잘뽑힌 숏드라마 광고 소재는 플랫폼 내의 궁극적인 '7-7-7'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도파민 퍼널'입니다. 이는 단순한 일회성 자극이 아닌, 단계적으로 심화되는 도파민 흐름을 의미합니다. 첫 단계는 넘기는 행위 자체에서 시작됩니다. 다음 콘텐츠에 대한 기대감이 이미 작은 도파민을 만들어내죠. 두 번째 단계는 마케팅 소재와의 조우입니다. 넘기던 도중 발견하는 맘에 쏙드는 숏드라마의 마케팅 소재(하이라이트, 해설판, 나레이션 버전 등)는 일종의 잭팟처럼 작용하며, 여기서 첫 번째 큰 도파민 피크가 발생합니다. 세 번째 단계는 '당첨' 이후의 과정입니다. 링크를 타고 넘어가기, 앱 다운로드, 결제까지 이런 추가적인 단계들이 필요하지만, 이미 시작된 도파민의 흐름 속에서 이러한 과정들은 그다지 큰 장벽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각 단계를 클리어할 때마다 작은 성취감이 더해지면서 도파민이 지속적으로 분비됩니다. 마치 슬롯머신에서 7-7-7이 떴는데 당첨금을 받기 위해 카운터에 가는 과정이 오히려 설렘으로 다가오는 것처럼요. 마지막 단계는 실제 콘텐츠를 시청하면서 얻는 최종적인 만족감입니다. 이 전체 과정이 바로 도파민 퍼널의 완성입니다.


4. 중국은 이 퍼널의 입구, 즉 '깔대기의 상단'을 최대한 넓히는 데 집중했습니다. 흥미로운 사례를 하나 들어보죠. 중국의 한 주요 플랫폼은 외부 숏드라마 작품 계약 시 첫 10화에서 타겟층별 10개씩, 총 60개의 광고 소재를 뽑을 수 없으면 아예 계약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는 도파민 퍼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스와이프를 통해 발견되는 '의미있는 사건'의 수를 최대화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입니다. 즉, 가능한 한 많은 깔대기를 만들어 내고, 이를 통해 도파민이 발생할 수 있는 총량 자체를 늘리는 것이 그들의 핵심 전략인 셈이죠.


5. 더 주목할 만한 점은 이들의 광고 소재 제작 방식입니다. AI로 만든 영상이나 과장된 스토리를 짜깁기한 콘텐츠 등, 때로는 본편 내용과 크게 관련 없는 소재들도 다수 활용합니다. 이는 일견 과격해 보일 수 있지만, 최대한 많은 사용자의 최초 도파민을 자극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입니다. 결제율? 그건 그다음 문제라고 보는 거죠. 퍼널의 시작점을 최대한 넓게 만들어야 결과적으로 더 많은 전환이 일어난다는 것이 그들의 철학입니다.


6.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중국의 도파민 퍼널 모델이 자국 시장에서 한계에 봉착했다는 점입니다. 이 모델은 초기 유입과 단기 전환율에는 강점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리텐션을 확보하기에는 최적화되지 않은 구조였죠. 게다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마케팅 비용은 계속해서 치솟기만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고, '홍궈모델'이 그 대안으로 등장했습니다. 홍궈모델의 의의는 기존의 도파민 퍼널 구조 자체를 과감히 수정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재설계하면서 숏드라마의 새로운 포지셔닝을 제시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홍궈모델 역시 중국이라는 특수한 시장 환경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매달 1000개 이상의 작품이 쏟아지고, 극도로 낮은 제작비로도 ROI를 기대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이 있기에 가능한 접근입니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 이 모델의 실현 가능성과 시기를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최근 중국의 숏드라마 플랫폼들이 한국 시장을 향한 마케팅을 더욱 활발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중국형 도파민 퍼널이 유효하다는 방증이기도 하겠죠.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플랫폼부터 제작사까지 모두가 '한국형 숏드라마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이 주도해온 기존의 도파민 퍼널 방식은 어떻게 흘러갈까요? 한국형 도파민 퍼널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결국 중국의 플레이 방식을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이 우리만의 승부수를 찾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K-숏드라마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지금,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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