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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 pont Aug 27. 2023

튀니지 여행 3일차.

여행 3일차. 2023년 7월 23일 일요일. 



우리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 예전에 본 통계로, 프랑스 가정집 에어컨 설치 비율이 7%라고 했던가? 요새는 비율이 좀 올랐을 지도 모르지만. 종종 왜 집에 에어컨 한 대 없냐고 한국 사람들이 물어본다. 그리고 늘 내 대답은 간결하다. 필요성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겨울에 온돌도 마찬가지다. 물론 온돌은 있으면 참 좋긴 할 것 같은데.


아무튼 프랑스의 여름과 겨울은 한국만큼 혹독하지 않다. 한국은 에어컨과 온돌이 없으면 정말 큰일나는 나라다.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낫다. 물론 지구 온난화 때문에 점점 아주 더운 날과 아주 추운 날이 길어지고 있다. 어쩌면 몇 십년 후에는 프랑스도 에어컨과 온돌이 필수가 되는 나라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갓 세탁한 뽀송뽀송한 린넨 향이 참 기분 좋았다. 아주 관리가 잘 된 호텔 방이 주는 즐거움이었다. 발코니에 나가보니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참 예뻤다. 튀니지는 아침도 더운 편이었다. 물론 한낮과 비교할 만큼은 아니지만.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함마메트의 아침 풍경. 


사막 여행은 내일 출발이었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오늘 하루 호텔을 즐기며 쉬기로 결정했다. 밖에 나가봐야 호객행위와 흥정밖에 더 있겠냐는 이유였다. 바다도 딱히 갈 이유가 없었고. 근처 야스민 항구에 가면 해적선도 있고 뭐 즐길거리가 있다고는 하지만, 가서 현지인들에게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사막 여행을 위해 체력을 비축해 두어야만 하니까. 


아내와 조식을 먹고, (물론 꽈배기는 오늘도 두 번 챙겨 먹었다. 설탕과 시럽을 듬뿍 쳐서.) 호텔을 둘러보았다. 아쉽게도 기념품 등 몇몇 상점은 영업을 안 한지 오래된 것 같았다. 


각자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그리고 곧바로 수영장으로 향했다. 어제와 같은 좋은 날씨,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 그늘진 곳에서 놓인 깨끗한 선베드. 나와 아내는 꼼꼼히 선크림을 다시 바르고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아직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신나게 수영하다가 나와서 쉬다가, 다시 물장구 치다가 다시 나와서 쉬다가 보니, 중간에 어떤 중년 여성이 누울 수 있는 매트형 튜브를 가지고 와 수영장 물 위에서 둥둥 떠다니며 노는 것을 보았다. 사실 우리도 스페인 칼레야에서 샀던 매트형 튜브를 혹시 몰라 가지고 왔었는데, 어디서 바람을 넣을 수 있는지 몰라서 일단 내버려두고 있던 차였다. 그래서 나는 수영장 관리 직원에게 바람을 넣을 수 있는지 물었는데, 호텔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답해줬다. 밖에 있는 상점에 가면 해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어제 해변에 가며 몇몇 상점을 지나갔었는데, 찾는 물건마다 없고 괜히 비슷하지도 않은 것을 같은 거라며 사라고 추천해줘서 정말 피곤했다. 그리고 튜브도 뭐 공짜로 바람 넣어줄 수 있다고 했지만 우리가 물건을 안 사니 튜브 이야기는 쏙 들어가버린 상태였다. 뭐 음료수라도 하나 사고 부탁을 해야 들어줄 것 아닌가. 인지상정인데. 그런데 웃기게도 우리와 흥정했던 사람은 그 가게 사장도 점원도 아니었다. 사장은 잠시 어디 떠났다고 곧 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며 우리를 멈춰 세우기까지 했다. 그 사람은 대체 사장과 무슨 관계였을까?


그래서 나와 아내는 수영장 직원의말을 듣고 튜브를 그만 단념했다. 그리고 그 튜브를 이번에는 못쓸 줄 알았는데, 다행스럽게도 나중에 쓸 수 있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할 예정이다.


수영장에서 하루를 보내며 느낀 것은, 수영을 참 잘하는 어르신들이 많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뭐 힘차게 손발을 내젓는 것도 아닌데, 천천히 살살 헤엄을 치는데도 전혀 가라앉지 않고 나아가는 모습이 정말 신기했다. 나도 아내도 그분들처럼 몇 번을 시도해봤는데 그냥 가라앉기만 했다. 무슨 비결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물 위에 쉽게 둥둥 떠있나 궁금했다.


집에 돌아온 후 어떤 유튜브를 봤는데, 어떤 외국인이 한국 해수욕장만의 특징이라며 콕 집어준 말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해수욕장인데 래시가드 혹은 티셔츠를 안 입은 사람이 없다고. 그리고 노출이 있는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없다고.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로, 한국은 여전히 사회가 보수적이다. 동방 예의지국을 자처하는 나라 사람들이 노출이 있는 수영복을 과감하게 입지는 않을 것이다. 입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는 모르겠는데, 문제는 입고 다녔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다. 별로 좋은 소리는 안 나올 것이다. 무엇보다 유럽에 와 보니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아무 수영복이나 잘 입고 수영을 즐기는데, 그 모습이 생경했던 기억이 난다. 몸매가 좋든 나쁘든, 나이가 많든 적든, 각자 취향의 수영복을 입고 수영을 하는데 주변 그 누구도 남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군중 속에서의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느껴졌다. 


둘째로, 한국 사람들은 피부 색깔에 민감하다. 너무 타도 뭐라고 그러지 않나? 한국은 흰 피부를 숭상하는 나라다. 이것 때문에 서양인은 잘못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하얀 피부를 추구하며 백인이 되려 노력한다는 헛소리. 자기들은 얼굴이 하얀 줄 안다. 진짜 얼굴이 하얀 건 북유럽 사람 한정이면서. 한국은 하얀 피부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흰 피부를 선호한다. 깨끗하고 밝고 티 없는 맑은 얼굴. 아무튼 그래서 해변에 가도 온 몸을 가리기 바쁘다. 


마지막으로,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지만, 한국 사람들이 피부가 약한 편이다. 너무 햇볕을 쬐면 아프다 못해 병원에 가야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온 몸을 꽁꽁 싸맬 수밖에. 우리도 햇볕 때문에 스페인 칼레야에서 고생한 경험이 있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춰온 것이다. 항상 선크림 듬뿍! 그리고 그늘에서만 쉬기, 너무 오래 햇빛 맞으며 수영하지 않기, 무엇보다 다 끝나고 꼭 피부진정제 바르기. 아까워하지 말고 듬뿍. 


덕분에 이번 튀니지 여행 끝나고서도 피부 때문에 고생을 별로 하지 않았다. 항상 조심하기도 했고, 사후관리를 철저히 했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는 집에 돌아와 며칠 쉬었다가 독일에 가서 피부진정용 로션을 잔뜩 사와서 열심히 발랐다. 독일은 프랑스와 다르게 이런 제품 종류도 많고 가격도 싼 편이다. 그래서 큰 부담 없이 많이 사서 쓸 수 있었다. 


플로라 파크 호텔 리셉션. 물 위에 띄운 꽃은 매일 바꿔주는 것 같았다.


다시금 느끼는 것은, 호텔이 상당히 관리가 잘 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직원들이 우리가 보기에는 즐겁게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는 점이다. 어느 호텔이나 식당에 가면, 들어가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곳들이 있다. 직원들이 친절하고, 손님에게 세심한 배려를 하는 곳들이 있다. 그리고 대개 이런 곳은 직원들이 받는 대우도 괜찮은 편이다. 혹은 근무 분위기가 좋거나, 둘 다거나. 이 호텔도 그런 느낌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유럽에 오면 간혹 당혹스런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이곳 직원들은 생각보다 친절하지 않으니까. 아니, 친절하지 않다는 표현은 잘못이다. 한국 사람이 기대하는 것에 못미치는 서비스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 같다. 여기는 손님이 을이다. 직원이 갑이고. 직원은 나름의 체계에 맞춰 손님을 대한다. 해줄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다. 한국같이 안돼도 해주는 시늉같은 건 없다. 요즘들어 이들의 서비스 수준이 더 높아지고 있다고 느끼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임금에 비례해서 올라가지 않는 한 단지 불행한 노동 강도의 증가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튀니지에서 배려 넘치는 직원들을 만나 우리는 참 즐거웠다. 모쪼록 이분들이 우리에게 베풀어 준 것 만큼 좋은 소득과 결과를 얻으시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여행하며 정말 과일을 원 없이 먹었다. 더운 나라의 과일은 더 달콤한 것일까? 과일로 배불러본 적은 처음이었다. 


좌측 통유리가 실내 수영장, 우측이 식당이다. 


저녁을 먹고 산책 겸 호텔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갔구나 하는데,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여한 없이 수영했고, 쉬었고, 맛있게 먹고, 또 쉬었다. 기분좋게 내일 사막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다른 2박 3일의 여정이 기다려졌다. 


나와 아내는 잠자리에 들기 전 짐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방을 비워야 했기 때문에 중요한 물품들을 다시 챙겼다. 내일 입을 긴 옷과 모자, 얼굴에 두를 천을 따로 빼 두니, 진짜 여행이 시작되겠구나 하는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바로바로 마실 수 있게 물을 따로 챙겨간 물통에 담았고, 언제든 바를 수 있도록 선크림도 숄더백에 넣었다. 


참고로 우리는 여행 다닐 때 쓸 돈만 챙기고 나머지는 캐리어에 보관하는 편이다. 호텔 금고의 고장도 빈번히 있는 일이고. 여행하며 딱히 쇼핑에 돈을 많이 쓰지 않을 예정이라 적당한 돈을 아내와 나는 나눠 가졌다. 나머지는 캐리어에 넣고. 


야자수에 가려진 맨 우측 방이 우리가 묵은 방이었다. 


그날 밤은 설레어서 쉽게 잠들지 못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수영해서 피곤했는데도. 사막은 과연 어떨까? 티비에서나 보던 사막에 내가 가 보다니! 날씨 등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지만 설렘이 더 컸다. 사실 적당량의 두려움을 양념같이 쳐줘야 설렘이 더 짜릿한 법이다. 이렇게 3일차 밤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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