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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 pont Aug 27. 2023

튀니지 여행 4일차.

여행 4일차. 2023년 7월 24일 월요일. 



아침 일찍 떠나는 일정이었다. 나와 아내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떠날 준비를 했다. 전날 밤 쉽게 잠들지 못했는데도, 일어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짧지만 깊게 잠이 들어서였을까? 씻고 미리 챙겨둔 옷을 입고, 가방들을 챙겨 리셉션으로 내려왔다. 아마도 조식을 먹지 못하고 나갈 거라 예상했기 때문에 전날 저녁에 과일을 조금 챙겼는데, 알고 보니 일찍 출발하는 여행객들을 위해 미리 적당한 조식을 운영하고 있었다. 다만 나는 너무 이른 시각이라 뭘 먹진 못하고, 또 여행 출발을 앞두고 긴장되어 약간 예민해진 상태라, 소파에 앉아 짐을 지키며 마음을 다스리기로 했다. 아내만 식당에서 간단히 챙겨먹고, 날 위해 빵과 과일을 추가로 챙겨주었다. (그리고 아내가 챙겨준 것들을 차 안에서 아주 맛나게 먹었다. 항상 생각하지만 아내는 이렇게 사소하지만 소중한 배려가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참 고맙다.)


차 밖 풍경은 이색적이면서도 뭔가 익숙했다. 옛날 농활 다니며 보았던 한국의 읍 면 단위 마을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약속시간에 딱 맞춰 가이드와 운전사들이 호텔에 왔다. 아내와 나를 포함해 총 8명의 관광객이었고 차 2대에 나눠 탑승한다고 했다. 처음에 우리에게 일정을 소개한 사람과는 다른 가이드였다. 이름은 모하메드였고 나이는 60대 정도로 할아버지라고 불러도 될 것 같은 인자한 미소의 소유자였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 둘은 당연하겠지만 유일한 동양인 부부였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누나와 남동생으로 이루어진, 마르세유에서 온 가족. 그리고 노르망디에서 온 은퇴한 노부부. 이렇게 총 8명이었고 노부부와 우리가 함께 타고, 그리고 마르세유 가족이 다른 차에 탔다. 


첫번째 방문할 곳은 바로 엘젬 El Jem이었다. 함마메트에서 차로 두 시간 좀 넘게 걸리는 곳으로 아주 역사가 깊은 도시다. 그리고 이곳에 그 유명한 튀니지 콜로세움이 있다. 대략 오전 10시가 되기 전에 우리는 이곳에 도착했다. 


일부 복원한 곳도 있지만, 오랜 세월을 견디며 여전히 서 있는 튀니지 콜로세움. 


가이드는 미리 준비한 듯 매표소에서 우리 표를 수령했고, 줄도 서지 않은 채 곧바로 입장했다. 크기는 정말 놀라운 수준이었다. 아직 로마의 콜로세움을 가본 적은 없었지만, 튀니지 콜로세움의 웅장한 모습에 넋이 나갈 뻔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지금까지 남아있는 콜로세움 중 손에 꼽을 정도로 거대하고 보존도 잘 된 곳이라고 한다. 카르타고의 패배 후 로마는 카르타고의 모든 것을 파괴했지만, 그 후 이곳의 좋은 기후와 환경을 눈여겨본 로마는 튀니지 여러 곳에 은퇴 로마군을 위한 정착지와 휴양지를 건설했다고 한다. 엘젬도 그러한 곳 중 하나였던 것이다. 


콜로세움을 한 바퀴 돌며 가이드는 참 많은 것을 설명해주었다. 벽의 기울기를 달리해 서로가 서로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게 건축했다는 것이나, 맹수나 검투사가 대기하던 방, 귀족석과 일반석의 경계 등등 아직도 기억나는 것들이 많다. 설명이 끝난 후 짧은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나와 아내는 열심히 오르내리며 콜로세움의 많은 부분을 눈에 담으려 노력했다. 


쨍한 날씨의 콜로세움. 위는 더웠지만 아래는 시원했다. 


어두컴컴한 지하는 시원했고, 약간의 먼지와 습한 냄새는 과거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게 했다. 영광, 혹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던 이들의 숨결이 아직 돌 사이사이에 남아있는 듯했다. 지상으로 돌아와 이번엔 높이 올라가기로 했다. 계단은 가팔랐으나 양쪽에 손잡이를 달아 두어 올라가기 편했다. 맨 꼭대기까지 올라가자 시야가 확 트였다. 고대에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건축물을 세울 수 있었을까? 주변에 큰 산도 없어 석재를 여러 곳에서 옮겨왔다는 설명을 들었는데, 옮기는 건 또 어떻게 옮겼을까? 로마가 망한 후 이곳도 폐허가 되었는데, 지리적으로 석재가 귀하고 콜로세움 석재가 워낙 질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떼어 집을 건축하는데 썼다고 한다. 


지금도 밤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밤에는 어떤 느낌일까?


나오면서 기념품점에 들렀는데, 가격도 비싸고 물건 품질도 썩 좋진 않아서 그냥 나왔다. 콜로세움 주변은 그냥 시장이다. 도시 한복판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아니, 정확하게는 콜로세움만이 남았고 나중에 그 주변으로 마을이 세워진 것이겠지만. 시간이 정오를 향하며 점점 더워지기 시작했다. 타에 탑승하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우리를 반겼다.


우리 가이드 모하메드 아저씨. 베테랑다운 모습에 우리들 모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가이드는 엘젬 근처의 박물관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로마 시절 귀족의 주택 터였는데, 일부 건물을 복원하고 그 옆에 박물관을 세웠다. 로마시대 모자이크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솜씨가 정교하고 화려했다. 터에서 발견된 것과 주변 여러 곳에서 발견된 모자이크를 발굴, 복원해 전시한 것들이 일백여 점에 달했다. 본래 바닥에 깔던 것이었기에 크기도 아주 컸다. 2층 높이의 벽 한 면을 다 덮고도 남을 모자이크들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벽을 가득 채운 저것이 본래의 절반 크기다. 


모자이크 주제들도 다양했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과 인물들, 사계절을 묘사한 것, 일상 생활에 대한 것이나, 가축과 맹수, 등등. 모자이크를 보고 난 뒤 옆 건물로 이동했는데 그곳이 과거 귀족의 집 일부를 복원한 것이었다. 더운 날씨 때문에 창이 많고, 천장이 높은 게 특징이었다. 전체 집터의 크기는 매우 넓었는데, 과거 귀족들의 위세의 일부를 느껴볼 수 있었다. 


타일로 어떻게 저렇게 생동감있는 그림을 그렸을까?


다시 우리는 차에 올라타 3시간가량을 달렸다. 드넓은 황야와 드문드문 박혀 있는 작은 마을들.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들이었다. 높고 낮은 산들이 줄지어 선 한국이나, 지평선들이 이어진 프랑스와는 다른 모습들. 일견 척박해보이는 땅에서도 사람들은 살고 있었다. 


차는 황야 한 가운데서 멈췄다. 우리들은 어리둥절했다. 일단 내려보니, 베두인의 집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해줬다. 그러고보니 아까 가이드가 진짜 베두인의 집도 방문할 거라고 했는데, 사실 정신이 없다 보니 그대로 잊어 먹어 버린 모양이다. 그냥 가이드가 이끌어 주는 대로 다니니 너무 편하기도 했고. 


왼쪽에 주방, 그 외는 주거용 공간이었다. 들어오는 입구에는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워낙 덥다보니 땅을 파 만드는 혈거 방식으로 만들어진 집은 겉보기와 다르게 꽤나 안락해보였다. 방은 생각외로 시원했고 두 겹 세 겹 깔린 카펫들은 푹신했다. 집주인이었던 베두인 여인은 우리에게 전통 빵을 제공했다. 꿀에 찍어서 먹는 것이었는데, 화덕에 붙여 굽는 빵의 적절한 탄내와 고소함, 야생 꿀 특유의 다양한 맛과 향이 어우러져 생각 이상으로 맛있었다. 마지막에 가이드는 원하는 만큼 팁을 전해주라고 했고, 우리는 각자 팁을 챙겨 베두인 여인에게 전해주었다. 


밖은 무지 더웠는데, 오히려 방은 시원했다. 알록달록한 카펫, 직물들이 참 아름다웠다. 


이제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출발했다. 마트마타 Matmatat 마을 내에 있는 호텔에서 점심을 먹었다. 마트마타에도 야트막한 산등성이에 줄줄이 혈거 주거지가 형성된 것이 눈에 띄었다. 물론 지금 사람들은 그 주변에 마을을 만들어 두고 산다. 식당에 도착하니 주문할 것 없이 정해진 음식들이 나왔다. 시간은 대략 오후 3시 반. 늦은 점심이라 그런지 우리 모두들 신나게 음식을 먹어치웠다. 튀니지 샐러드, 닭고기 쿠스쿠스, 디저트로 나온 수박까지. 맛있게 해치웠다. 


끝없는 황야를 달려 도착한 곳엔 맛있는 닭고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머물 호텔은 두즈 Douz에 있었다. 선 팜 두즈 Sun Palm Douz 4성 호텔이었는데, 구글 지도상에는 3성급으로 표시된다. 호텔로 향하며 중간에 기념품점을 방문했다. 저녁에 낙타를 타기로 했는데, 그 전에 전통복장을 사두면 좋다는 가이드의 권유 때문이었다. 광야 한가운데 덩그러니 위치한 기념품점은 카페를 겸했다. 아내와 나는 미리 옷을 사둔 터라 살 필요 없이 구경만 했다. 마르세유 가족이나 노르망디 노부부는 각자 마음에 드는 옷과 머리에 쓸 천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와 아내는 천을 묶을 빨간색 끈을 공짜로 받았다. 


오후 6시 즈음에 호텔에 도착했다. 1층의 안뜰 보이는 방이었다. 방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에어컨도 잘 작동했고, 특이하게도 이불이 침대 커버처럼 생겼는데 안으로 쏙 들어가서 자는 형태였다. 약간의 하수구 냄새가 있었는데, 방에서 나는 게 아니라 밖에서 나는 것으로 보였다. 아마도 튀니지가 하수 시설이 열악하고, 더위 때문에 올라오는 냄새를 충분히 막기 힘들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튀니지에 가게 되면, 꼭 1층은 피해야 한다. 다행히도 이 방은 습하거나 하진 않았다. 


깔끔한 호텔. 직원들도 친절했다. 


잠깐의 휴식 후 낙타를 타러 호텔 근처로 이동했다. 두즈는 사하라 사막의 입구쯤 되는 곳이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다니다 일몰을 보고 호텔로 돌아가는 여정이었다. 낙타를 탄다니! 동물원에서도 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 기억도 없는 낙타인데, 심지어 타볼 수 있다니 신기했다. 순간 메르스 바이러스가 떠오르긴 했으나, 귀엽고 건강해 보이는 낙타의 모습에 경계심이 스르르 사라졌다.


나와 아내가 탄 낙타는 아주 순했다. 우리를 이끌어주는 낙타 주인은 자식 다루듯 낙타를 다뤘고, 낙타도 주인이 좋은지 연신 볼을 부비거나 긴 목을 꺾어 주인을 안거나 했다. 적어도 우리가 탄 낙타는 학대를 당하거나 하진 않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낙타는 쉼 없이 걸어 우리를 사막으로 안내했다. 사하라 사막의 초입이라 그런지 광야에 모래를 좀 더 얹은 듯한 모습이었다. 상상한 모래둔덕이 보이지 않아서 아내와 나는 다소 실망하기도 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상상한 수준의 모래가 보이는 곳까지 가려면 시간도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위험하기도 하고. 또 얼마나 더 더웠을 것인가!


터벅터벅 걸으며 사막에 길을 내는 사람들. 


낙타 위에서 본 풍경이 점차 익숙해지니 여러가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래바람이 이는 지평선, 저 멀리 4x4 바이크를 타고 다니는 관광객들의 모습, 두꺼운 안장 너머까지 느껴지는 생명의 박동. 마치 젤리처럼 모랫바닥에 닿을 때마다 푹 퍼졌다가 떼면 다시 탱탱해지는 낙타 발굽. 그리고 툭 하면 떨어지는 낙타 오줌과 똥. 모든 것들이 생경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윽고 찾아온 사막의 일몰도 아름다웠다. 하늘은 점차 푸르러지다가 붉은 빛이 섞여 보랏빛이 되고, 잠시 후 붉은 빛이 강해지는데 역설적으로 세상은 점점 어두워지는. 마침내 붉은 점으로 줄어든 해가 사막 저 너머로 사라지자, 밤이 되었다. 


해는 떠나가고 달이 찾아온다. 밤이 온 것이다. 


호텔 저녁은 아주 화려하지는 않았으나, 기본을 잘 갖춘 뷔페였다. 이름은 모르겠지만 맛있는 생선구이가 있었고, 쿠스쿠스도 별미였다. 그리고 흘러 넘치는 수박과 멜론! 맛있게 먹고 나와 아내는 호텔 수영장에 갔다. 사막에 있는 호텔 수영장은 밤새 운영된다고 한다. 아마도 낮의 뜨거운 열기가 가신 밤에 수영을 하면 더 기분이 좋을 테니까? 


밤인데도 여러 사람들이 수영장에서, 옆 선베드에서 각자의 밤을 즐기고 있었다. 한 번 물에 빠져들고 나니 낮의 열기가 몸에서 훅 하고 빠져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은은히 몸에 차오르는 냉기를 느끼며 기분 좋게 물에 둥둥 떠있으니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밤을 즐기는 사람들. 


다음 날 또 일찍 떠나야 하는 일정이라 수영을 오래 즐기진 못했다. 방으로 돌아온 우리는 방문 앞에 웬 의자가 놓여있어 깜짝 놀랐는데, 알고 보니 하우스키핑이 놓고 간 의자였다. 아마도 정해진 개수만큼의 의자를 방에 들여놔야 하는데, 우리가 이미 체크인을 했으니 차마 들어갈 수 없어 의자를 밖에 세워 둔 것으로 보였다. 나는 좀 찝찝했기에 의자를 안으로 들여놓진 않았다. 어차피 의자는 필요 없었다. 


사막 여행의 첫 날이 모두 지나갔다. 아직 어색하지만 같이 온 여행객들과도 하룻 동안 조금은 더 친해졌다. 남을 배려하며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는 아주 훌륭한 여행객들이었다. 그리고 실력있고 좋은 가이드와 운전사까지. 사람 하나 때문에 흥하고 망하는 게 여행인데, 함께하는 이들이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참으로 행운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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