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5일차. 2023년 7월 25일 화요일.
우리는 두즈에서 여행 5일차를 맞이했다. 이제 튀니지 여행의 절반을 지나온 셈이었다.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보단 오늘 맞이할 하루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 우리 부부와 나머지 일원들은 체크아웃을 먼저 하고 조식을 먹었다. 조식을 먹은 후 곧바로 한 시간 여를 달려, 쇼트 엘제리드 Chott El Djerid의 입구에 도착했다. 쇼트는 호수라는 뜻이었다. 즉, 엘제리드 호수.
호수에는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도로가 만들어져 있었고 우리는 그 도로를 타고 호수 한가운데를 가로지를 예정이었다. 차는 잠시 멈춰 섰고, 우리는 자연이 만든 모래 바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수천년의 시간 동안 바람에 깎이고 쌓이며 만들어진 바위들은 유려한 곡선을 가지고 봉긋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가이드가 살짝 만지며 설명해줬는데, 층층이 쌓인 모래가 가이드의 손가락에 끌려 바람에 휘날렸다.
다시 차에 탑승하고 이십여 분을 달려 호수의 중간에 다다랐다. 매우 거대한 크기의 호수는 우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부분 말라 있었다. 구글 지도에는 파랗게 물이 있다고 표시되지만, 실제로 물이 찰랑찰랑한 것은 우기 때 정도뿐이라고 한다. 만약 모르고 지나갔으면 호수라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호수 중앙에 잠깐 내린 우리는 물이 증발하며 만들어진 소금 웅덩이를 관찰할 수 있었다. 가장자리에 하얀 소금들이 엉겨붙어 있었고, 물은 미네랄을 함유하여 짙은 붉은 색이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웅덩이 주변의 광활한 풍경이 정말 멋졌다. 몇 명의 상인들이 이곳 특산품이라고 소금과 광물 덩어리들을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신기하게 생긴 것들이 다수 있었으나, 다만 구입하진 않았다.
원래 일정에는 없었는데, 생각보다 호수와 호수 주변의 풍경들을 만끽할 수 있도록 차는 중간중간 우리를 내려주었다. 광활한 사막, 사자차럼 웅크린 작은 흙산, 하늘과 땅이 서로 맞닿아 서로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언제 내가 또 이런 구경을 할 수 있을까 싶은 풍경들. 지금도 나는 눈을 감으면 그때의 풍경들이 살아 내게로 다가온다.
그리고 일정에 없어 전혀 몰랐던, 내게는 정말 뜻깊은 곳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모스 에스파 Mos Espa다! 아는 사람은 이름만 들어도 알 것이다. 바로 스타워즈 촬영지다. 튀니지에는 여러 곳에 스타워즈 촬영지가 있는데, 이곳은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어렸을 적 살던 행성 타투인의 우주 공항이 있는 모스 에스파다. 지명 이름이 똑같다. 아마 영화 촬영을 하고 이곳을 영화 지명의 이름을 따 명명한 것 같았다. 현재 건물 몇 채와 몇몇 오브제만 남아있다.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말 그대로 세트장이기 때문에, 패키지 여행이 아닌 한 쉽게 찾아갈 수 없다.
내가 중학생 때였나, 스타워즈 오리지날 3부작이 디지털 리마스터링 되어 한국에서 개봉했다. 용산구 남영역 건너편 성남극장이었나? 엄마는 나와 동생을 데려가 스타워즈를 보여주었다. 어린 눈에 스타워즈는 그야말로 영상 충격이었다. 순차적으로 개봉했는데, 정말 기다리기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스타워즈를 보러 가는 날은 너무나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3부작을 다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타워즈 프리퀄 3부작이 개봉했다.
그때 영화에서 보았는 풍경이 눈 앞에 있으니,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지만, 일찍 떠나야 했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기념품을 조금 샀다. 수정 돌조각과 스타워즈 마그넷. 그때 별로 표현은 안 했지만 마음은 마치 중학생 때로 돌아간 것처럼 들떠 있었다.
말 그대로 울퉁불퉁한 모래 언덕을 가로질러, 마지 익스트림 스포츠처럼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스릴을 느끼며, 우리는 토주르 Tozeur에 도착했다. 우리가 두 번째로 묵을 호텔이 있는 마을이었다. 호텔에 가기 전, 우리는 마을로 가 마차를 타고 토주르의 유명한 야자 숲을 방문했다.
어마어마하게 울창한 야자 숲은 튀니지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를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규모라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가이드 아저씨는 정말 박학다식했는데, 나무의 생장, 나무를 키우는 물의 공급, 등등 이 숲의 모든 것에 대해 거침없이 설명해주었다. 다만 내용이 너무 많아서 지금 기억이 나는 것은 많지 않지만. 숲을 둘러보며 느꼈는데, 가이드는 정말 이 숲을, 그리고 자신의 조국인 튀니지를 사랑하는 것 같았다. 설명 속에 애정이 느껴졌다. 그는 무화과 나무를 지나며 무화과 열매를 조금 따서 우리에게 먹여주었다. 꿀 같이 달콤한 무화과의 맛이란! 지금도 가끔씩 생각난다.
마차로 돌아온 우리는 더위에 좀 지쳐있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가져온 (작년에 잠깐 한국에 갔을 때, 고맙게도 친한 후배가 사준) 손풍기를 틀었다. 그리고 함께 마차에 탔던 노르망디 노부부에게 하나를 양보했다. 처음엔 사양하셨지만, 워낙 날씨가 더워 고마워하시며 손풍기를 쓰셨다. 이때부터 우리 부부와 노부부가 더 친해졌던 것 같다.
우리가 묵을 호텔은 라스 엘 아인 토주르 Ras El Ain Tozeur였다. 꽤 규모있고 외관이 깔끔한 호텔이었다. 두즈에서 묵었던 호텔보다 좀 더 고급스럽다고 해야 할까? 다만 관리 상태는 두즈에서의 호텔이 더 나았던 것 같다. 똑같이 1층을 배정받았는데, 마르세유 가족이 받은 방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밤이 되서야 겨우 방을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방에도 문제가 있었다. 정확하게는 우리 방만의 문제는 아니었는데, 하수구 냄새가 아주 심했다. 방 환기구와 문 밖에서 흘러 들어오는 냄새는 정말 지독했다.
호텔은 여러 채의 건물에 방을 나누는 식으로 운영했는데, 우리가 있던 방은 지대가 약간 낮은 곳에 있었다. 그래서 냄새가 더 많이 내려와 고였을 수도 있다. 어차피 하루만 묵고 가는 여행객에게 좋은 방을 챙겨줬을 리 없으니… 그래도 안방과 거실, 화장실과 욕실이 나뉘어진, 우리가 묵은 호텔 방 중에서 제일 넓은 곳이었다. 그리고 건물도 크고 깨끗했고. 정말 냄새만 빼면 참 좋은 호텔인데. 역시 튀니지에선 호텔 방은 높을수록 좋다. 여러 번 강조해도 과할 것 없다.
잠시 쉬었다가 우리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토주르 메디나 Medina 주변을 둘러보러 갔다. 메디나는 원래 시내, 성내 정도를 가리키는 단어였으나, 시대가 흘러 구도심, 시장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 어느 옥상 카페를 방문했는데, 아랫층은 관광상품을 파는 곳이었다. 예쁘게 꾸며진 카페였는데 벽 한쪽에 한국어 글귀가 적힌 것을 발견했다. 타지에서 발견하는 한국어는 언제나 흥미롭다.
다만 물건을 사거나 마시거나 하진 않고 곧바로 떠났는데, 가이드가 보니 값도 비싸고 좀 강요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려고 하자 곧바로 일행을 끌고 나온 것이었다. 그때까지 나와 아내는 건물 안에서 신나게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일행이 갑자기 보이지 않자 후닥닥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곧바로 좁다란 골목을 지나 여러 상점이 있는 길을 걸어갔는데, 역시나 바가지가 심해 우리 부부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마르세유 가족의 큰딸은 마음에 드는 팔찌를 발견해, 가족 모두가 달라붙어 흥정하여 적당한 가격에 사는 데 성공한 듯 보였다. 가이드 아저씨도 여기는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는지 일행을 재촉하며 빨리 이동하자고 눈치를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마운 가이드다. 대놓고 비싸다고 하진 않았으나 눈치껏 우리를 도와주는 데 많이 애쓰셨다.
많이 다니느라 피곤한 하루였지만, 밤 수영을 빼먹을 수는 없었다. 딱 30분만 물에 있자고 하고, 나와 아내는 저녁식사 후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튀니지의 여름은 뜨겁다. 다른 여행 유튜버들이 겨울에 튀니지를 여행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비성수기라 싸기도 하고. 한낮 동안 계속 쌓인 뜨거운 열기를 시원한 수영으로 맘껏 떨쳐버릴 수 있었다.
다음 날은 사막 여행의 마지막으로, 폭포와 계곡, 그리고 캐루안의 대 모스크 등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루 하루가 정말 알찬 사막 여행이었다. 비용이 전혀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 혜자로운 여행. 아내와 나는 하루 하루를 감사하며 여행을 다녔다.
튀니지는 과거 더 초록이 가득한 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후가 점차 변하고, 로마 이후 문명화된 도시들이 무너지면서, 사람 손길이 끊기자 사막화 현상이 더 심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땅의 새 주인이 되었던 베두인들은 자연에 순응하는 유목민의 삶을 이어갔기에 초록의 땅은 점차 줄어들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가치 판단을 할 필요는 없다. 그저 역사가 그렇다는 것이다. 땅이 가진 역사를 배우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즐거운 상상만으로 두는 것이 옳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