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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 pont Aug 28. 2023

튀니지 여행 6일차.

여행 6일차. 2023년 7월 26일 수요일. 



사막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우리는 조식을 먹고 호텔을 떠났다. 약 30분여를 차 타고 달려 우리는 지금껏 보지 못한 튀니지의 또 다른 풍경을 맛볼 수 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를 지나며. 


아스 사비카 As-Sabikah라고 불리는 곳은 비교적 높은 산과 언덕위에 이루어진 마을터였다. 과거 베두인들의 마을이었다는 곳은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네모난 모래빛 마을은 많은 부분이 폐허가 되었지만, 어떤 느낌을 주고 있었다. 어떤 폐허는 색다른 감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예전에 갔던 하이델베르크에서 깨달았는데, 하이델베르크에는 폐허가 된 고성이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여러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곳이었는데, 폐허가 된 이후 오히려 폐허가 주는 미묘한 느낌, 데카당스는 아니고 니힐리즘은 더더욱 아닌, 복잡 미묘한 무언가를 느끼러 귀족이나 학생들이 많이 찾아왔다고 한다. 


적막한 폐허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이곳 베두인들의 마을 폐허도 나에게 무언가 말할 수 없는 것을 남겨주었다. 과거는 어떠한 형태로든 현재에 자기 모습을 남긴다. 영원한 것이 없다면, 찰나도 없는 것일까? 내 마음 속 빈 공간을 이곳의 모래가루들이 채우고 있는 것을 느끼다, 일행에서 멀어져 얼른 뒤따라 갔다. 


산 위로 산양 조각상이 서 있었다. 


튀니지에 와서 처음으로 산을 타니 기분이 생소했다. 높지는 않았으나 가팔랐고, 은근 높아서 살짝 당황했다. 바위 틈으로 들어가 능선을 타고 내려가니 계곡물이 흘렀다. 흐르는 물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튀니지에 와서 바다 말고 흐르는 물을 본 적이 있었던가? 물은 말고 깨끗했다. 살짝 만져보니 시원하기까지 해 이곳이 사막이 맞나 싶었다.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는 유목민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듯싶었다. 


폭포는 작았지만 소리는 시원했다. 물들이 흘러 가는 길에는 이끼와 풀, 나무들이 자라 있었다.


계곡을 따라 나간 곳에서는 사람들이 기념품과 광물을 팔고 있었다. 광물은 겉보기는 그냥 돌인데, 마치 삶은 계란처럼 안쪽에는 쿼츠나 수정이 자리잡고 있었다. 다른 데보다 엄청 싸서 우리는 몇 개 샀는데, 그 중 한 아이가 팔았던 것이 인상에 남는다. 아이가 소중하게 두 손으로 움켜진 돌은 다른 무엇보다 상태가 깨끗하고 좋아 보여 별 고민없이 샀다. 그리고 아내는 팔찌 몇 개를 샀다. 파티마의 손이 장식으로 달린 물건이었는데, 선물용으로 3개를 샀는데 그게 이전에 들렀던 곳에서 불렀던 비슷한 물건 1개 값이었다. 나는 마그넷을 하나 샀다. 여행하며 마그넷을 사서 냉장고에 붙이는 것이 내 소소한 수집 취미이다. 


이 계곡 또한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차를 타고 조금 가니 이번엔 큰 계곡과 언덕에 세워진 마을의 폐허가 보였다.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카페를 지나 계곡을 내려다보았다. 아주 장관이었다. 떨어질까봐 조금 무섭기도 했으나 이 광경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열심히 찍었다.


색색깔의 천. 선명한 색깔은 튀니지를 더 생동감있게 한다. 


그리고 인근에 계곡물을 모아 놓은 웅덩이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어떤 여성이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생뚱맞은 그 모습에 나도 아내도 저 사람은 대체 누굴까? 하고 궁금했지만 끝내 알 길이 없었다. 


포대를 쌓아 계곡물을 막고 웅덩이를 만들었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근처 마을 가프사 Gafsa로 향했다. 그곳 5성 호텔인 주구르타 Jugurtha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역시나 우리가 주문할 필요 없이, 알아서 음식이 나왔다. 전채로 튀니지 샐러드, 본식으로 볶음밥과 돼지고기, 구운 채소와 감자튀김, 후식으로 수박이 나왔다. 나는 튀니지 맥주인 셀티아 Celtia를 추가로 주문했다. 마셔보고는 싶었으나 계속 기회가 없어서 미루었는데, 마침 눈에 띄어 좋은 기회였다. 


좋은 호텔이라 그런지 인테리어도 수준급이었다.


튀니지는 이슬람 국가이지만 많이 세속화된 나라이다. 그래서 셀티아 같은 국산 맥주도 팔고, 벡스나 하이네켄도 많이 수입한다. 부분적으로 돼지고기를 파는 식당도 있다고 하는데, 직접 보진 못했다. 셀티아 맛은 일반적인 라거 맥주의 그것이었다. 적당히 쌉싸름하고, 뒷맛이 깔끔했다. 더운 나라에서 마시기엔 딱이다 싶었다. 술이 음식과 함께 술술 넘어갔다. 


못 마셔보고 가나 싶었던 셀티아. 호텔마다 벡스, 하이네켄은 있는데 이상하게 셀티아는 찾아보질 못했다. 


다음으로 우리는 캐루안 Kairouan으로 떠났다. 카이루안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거대한 모스크가 있는 곳으로, 아쉽게도 모스크는 현재 관광객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신앙이 없는 관광객들이 모스크에서 다소 무례한 짓도 한 모양으로, 가이드는 현재 튀니지의 모든 모스크에는 관광객들이 들어갈 수 없다고 설명해주었다. 대신 그는 관광상품점 옥상으로 데려가 옆에서 모스크를 내려다볼 수 있게 해주었다. 모스크 옆에는 과거 도시를 지켰던 큰 성벽의 일부가 남아있었다. 


왼쪽 성벽 끝자락은 식당으로 개조되어 있었다.


옥상에서 모스크를 보고 아랫층으로 내려오자 카펫 사장과 직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무려 에어컨이 켜진 곳에서 우리는 편히 앉아 사장이 보여주는 수많은 카펫을 감상했다. 크기도 천차만별, 문양도 색깔도 천차만별이었다. 그리고 무늬마다 담긴 뜻도 알 수 있었고, 벌레들이 싫어하는 문양과 색깔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종종 보였던 문양이 있었는데, 그건 신혼 부부들을 상징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격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지만, 그 큰 카펫을 들고 비행기에 탈 엄두는 나지 않았다. 아쉽지만 아내와 나는 카펫을 구매하진 않았다. 노르망디 노부부만 카펫을 구입했다. 사장은 국제운송으로 보내줄 수 있다고 했지만, 국제운송의 위험성을 익히 잘 알고 있기에 우리는 정중히 사양했다. 카펫이 무사히 도착한다 할지라도, 어마무시한 관세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대신 1층에 있는 상점에서 우리는 튀니지 전통과자인 마크루트 한 박스를 샀다. 그리고 튀니지 전통그릇 한 개도. 이전에 가이드가 맛보라며 마크루트 한 조각씩 준 적이 있었는데, 그게 정말 맛있었다. 아까 카펫 감상하면서 사장이 우리에게 하나씩 주기도 했는데, 그 말이 한국 약과랑 비슷했다. 가이드에게 들으니 만드는 방식도 약과랑 비슷했다. 꿀에 절이고, 튀기고, 다시 절이고.


우리가 스트라스부르 집까지 들고 갈 건데 상하진 않을지 걱정하자, 가이드는 당당한 표정으로 1달은 무리 없다고 했다. 정말로 문제없었고, 8월 내내 조금씩 아껴가며 민트차와 함께 먹었다. 아내와 나는 요즘도 후회한다. 그냥 두 박스, 아니 세 박스 살 걸 하면서. 함께 산 전통문양이 새겨진 그릇도 잘 쓰고 있다. 알록달록한 것이 참 예쁘기도 하고, 크기도 상당히 실용적이다. 우리는 종종 그 그릇에 요리나 간식을 담아 잘 쓰고 있다. 


검색해보니 스트라스부르에도 튀니지 음식점이 있었다. 거기서도 비슷한 모양의 과자를 팔았고, 비슷한 모양의 그릇을 사용했다. 


상점을 나와 우리는 다시 2시간 여를 달려 함마메트로 향했다. 사막 여행을 끝맺으며 긴장이 좀 풀렸는지, 맥주 술기운 때문인지 나는 오는 내내 꿀잠을 잤다. 나중에 들어보니 일행들 모두 단잠에 빠졌다고 했다. 처음에 묵었던 플로라 파크 호텔에 도착했는데, 사정상 호텔이 변경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차로 5분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셀 비치 호텔 앤 스파 Shell Beach Hotel & Spa였는데, 똑같은 4성이었다. 


새 호텔로 이동하기 전에, 우리는 2박3일동안 함께했던 가이드 아저씨와 작별했다. 지금도 인자한 미소의 가이드 아저씨 얼굴이 떠오른다. 박학다식했으며, 항상 배려가 넘쳤고, 덥고 힘든건 마찬가지였을 텐데도 전혀 힘든 기색을 표한 적 없던, 베테랑 가이드의 표본 그 자체였다. 우리들은 모두 소정의 답례를 챙겨 전해드렸고, 악수와 함께 헤어졌다. 


전체적으로 관리가 잘 된 호텔이었다. 수영장도 넓고 그늘져 좋아 보였다.


도착한 새 호텔은 이전 호텔보다 더 좋아 보였다. 우리는 노르망디 노부부와 매번 함께 식사를 했는데, 남편인 미셸이 우리를 위해 저녁식사 자리에서 작은 와인을 하나 사주었다. 튀니지 산 로제 와인이었는데 향과 맛이 아주 각별했다. 반 병 정도 남은 것은 내일 저녁에 함께 마저 마시기로 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우리 부부는 호텔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수영장도 넓고 호텔이 전체적으로 컸다. 손님은 많지 않아 보였는데, 아마도 호텔끼리 손님 수를 맞춰주는 것 같았다. 어쨌든 이곳이 더 좋은 곳이었기에, 전혀 불만이 없었다. 


깔끔한 객실. 


깔끔한 객실이었다. 냉장고가 없어 직원에게 문의했더니, 직원은 곧바로 작은 냉장고를 들고와 연결해줬다. 아주 친절했다. 잘 씻고 아내와 나는 침대에 누워 사막 이야기를 했다. 사막, 모래, 낙타, 계곡, 밤 수영, 음식 등등 이야기할 거리가 쉼 없이 이어졌다. 너무나 만족스럽고, 너무나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전혀 아쉽지 않게 흐지부지 사라졌고 좋은 기억만 남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둘 모두 스르륵 잠이 들었다. 꿈 속에서도 사막을 여행했던 것 같다. 내일은 우리가 추가했던 수도 튀니스 관광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이 끝나고,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되고, 다시 그 여행이 끝나고, 또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고. 다시 생각하면 정말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호텔의 야경. 조용하니 참 좋았다.


누군가 말하길, 돌아갈 곳이 있어야 여행이 완성된다고 했던가. 대개 여행의 끝은 아쉬움으로 마무리 되지만, 이번 튀니지 여행은 꼭 그렇진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렇게 충족되고 만족스러운 여행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돌아와 아내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번 여행의 좋았던 점은 사막에서 만난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뿜어져 나왔다. 아쉬움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으나, 아쉬움을 덮을 만큼 몸과 마음이 충족된 여행이었다. 아내와 나 사이의 소중한 추억이 하나 또 생겼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하나씩 정리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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