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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 pont Aug 31. 2023

튀니지 여행 8일차.

여행 8일차. 2023년 7월 28일 금요일. 



사이트에서 제공한 여행 안내서에는 여행 첫날과 마지막날은 이동에 전념한다, 라고 적혀 있었다. 비행 시간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시간이 앞당겨질 수도 있고, 늦춰질 수도 있으니 다른 일정을 잡을 수는 없었다.


이제 마지막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섭섭해할 시간은 없었다. 짐을 다시 확인하고, 남은 튀니지 디나르를 다시 유로로 환전해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곧바로 호텔 리셉션에 갔다. 환전 문제를 빨리 해결 짓고자 한 아내의 의견이었다. 나는 체크아웃 하면서 하자고 했으나, 다시 생각해봐도 빨리 끝내는 게 나으니 조식을 마치고 곧바로 움직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는 호텔 리셉션에서 환전을 할 수가 없었다. 혹시나 독자님들께 도움이 될까 하여 몇 가지 사항을 적는다. 


1.     호텔에서 타국 화폐를 튀니지 디나르로 환전이 가능하다. (이때 반드시 투숙객 본인 명의가 명시된 영수증을 요구해야 한다. 요구하지 않을 시 주지 않는다.) 그러나 호텔에서 튀니지 디나르를 다시 타국 화폐로 환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     내가 처음에 튀니지 디나르로 환전한 곳에서, 환전 영수증을 제시해야만 다시 유로 등 타국 지폐로 환전할 수 있다. 동전은 해당사항이 없다. 

3.     1과 2를 종합하면, 만약 호텔에서 환전했을 시, 다시 환전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공항에 위치한 환전소, 그것도 내가 이용한 환전소에서 영수증을 제시해야만 환전이 가능하다. 

4.     참고로 출국장을 지나 면세점에서는 튀니지 디나르를 사용할 수 없다. 튀니지 디나르 반출 자체가 불법이다. 실제로 우리는 출국장을 지나며 혹시나 튀니지 디나르를 가지고 있는지 검문 받았다.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한국 외교부에서 배부한 튀니지 여행 안내 자료에, 환전 후 영수증을 반드시 챙겨야만 한다는 구절. 튀니지 법상 자국 화폐는 해외 반출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다 사용하거나, 유로로 바꿔야만 한다. 다시 환전하기 위해선 영수증이 필요했다. 


심지어 출국할 때가 되서야 알게 된 위 사실 때문에, 우리는 환전을 할 수가 없었다. 환전 때문에 처음에 묵었던 호텔까지 택시 타고 가서 영수증을 받았지만(심지어 호텔 직원이 잘못 출력해줘 투숙객의 이름이 내가 아니었다.) 공항 어느 환전소에서도 환전이 불가능했다. 애초에 자기 환전소에서 환전했던 게 아닌 한,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튀니스 공항 지상1층과 지하1층에 많은 환전소들이 자리잡고 있다. 


좀 큰 액수였던지라 나는 멘붕에 빠졌지만, 아내는 이내 마음을 추스려 그냥 남은 돈을 모두 기념품 사는데 쓰자고 했다. 공항의 기념품점에 찾아갔다. 그리 크진 않았으나 가격표가 붙은 정가제였다. 남은 액수에 맞춰, 방향제 오일 몇 개와 열쇠고리, 그리고 아내를 위한 가방을 샀다. 직원 설명으로는 천연 낙타 가죽이라고 한다. 심플한 디자인에 크기도 적당하고 가벼워 아내가 무척 좋아했다. 그래도 괜찮은 물건들을 살 수 있어서 마음이 왕창 풀렸다.


그러고보니 고맙게도 여행사는 우리가 무사히 공항에 도착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제 시간에 우리를 데리러 버스를 끌고 호텔에 와주었고, (첫날 공항에서 우리를 데리러 온 버스와 동일한 차종이었다.) 친절한 기사는 우리의 짐을 손수 실어주었다. 빵빵한 에어컨은 기본이었다. 다행히도 아내와 내가 만난 튀니지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했다.  


여행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항상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좋은 일이 있는 만큼, 나쁜 일도 올 수 있다. 작은 것 하나에 마음이 크게 상할 수도 있고, 반대로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감정에 파문을 일으키는 작은 돌조각들을 지나칠 수 있는 마음의 힘인 것 같다. 모든 것은 끝이 있기 마련이다. 즐거움에 끝이 있어야, 슬픔의 끝도 있는 법. 그리고 때로는 일찍 아픔을 끝낼 줄 알아야, 뒤따라 올 기쁨도 미리 맞이할 수 있다. 


출국 심사 후 우리는 면세점을 지나 비행기 플랫폼으로 향했다. 튀니스 공항 면세점은 그리 크지 않았다. 상품도 담배나 술, 초콜렛, 화장품 정도였다. 아, 명품 가방 같은 것도 조금 보였던 것 같다. 살 물건도 없고 피곤했던 우리는 플랫폼에 앉아 비행기를 기다렸다. 


역시나 튀니지 항공은 제 시간에 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무더운 대기실에서 언제 올 지 모르는 기다렸다. 기다리던 중 옆에서 환성이 터졌다. 다른 비행기를 기다리던 승객들이 몇 시간 동안 지연이던 비행기가 마침내 도착하자 박수를 치며 반겼다. 참 재미있는 풍경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것은, 2시간 만에 드디어 우리 비행기가 도착했다는 것. 튀니지 공항 사이트로 여객기를 검색하면 과거 지연 기록을 볼 수 있는데, 6시간도 있고 9시간도 있었다. 겨우 2시간 지연이라니, 이 정도면 기다린 수준도 아니다. 


비행기에선 고맙게도 기내식을 제공해줬다. 가볍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냥 감지덕지하며 먹었다. 창문 너머로 푸른 하늘과 바다, 구름들이 보였다. 문득 튀니지에서의 추억들이 생각났다. 수영장, 바다, 광야, 사막, 낙타, 콜로세움, 메디나, 모스 에스파 등등. 짧지만 길었던 튀니지에서의 추억은 나를 아직도 붙잡고 있는데, 몸만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다시 지중해를 지나, 이탈리아 반도를 지나, 또 알프스를 지나, 집으로.


약간 옥빛이 도는 푸른색을 이곳 사람들은 튀니지 블루라고 말한다. 이번 여행은 나와 아내에게 모두 튀니지 블루의 색으로 빛나는 추억을 선물해주었다. 또한 값진 인연도 함께. 이번에 함께 여행한 노르망디 노부부와 마르세유 가족과는 계속 이따금씩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마르세유 가족 엄마는 가이드였는데, 자신이 담당하는 지역 관광 안내서를 우편으로 보내왔다. 큰 지도만 3개에 다양한 여행 주제에 대한 안내서, 두꺼운 책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자녀들도 우리에게 인사를 전하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처음부터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노르망디 노부부도 섭섭한 마음을 전해왔다. 노부부는 우리보다 하루 늦게 떠났는데, 우리가 떠나고 나니, 자신들이 호텔에 마치 고아처럼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해주었다. 하긴, 우리가 노부부를 많이 챙겨 드리긴 했지. 우리는 장유유서의 한국인이니까. 물론 우리도 헤어져 참 섭섭한 마음이었다. 


튀니지가 남긴 것은 또 있다. 바로 음식인데, 약과랑 맛이 비슷한 튀니지 전통 과자 마크루트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 기뻤다. 참고로 나는 약과를 아주 좋아한다. 그리고 튀니지 샐러드! 토마토, 오이, 당근, 양파 등을 잘게 썰어 소금, 올리브유, 민트 정도만 뿌려 섞은 후 먹는 아주 간단한 샐러드지만 맛은 간단하지가 않다. 지금도 종종 해먹곤 한다.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고. 


오른쪽이 튀니지 샐러드다. 한 번 많이 만들어 두면 며칠은 문제 없다. 


이렇듯 좋은 여행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현재 내 삶에 많이 가져다주는 것 같다. 앞으로 또 어떤 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 내 마음 속 여행 일순위는 튀니지가 될 것 같다. 독자 여러분에게도 혹시나 기회가 된다면, 튀니지 여행을 추천하고 싶다. 


이렇게 아내와 나의 행복했던 튀니지 여행 기록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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