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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 pont Aug 31. 2022

스페인 여행1 - 칼레야(Calella)

아름다운 바다와 인종차별


만약 휴가를 어느 나라로 갈 거냐고 프랑스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상당히 높은 확률로 들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에스파뉴, 스페인이다. 여름에는 프랑스보다 훨씬 강렬한 햇볕을 즐길 수 있고, 볼 거리가 다양하고, 경관, 특히 바다가 참 아름다우며, 무엇보다 프랑스보다 물가가 싸다. 여러 가지 이점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예전에 아내와 함께 바르셀로나에 갔던 적이 있다. 바르셀로나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 때문에, 이번 여름에 나와 아내는 다시금 카탈루냐 지방으로의 여행을 계획했다. 바르셀로나는 가봤으니 그 주변 휴양지와 도시를 둘러보겠다는 계획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이 많이 가는 칼레야(Calella)에 머물며 지내기로 하고, 인근에 있는 지로나(Girona), 피게레스(Pigueres)를 방문하고자 했다. 


스트라스부르 공항에서 바르셀로나 직항편을 탈 수 있다. 저가 항공사인 볼로티(Volotea)가 운항하는데, 표를 미리 사면 저렴하게 왕복편 티켓을 끊을 수 있다. 나와 아내는 2시간만에 바르셀로나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공항 터미널2 옆에서 칼레야로 바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여행 안내소(Tourist Office)에서 버스표를 구매할 수 있지만, 탑승 시 현금으로 직접 결제도 가능했다. 


그리고 버스가 달리기를 1시간 30분, 바다가 아름다운 작은 휴양지 칼레야에 도착했다. 약간 과장을 보태서 길거리에서 들리는 말의 절반이 프랑스어였던 이곳은 프랑스 사람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 중에 하나다. 나와 아내는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해변으로 향했다. 자갈 섞인 모래사장이 길게 쭉 늘어진 해변은 아름다웠고, 저 멀리 푸르른 지평선은 더욱 아름다웠다. 썬베드와 파라솔은 호텔을 통해 비교적 저렴하게 대여할 수 있었다. 우리는 바다와 썬베드를 왔다 갔다 하며 제대로 칼레야 해변을 즐겼다.


자갈과 모래가 섞인 해변은 걸어다니기 딱 적당한 수준이었다. 


나와 아내는 허리에 맬 방수 가방을 챙겨갔는데, 지갑과 휴대폰을 넣어두기 위함이었다. 썬베드에 올려놓으면 소매치기의 위험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가보니 놀랍게도, 이렇게 방수 가방을 챙겨와 안전에 만전을 기한 사람들은 우리뿐이었다. 다들 전혀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가방을 두고 바다에 뛰어들거나, 선탠용 오일을 바르고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햇볕을 즐겼다. 이 바다는 안전한가? 이 마을은 안전한가? 나와 아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견을 나눴고, 어쨌든 방수 가방은 꾸준히 챙기기로 결정했다. 


둘째날이 되고, 우리는 다시 바다로 향했다. 스트라스부르는 내륙 도시다 보니 바다 볼 일이 없는데, 그 한을 풀기 위해서였다. 나나 아내나 모두 물을 좋아하고 수영을 좋아하는데, 칼레야에 펼쳐진 햇볕에 반짝이는 바다는 첫날만 들어가기엔 너무나 아까웠다. 오후 서너 시가 되었을 무렵, 예상치 못한, 아니 예상한 것보다 더 빨리 문제가 발생했다. 햇볕에 익고 바닷물에 절여진 피부에 발진이 생긴 것이었다. 선크림을 계속 바르고 햇볕을 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햇볕 알레르기가 생겨버렸다. 마침 구름이 껴 날씨가 흐릿해진것도 있고 해서 아내와 나는 호텔에 돌아갔다. 그리고 몸을 씻은 후 인근 약국에 가서 햇볕 알레르기 약도 사고, 스페인의 대형마트인 메르카도나(Mercadona)에 가서 알로에 베라 등 몸을 치유하고 보호할 것들을 샀다. 


확실히 백인들의 피부는 햇볕에 강하다. 


마트 밖으로 나오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저녁식사 까지는 조금 이른 시간이라, 나와 아내는 칼레야 중심가를 걷다가 들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중심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는데, 아뿔싸! 이번 여행의 첫 안 좋은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해외에서 살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일이, 바로 인종차별 문제이다. 특히나 코로나 이후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가 더 심해지고 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중국인 혐오 문제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비 동양인이 어떻게 얼굴만 가지고 국적을 판별할 수 있을까? 동양인도 서양 사람들 얼굴만 봐선 어느 나라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을 텐데. 그리고 무엇보다 인종차별을 하는 인간이라면 그저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상관없을 것이다. 결국 모든 동양인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요새 유럽에서 나타나는 인종차별 행위들 가운데 논란이 되는 것이 바로 ‘갑자기 고성지르기’다.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고, 귀를 먹먹하게 한다. 뉴스를 보니, 어떤 동양인 아주머니는 이러한 갑작스러운 테러 때문에 고막에 상처까지 입었다고 한다. 물리적인 신체 접촉도 아니고, 인종혐오 발언도 아니니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려워 경찰도 이 같은 경우를 골치아파 한다고 한다. 아주 교활하고 지독한 인종차별 행위라 할 만하다. 


나와 아내가 그것을 당했다. 우리는 중심지로 들어가기 바로 직전에 한 무리의 어린 학생들을 만났다. 고등학생이나 되었을까, 일고여덟쯤 되는 무리가 꺾인 골목 사이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나와 아내는 갑자기 피할 수가 없어서 그들 무리 가운데를 지나가게 되었고, 내 옆을 지나가던 놈이 갑자기 고성을 질렀다. 나와 아내는 너무 깜짝 놀랐고, 몇 초간 멈춰 그들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 무리들은 낄낄거리며 그냥 가는 것 아닌가. 이런 방식의 인종차별은 처음 겪은지라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 바를 몰랐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 놈이 내 옆에서 테러를 벌였다는 것이었다, 아내 옆이 아니라. 


칼레야 중심가. 우리는 이곳에 들어가기 직전에 당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그런 식의 테러가 거의 없다. 


아무리 아름다운 보석이라도 더러운 것이 묻는 순간 영롱한 빛깔은 사라진다. 이틀 동안 쌓아온 온갖 즐거운 추억들을 한 순간 빛 바래게 만든 사건이었다. 한 번 이런 인종차별을 당하면 보통 그 즉시 모든 것들을 경계하게 되는데, 이것은 해외에서 몇 년을 살아도 똑 같은 것 같다. 나와 아내는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다시 밤길 해변가 산책을 나섰다.


사실 한 번 변을 겪고 난 후라 산책을 나가는 것이 두려웠으나, 이 두려움을 떨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저런 놈들은 소수일 것이다, 나는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다, 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밖은 안전할 거라는 약한 믿음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나와 아내는 산책을 나섰다. 이대로 두려움과 분노에 떨며 잠을 청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고요하고 평온했던 칼레야 산책로. 철로와 바닷가 사이에 마련되어 있다.  


밤의 해변은 아름다웠다. 밤하늘에는 갯수를 세기 어려울 만큼의 별들이 떠 있었고, 끊임없이 들려오는 파도 소리는 우리의 귀를 차분히 적셔주었다. 우리는 산책로를 따라 쭉 걷기도 했다. 꽤 오랜 시간을 걸었다. 늦은 시각인데도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중에는 어린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우거나, 목마를 태우고 다니는 이들도 있었다. 여러 커플들도 다정하게 손잡고 거니는 평온한 밤이었다. 아까의 순간은 그저 길에 놓인 작은 돌부리였던 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둘째날도 비교적 평온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유럽이라는 대륙 안에서, 아시안은 그저 소수일 뿐이다. 인종차별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만약 내가 겪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떤 풍문으로, 그림자 같이 낯선 것으로 느껴질 뿐이다. 내가 겪게 된다면, 그 순간 차가운 비수가 가슴에 꽂히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또한 이곳에서 나는 친절한 이웃들을 많이 만난 것도 사실이다. 내 주변에 친절한 이웃들이 베푼 따뜻함으로, 일순간 차가워지는 마음을 애써 달랜다. 이 또한 유럽에서 사는 내가 살아가는 방식일 것이다. 


(스페인 여행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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