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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Jul 13. 2022

이제는 극장에 가지 않겠다는 결심

헤어질 결심

                                                                                  "헤어질 결심" 

제목이 참 좋다고 느꼈다. 어떻게 영화 제목으로 이런 신박하고 산문적인 제목을 지었을까? 역시 깐느 박이구나, 아니 정서경 작가의 아이디어인가?

이건 자신감이 아니면 지을 수 없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영화 포스터를 보고 땡기는 영화는 있어도 제목을 보고 땡기는 영화는 거의 처음인 것 같았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깐느 박의 이번 영화는 언어 혹은 기호에 관한 영화라고 지레짐작했다. 탕웨이가 출연한다는 것은 아마도 외국인 역할 일 것이고 박해일과 대화를 하려면 아무래도 언어적 장벽이 존재하거나 오히려 그런 부분이 둘의 사이를 더 공공하게 하거나, 뭐 그런 언어와 기호의 고정관념 혹은 오해, 회의 같은 것 말이다. 

마침 

스마트폰의 문자 기능과 이어폰이 영화적 주 소재로 등장하고 심지어 폰 위의 문자가 영화의 공기를 지배하고 심지어 거꾸로 갸우뚱한 표정의 박해일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니깐 문자가 극장 화면 위를 활개치고 다닌다는 말인데, 제목에서 느껴지듯, 아 이번 영화는 언어에 관한 영화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영화 초반, 탕웨이의 입에서 나오는 한국어 대사는 우리가 매일 접하는 단어임에도 단지 그녀가 어설픈 발음으로 사용했을 뿐인데 그 단어의 뉘앙스가 새롭게 다가온다. 아니 오히려 단어의 진짜 의미가 더 강하게 다가온다. 익숙함과 어색함은 분위기뿐만 아니라 언어의 의미도 다르게 한다. 극은 자연스럽게 익숙함과 어색함이 동질감과 이질감으로 살인 사건과 사랑의 감정으로 치환한다. 둘의 상관성은 어쩌면 선명한 경계가 있어야 할진대 마치 바다의 파도처럼 넝실넝실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이포로 장소가 바뀌는 전 영화의 초반 중반부의 리듬과 속도는 실로 완벽했다. 특히 리듬이 완벽했다. 물 흐르듯 박해일과 탕웨이의 감정이 무르익었고 교차되는 다른 사건의 중첩은 둘의 사이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탕웨이의 캐릭터를 풍부하게 보여주는 효과도 있었다. 히치콕의 영화 "현기증" "이창"을 떠올리게 하는 기시감도 있었고 탕웨이의 캐릭터는 지난 헐리웃 영화에서 본 듯한 팜므파탈의 전형성을 따라가지 않을까 속으로 조마조마했지만  박찬욱은 그답게 고전영화들의 품위만을 얄밉게 가져와 적절하게 버무리는 묘수를 보여준다.  깐느 박의 전작 중 "올드보이" 와 "복수는 나의 것"을 가장 좋아하지만 최근작 중에는 인상 깊게 봤던  bbc 드라마 " 리틀 드러머 걸"이 떠올랐다. 플로렌스 퓨 특유의 꼿꼿하면서 당당한 기품처럼 시종일관 차분하게 또는 차갑게 응시하는 드라마는 어두운 르 카레의 첩보소설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그래, 여기까지 참 좋았다.


붕괴, 

그래 무언가 이야기의 얼개가 붕괴되는 기분이었다. 박용우가 시장 바닥에서 "항문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애널리스트입니다~" 뭐 이랬던 대사 같은데 이거 블랙코미디라고 웃어야 하는 거 맞나? 아님 내가 깐느 박의 의도를 잘 따라오지 못한 걸까? 초중반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히듯 피식 웃게 만드는 자연스러운 유희는 사라지고, 그래, 소히 말하는 기술이 들어가기 시작했음을 직감해서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이포로 영화의 장소가 옮기고 박용우가 등장하고 김신영이 동료 형사로 등장하는 순간, 나는 무언가 영화가 붕괴되고 있음을 직감했으나 에이~설마 이 영화는 칸에서 감독상을 받은 영화라고~감독의 대단한 의도가 있을 거야, 기다리자고 속으로 내내 다짐했건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잘 진행이 되던 영화가 분절된 것 같은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단일하게 일관성 있는 캐스팅이 불만이었다. 이정현까지는 괜찮았다. (고경표는 솔직히 항상 의문부호이다.) 깐느 박과 그의 형제가 아이폰으로 촬영한 2011년 "파란만장"의 인연으로 캐스팅이 됐군, 어? 저 양아치는? 박정민? 뭐 박정민이야 트랜스젠더도 소화하는 천의 얼굴 아닌가, 뭐 잘나가는 유명 배우들도 깐느 박이랑 한번 작품을 하고 싶어 줄을 서겠지, 작은 역할이라도 영광이라고 말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박용우의 등장과 김신영 그리고 유태오의 아주 짧은 등장까지.

갑자기 피로감이 올라왔다. 개그맨 출신 김신영의 편견 때문은 아니었다. 이른바 카메오 출연(저명한 인사나 인기 배우가 극 중 예기치 않은 순간에 등장하여 아주 짧은 동안만 하는 연기나 역할)은 말 그대로 예기치 않은 순간 아주 짧아야 하는데 나는 그들의 연이은 등장이 카메오의 남발, 이미 널리 알려진 배우들이 마치 깐느 박의 작품을 위해 헌신한 듯 장식품처럼 보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들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나라는 관객은 깐느 박의 만찬에 초대되었고 그가 내오는 요리에도 관심이 가지만 낯선 손님과 인사를 하는 그런 오묘한 만남을 기대를 했다는 말이지. "올드보이"의 오광록이나 오달수처럼, 

그래서일까, 출연진이 유독 적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사투리를 맛깔나게 하는 요양원 소개 업체 원장과 철성역의 서현우가 눈에 띄었지만 내로라하는 카메오의 등장으로 살짝 가려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얼마나 훌륭한 배우들이 많은데 양아치, 형사, 깡패, 사기꾼, 가방을 들고 나오는 내연남 등 좀 더 새로운 얼굴을 발굴하는 노력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과 아쉬움.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내가 너무 삐딱합니까? 그런데 나는 도무지 이 영화가 박찬욱과 정서경의 " 탕웨이에 대한 예찬"에 대한 영화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박찬욱의 영화사 "모호필름"의 이름에 가장 걸맞는 영화라는 영화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정훈희 "안개"는 너무 뻔하다. 아니 너무 게을렀어.

"당신의 매력이 뭔지 알아요? 자세가 꼿꼿해요~"라고 속삭이듯 말하는 박해일의 대사를 들으며 평소에 내가 생각하는 탕웨이의 매력을 정확히 짚어주는 동시에  나는 이 영화에 더이상 스며들지 못했다. 중후반 이포로 장소를 옮기며 미결이라는 종착역으로 향하는 일련의 가파른 이야기는 수년전 극장에서 "박쥐"의 엔딩을 보는 듯 너무도  깐느 박 스러웠다. 극장을 나서며 깐느 박이 깔아놓은 수많은 해석거리를 평소처럼 찾으려 했지만 나는 해석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불현듯 n차 관람을 통해 깐느 박의 작품세계를 더 이해하려 애써야 한다는 생각이 올라왔지만 차분하게 잠재웠다. 내가 너무 건조합니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극장의 좌측 커플석을 가득 메운 연인들은 영화의 감동이 체 가시지 않은 듯 엔딩 자막이 올라가는 와중에도 자리를 지키는 듯 했으니깐. 아, 그래서 내가 그의 복수 삼부작을 좋아하고 "박쥐" 같은 사랑 이야기에 좀처럼 이입하지 못하는구나. 하하. 그래서 연애를 못하는거였어, 라고 애써 합리화를 하려 했지만 이포 해변의 밀려오는 거친 파도들처럼 내 인생의 미결로 남은 연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극장에 찾아 영화를 보고 예전처럼 들뜬 감동을 점점 느끼지 못하는 나를 돌아봤다. 10대 20대때, 영화가 전부였던 내가 어찌 이렇게 됐을까, 감정이 메마른게 아닌가 라고 물어보았지만 어젯밤 "돌싱글즈"의 이혼남이 자신의 딸 이야기를 할때 나도 덩달아 같이 울었던 걸 보면 아직은 괜찮은 편이라고 되뇌다 순간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와 함께 "JFK"를 보러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남자들은 자신을 알고 싶으면 당시 내 나이와 비슷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당시 그 영화는 초유의 흥행작으로 롯데월드 시네마의 그 작은 극장이 매진이 되어 우리는 계단에 앉아 영화를 봤는데 아버지는 불편한 게단에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졸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계속 자신의 무릎에 박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며 나는 그런 아버지를 타박했는데 그때 아버지가 했던 말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 저때 아빠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영화가 당시의 충격을 못살렸어, 그때의 충격을.."

가장 좋아하는 007시리즈, 다니엘크레이그의 마지막 출연작" 노 타임 투 다이" 최애하는 감독 웨스 앤더슨의 최근작 "프랜치 디스패치" 또한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영화를 보는 재미가 시들시들해졌음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러던 중 깐느 박의 "헤어질 결심"은 제목부터 구미가 당겼고 잃어가던 나의 영화 열정을 되살려줄 적임자가 될 것 같았다. 거기에 이 영화는 칸의 감독상을 받은 영화 아닌가, 실패할 확률이 적은 영화였음은 분명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극장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개인적인 여러 이유를 차치하고 이번에 처음 안 사실은 극장의 티켓 값이 15,000원이라는 사실!을 접하고서야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는데..20대 초반 7천원이라는 돈을 내고 영화를 본 걸 감안하면 어마어마하게 오른 것이다.

개인적으로 연극이라는 매체의 인기가 없는 이유는 극장과의 가격 차이도 무시못한다고 생각하는데, 극장이 7-8천원 하던 때에 연극은 최소 2만원 했으니 말이다, 만약에 이런 추세로 간다면 존립 자체가 어려워 보일 정도로 비인기의 연극이라는 매체는 나름의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다. 가격이 대동소이하다면 영화는 OTT서비스로 시청 가능하고 무대 위 바로 앞에서 배우들의 라이브 연기를 볼 수 있는 직접적이고 능동적인 감상을 할 수 있는 연극의 매력이 어필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할 수도 있다는...

개미,

 "나는 솔로" "돌싱글즈" 집에 TV도 없는 내가 유일하게 챙겨보는 프로그램, 둘의 공통점은 리얼리티 관찰 프로라는 것과 짝짓기라는 것인데, 더 나아가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시간에서 인간의 심리와 욕망이 한껏 드러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물론 백퍼 리얼리티라는 것이라는 게 존재하겠냐만은 그래도 가장 리얼리티에 충실하다는 은 분명해보인다.

아마도 나는 당분간은 연애의 감정을 대리만족을 통해 체험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가공된 이야기에 더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아무리 완벽한 영화라도 장치가 들어가고 예정된 결말을 위해 기술을 쓸 수 밖에 없으니깐, 어쩌면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부터 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든 에세이든 뭐든 꾸준히 쓰다보면 글의 이중성에 직면하기 때문일지도, 글은 솔직하기도 하지만 때론 마냥 솔직할 수고 없고 어느 정도의 가공이 첨부 될 수 밖에 없는, 글의 이중성 말이다. 


그래도 영화에서 내게 남은 미결이 하나 있다. 아니 깐느 박 영화에 확대되어 클로징되는 개미란 존재 말이다. "올드보이"에서 미도가 지하철의 좌석에서 울고 있을 때 반대 편 칸에 앉아 있던 인간의 크기만한 개미, 그리고 "헤어질 결심" 에서 죽은 남자의 눈을 지나가는 개미, 문자가 박해일을 지켜보듯, 개미도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놈의 개미가 눈에 거슬린다. 뭐 그것도 깐느 박의 아주 사적인 장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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