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프라하 비건 여행 | 지르게 된 연유에 대하여
한 것도 없는데 벌써 1년이 다 갔네.
연말이면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들리는 말이다. 사실 난 '내 일'을 시작한 이후로는 이런 말에 공감하기 어려워졌다. 겉으로 보이는 성과가 컸던 해도, 성과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도 애매할 정도로 그것이 미미했던 해도, 늘 치열하게 버텨왔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얼마 안 있으면 올해도 다 끝난다며 서운해할 때, 내 마음은 개운해진다. (다른 표현이 있는지 잠깐 고민해 봤지만 '개운하다'는 표현이 딱인 것 같다.) 드디어 올해도 끝이 보인다는 개운함, 이번 해도 잘 버텼다는 안도감이 몰려온다.
그래서인지 연말이 다가오면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도박은커녕 내기에도 흥미가 없다. 재미있게 하려면 내기를 해야 한다는데, 그 말에 도통 공감을 하기 어렵다. 재미있게 즐기려면 아무것도 걸지 않아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거 아닌가?라는 게 나의 생각.
그런 내가 베팅하듯이 지르는 것이 있으니, 해외여행이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일 특성상 언제쯤엔 얼마가 있을 거라고 예상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없는 편이다. 그래서 되도록 큰 지출은 자제하는 편인데, 이상하게도 해외여행에서는 그게 잘 되지 않는다. 해외여행만큼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질러버린다.
비거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로 가장 가고 싶은 도시는 런던과 베를린이었다. 비건 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아닌 비인간 동물의 지위도 높기 때문이다.
런던은 10년도 더 전에 가본 적이 있지만 그때는 비건이 뭔지도 몰랐던 시절이라 거기까지 가서 비건 문화를 즐기지 못했던 게 한(?)으로 맺혔다.
베를린은 - 한국 사람들이 독일을 떠올리면 '많고 많은 유럽 중에 독일?'이라는 반응이 나오듯이 - 비건을 시작하기 전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도시이다. 그런데 비건을 시작한 이후부터는 베를린이라는 도시를 이곳저곳에서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되었다.
유럽에 거주 중인 지인에게 어디가 비건 하기 제일 좋았냐고 묻자 한치의 망설임 없이 베를린이라고 답하고, 베를린에 여행 다녀온 지인들은 베를린에서 살고 싶다며 이민까지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하더라.
이쯤 되니 베를린, 도대체 어떤 곳인지 너무 궁금해졌다.
연말이라 나에게 선물도 주고 싶고, 다른 건 몰라도 해외여행만큼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지르는 편이고, 베를린이야말로 비건들의 천국이라고 하니,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을지도.
(+)
많고 많은 여행지 중에서도 유럽을 에라 모르겠다로 지르기엔 비용적인 측면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침, 타이밍이 참 절묘하게도,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하게 지내는 친구가 있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웬만한 한국인이라면 "굳이 베를린?"의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 친구가 가고 싶은 곳은 프라하. 내 입장에서는 "굳이 프라하..?"였지만, 다행히 나도 친구도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해서는 오픈 마인드인 편이었다. (혼자 갔다면 굳이 가지 않겠지만, 그렇기에 이 기회에 내가 가지 않을 곳에 가보는 것도 좋지-라고 생각하는 편)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도 나도, 우리가 함께 해야만 숙소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타협하여 베를린과 프라하에 반반 머물기로 했다.
그런 이유로, 앞으로 올라갈 글은 베를린+프라하 여행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