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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망트망 Jan 16. 2024

쓰레기는 없고 비건음식은 많은, 베를린 크리스마스 마켓

베를린 비건 여행ㅣ12월의 베를린



독일 겨울은 최악이라고?



겨울엔 유럽 여행을 피하라고 한다. 독일은 더더욱. 


한국처럼 영하 10도까지 떨어지는 추위는 아니지만, 습도가 높은 탓에 한국에서 겪어보지 못한 으슬으슬한 추위도 견디기 힘들고, 오후 4시면 해가 지는 탓에 기분도 우울해진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월의 베를린은 무섭지 않았는데, 바로 크리스마스 때문이다. 


10월 중순만 되면 캐럴을 틀기 시작하고, 크리스마스 특유의 진빨강과 진초록을 보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나에게는, 겨울의 베를린도 기대로 가득했다.





크리스마스에 진심인 베를린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베를린은 나 못지않게 크리스마스에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특별히 어딘가를 찾아가지 않아도 발길 닿는 곳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포스다머 플라츠의 광경


버스에서 내렸을 뿐인데 이런 광경이 펼쳐지고,



포츠다머 플라츠에 있는 어떤 쇼핑몰


구글 지도 따라 어느 쇼핑몰을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 크리스마스 그 자체였다.



카이저 빌헬름 교회 앞 크리스마스트리


카이저 빌헬름 교회를 보러 가도 대형 트리가 반겨주고,



카이저 빌헬름 교회 앞 크리스마스 마켓



교회 앞에서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한창이었다.



사실 베를린에 가기 전 크리스마스 마켓이 어디서 열리는지 열심히 검색해 봤다. 다른 건 몰라도 크리스마스 마켓만큼은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조금만 유명한 스폿에 가면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유명한 스폿"을 적어도 2-3군데는 가게 된다.) 처음에는 와-와- 하면서 사진도 열심히 찍었지만, 하루이틀 지나니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풍경이라 사진 찍는 것도 새삼스러워져 버렸다.





젠다르멘 마르크트 크리스마스 마켓

베를린, 젠다르멘 광장



젠다르멘 광장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 이곳은 특이하게도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야 한다. (1인당 2유로)


크리스마스 마켓인데 왜 입장권을 사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베를린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 중 젠다르멘 광장에서 열리는 마켓이 가장 크기도 하고, 입장권 판매 수익도 기부되는 것 같았다. (입장권 살 때 직원이 00을 위해 더 기부하겠냐고 물어봤던 것 같다. 제대로 못 알아들어서 확실한 정보는 아님)




들어가자마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각종 부스들이 반겨주었다.




달달한 견과류와 과일에 초코를 입힌 디저트도 보이고,




크리스마스 소품들도 많이 팔고 있었다.




무대에서는 공연도 하고,




광장 안쪽으로 쭉 들어가면 대형 트리와 함께 환상적인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마켓에 마련된 레스토랑 (실내 공간)


젠다르멘 광장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은, '야외 부스'와 '실내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야외 부스에서 판매하는 건 야외에 마련된 테이블에 서서 먹거나 걸어 다니면서 먹어야 했고, 컨테이너 박스 같은 것으로 지은 실내 공간으로 들어가면 식당처럼 꾸며져 있어서 앉아서 먹을 수 있었다.


야외 부스에서도 맛있게 보이는 걸 많이 팔고 있었지만, 하루종일 걸어서 너무 피곤했던 우리는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베를린에서 식당에 들어가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던 코트 걸이


친구나 나나 밥러버라서 유럽에 와서도 빵을 자주 먹진 않았다. 그런데 이날 브런치로 빵을 먹었더니 속이 좀 느끼해서 토마토 파스타처럼 개운한 걸 먹고 싶었다.


마침 비건 메뉴 중 파스타가 있었고, 토마토와 칠리도 들어간다고 해서 이거다! 싶어 주문했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도 비건 메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역시 베를린!)




파스타 나오자마자 동공 지진. 이게 뭐... 죠...? (우리가 원했던) 새빨간 토마토소스 듬뿍 들어간 파스타는 온데간데없고, 처음 보는 비주얼의 음식이 나왔다.


둘 다 배가 너무 고픈 상태였기 때문에 열심히 먹긴 했는데, 토마토 맛도 거의 안 나고 (드라이 토마토가 듬성듬성 있었다.) 칠리의 매운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정도로는 한국 매운맛에 길들여진 우리를 전혀 만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핫소스가 있으면 좀 달라고 요청했다.




타바스코 같은 핫소스를 기대했건만, 직원이 내어준 소스는 또 처음 보는 것이었다. 뭔가 홈메이드 같은? 파프리카나 유럽식 고추(?) 같은 걸 갈아 만든 것 같은 소스였다. 이 역시 한국인 입에는 전혀 맵지 않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아서 저 소스와 함께 파스타는 싹싹 긁어먹었다.


베를린에서 뭘 주문할 때마다 양이 너무 많아서 곤혹스럽곤 했는데, 이곳은 양이 정말 적었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파는 다른 음식들도 먹어보고 싶었기 때문에 오히려 좋았지만...?





급한 허기는 달랬지만 전혀 배가 차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다음으로 먹은 건 비건 소시지


소시지의 나라 독일답게 크리스마스 마켓에도 소시지 파는 곳이 많았고, 그러면 어김없이 비건 소시지도 있었다. (사랑해요 베를린)


사실 제일 먹고 싶었던 건 불에 구워주는 비건 소시지였는데, 거기는 줄이 너무 길어서 (그야말로 시장 북새통) 포기하고, 다른 비건 소시지에 도전해 봤다.




그랬더니 또 난생처음 보는 비주얼이 나왔다...?


왼쪽에 있는 건 감자만두라고 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만두'가 아니다. 감자 전분 같은 걸로 만든 쫀득한 옹심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리고 소시지 밑에는 (케첩인 듯 아닌 듯) 뭔가 새콤한 소스에 절여진 적양배추가 같이 나왔다.




하나하나 먹어보면 다 처음 먹어보는 맛이라 뭐지? 싶었는데, 감자만두랑 비건 소시지랑 양배추 절임까지 다 같이 올려 먹으면 맛이 괜찮았다. (나중에 한국 와서 무슨 영상을 우연히 봤는데, 감자만두와 양배추 절임은 독일에서 자주 먹는 음식인 것 같더라.)



그나저나, 일회용품 하나도 없는 거 눈치채셨는지..?! 음식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마켓인데도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소시지 판매한 곳은 야외 부스였다.)


음식 계산할 때 그릇 보증금으로 4유로를 더 받았는데 다 먹은 뒤 그릇을 반납하니 4유로를 바로 돌려줬다. 맥주 계산할 때도 맥주병 보증금으로 2유로를 더 받았고, 맥주병을 반납하자마자 2유로는 다시 돌려받았다.


이 같은 '보증금 제도'가 거의 모든 부스에서 시행되고 있었고, 덕분에 이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는 사람들이 머그잔을 들고 다니거나 그릇을 들고 다니며 뭘 먹고 있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 그릇이나 머그잔을 반납하지 않을 경우, 보증금을 내고 구입하겠다는 의사로 받아들인다. 




그 덕분에(?) 내 친구의 눈을 돌아가게 만든 것이 있었으니, 바로 머그잔이었다. 네이비 바탕에 하얀색으로 일러스트가 그려진 머그잔이었는데, 사람들이 그 잔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친구가 반해버린 것이다.


부스마다 음료를 담아주는 머그잔 디자인이 달라서 친구가 예쁘다고 한 "그 머그잔"을 찾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을 헤치며 마켓을 열심히 돌아다닌 끝에 드디어 발견! 실물을 받아보고 마음에 들면 보증금을 내고 머그잔을 구입할 생각이었던 친구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음료를 주문했다.




그런데 네이비 머그잔은 어디갔...??




(설상가상으로) 친구나 나나 똑같이 핫초코를 주문했는데, 핫초코는 네이비 머그잔에 주지 않았다...


사실 나름 머리를 써서 차가운 음료를 주문하면 머그잔에 안 줄 것 같아서 따뜻한 음료로 주문한 거였는데, 따뜻한 음료도 메뉴마다 잔이 다 달랐던 것이다...


투명한 글라스도 예뻤지만 네이비 머그잔을 격하게 원했던 친구는 핫초코를 다 마신 뒤 미련 없이 반납하고 보증금을 챙겨 왔다.



 


베를린의 크리스마스 마켓 즐겨보니,




일찍 해가 지는 덕분에 초저녁부터 한밤중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던 것도 너무 좋았고 (사진 보면 한밤중 같죠?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에 찍은 것들입니다...) 오후 6시 지나니까 여기서 다들 모이기로 한 것 마냥 온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 사이에 낑겨있었던 것도 새로웠다. (베를린에 있는 내내 인구 밀도가 높았던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더군다나 크리스마스 마켓이라고 하면, 1년 중 제일 큰 축제일 텐데 여기서도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일회용품을 거의 (내가 일일이 다 감시하고 다닌 건 아니라서 '전혀'라는 단어는 못 쓰겠지만) 사용하지 않는다는 게 너무 인상적이었다.



* 겪어 보고 나니 깨달은 것 _ 크리스마스 마켓 즐기는 팁

먼저 배는 어느 정도 채우고 크리스마스 마켓에 가기로 하자. (어느 나라나 그렇겠지만) 이런 마켓에서 파는 음식들은 비교적 비싼 편이다. 


우리도 당시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즐긴다는 생각으로 별생각 없이 먹고 마셨는데, 나중에 계산해 보니 베를린에서 먹었던 것 중 제일 비쌌고, 제일 양이 적었다. (보통 식당에 가서 똑같은 값 내면 양 너무 많아서 다 못 먹을 정도로 준다.)


이건 프라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프라하로 넘어갔을 때도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파는 음식들은 다 비쌌고, 양이 많지 않았다. 


그러니 배는 식당에서 채우고, 간식같이 간단한 것들로 기분만 내는 것이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방법일 것이다.




길거리 지나다 만난 트리



날이 을씨년스러워도, 오후 5시만 되면 한밤중 마냥 깜깜해져도, 크리스마스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12월의 베를린은 충분히 즐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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