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민이 일상인 곳에서 산다는 것
나고 자란 곳을 떠나느냐 아니냐는 ‘편안함’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아무 불편 없이 언어를 구사할 수 있고, 한 나라에 소속된 사람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기 때문이다. 그 특권에서 오는 편안함은 너무나 익숙하고 달콤해서 버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익숙함이 하찮게 느껴질 만큼 떠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거나 그 달콤함을 덮어버릴 만큼 나고 자란 곳이 살기 힘들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나의 경우 한국이 미치도록 싫지도 않았고 독일에서 살고 싶다는 욕구가 강렬하지도 않았다. 다만 분명한 건 내가 나고 자란 곳은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그 힘듦을 계속 견뎌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한국에서 비건 지향인으로 살면서 힘든 것 중 하나는, 항상 요구하는 입장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라테를 마시고 싶으면 주문하기 전에 두유나 오트유로 변경이 가능한지 물어야 했고, 김밥을 먹고 싶으면 야채김밥에 ‘진짜 야채만’ 넣고 만들어 줄 수 있냐고 매번 부탁해야 했다. 열 번에 여덟 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한 번 정도는 핀잔을 들었고, 한 번 정도는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그럴 때면 스스로 생각해도 지나칠 정도로 감사하곤 했다.
대형 프랜차이즈에서 비건 메뉴가 나오면 득달같이 가서 먹었다. 비싸고 맛이 없어도 비건 메뉴를 출시했다는 것에 감사해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몇 달 못 버티고 사라지기 일쑤였다.
그런데 독일에 와보니 (다른 곳도 아니고) 맥도날드나 버거킹에 당연한 듯이 비건 혹은 베지테리언 메뉴가 있었다. 웬만한 카페에는 항상 대체유가 있었다.
* 내 경험상 카페에서 오트유로 변경이 가능한 경우는 95% 이상이었다. 오히려 두유는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아마 대두 알레르기 때문이 아닐까 예상해 본다.
초밥집에 가도 야채, 유부, 아보카도 등으로만 구성된 베지 메뉴가 있었다. 여기서는 신라면조차 비건이었다.
학생식당에 가면 비건 혹은 베지테리언 메뉴가 매일 최소 한 개 이상씩 있었다. 마트에 가면 비건 햄, 비건 치즈, 비건 요거트를 종류별로 골라먹을 수 있었다.
그동안 서서히 지쳐갔던 이유는 내가 점점 ‘안 되는 걸 해달라고 떼쓰는 사람’으로 위치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난 더 눈치를 보게 됐다. 지금이 바쁜 시간대인지 아닌지, 내가 요청하면 짜증 내지 않고 들어줄 수 있는 상황인지 아닌지, 요청을 들어줄만한 주문량은 어느 정도인지 항상 생각해야 했다.
그러다 내가 ’까탈스러운 사람’이 아닌 그냥 ‘그런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곳을 발견했다. 카페에 가면 주문하고 싶은 메뉴를 주문하며 ’ 오트유로요.‘만 덧붙이면 됐다. 학생식당에서는 뭘 요구할 필요도 없었다. 그날의 비건 혹은 베지테리언 메뉴를 먹으면 되니까.
(그 수가 그렇게 많았던 건 아니지만) 독일인들과 대화를 하다가 내가 채식을 한다는 걸 밝히면 그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나도 고기를 끊고 싶은데 그게 쉽진 않더라고.‘ 혹은 ’ 나도 몇 년 전부터 고기 먹는 걸 많이 줄이고 있어.’ 혹은 ‘나도 고기를 즐겨 먹진 않아.’라고 답하며 그들은 나에게 묘한 죄책감 비슷한 느낌을 내비쳤다. 그리고 내가 가장 놀랐던 건 아무도 나에게 채식을 왜 하냐고 묻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동물을 먹지 않는다고 밝히는 순간, 상대가 납득할 때까지 내 선택을 설명해야 하는 삶을 살아온 나로서는 이 반응들이 참으로 신선했다.
그렇다고 이곳을 파라다이스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초반에 언급했듯이 어떤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특권이다. 난 그 특권을 떠나온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전혀 다른 문화와 사회적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관공서가 일주일에 세네 번만 연다는 사실에 놀라고, 어떤 관공서는 오후 1시면 문을 닫아 기겁하기도 했다. 기차의 경우 30-40분 지연은 기본이라 도 닦는 마음으로 타야 하는데, 어느 날은 여러 번의 지연과 운행 취소가 겹치고 겹쳐 두 시간이면 도착할 곳을 네 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그날의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시스템을 왜 개선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사람들은 왜 수십 년 동안 그냥 당하고만 있는지도 이해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용감하게 내가 그냥 그런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곳에서 한번 살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