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만에 한국을 또 떠나게 된 이유 2

두 번째 학부생

by 트망트망




여행과 생활



처음 독일을 찾은 이유는 단순했다. 베를린이 비건 하기 좋은 도시로 유명하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좋은지 확인차 떠난 여행이었는데, 예상보다 더 좋아서 한눈에 반해버렸다. 하지만 난 의심이 많은 인간이라 넘치도록 좋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뭔가 더 있는데 잠깐 여행 온 거라서 좋은 면만 본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한 달 살기를 결심했다. 외국에서의 여행과 생활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확인을 해야 했다. 생활하기에도 베를린이라는 곳이 좋은 곳인지. 결론만 말하자면 역시나 여행과 생활은 달랐다. 불편한 점도 보이고 이곳에서 살게 될 경우 어떤 것들이 힘들지도 눈에 빤히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국에 돌아오기 싫었다.





독일어 시작,


독일에 여행 갔을 당시 당황스러웠던 것이 표지판부터 간판까지 뭐 하나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게 없었다는 것이었다. 알파벳스러운 것들이 쓰여 있어서 읽어 보려고 하면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몰라서 당황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고양이 길 :)


한 달이긴 해도 그곳에서 살아보려면 뭐라고 쓰여있는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다.


독일어를 배우러 가보니, 나를 제외한 거의 모두가 유학을 위해 독일어를 배우고 있었다. 그때서야 독일에 유학 가는 사람이 상당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들이 너무 부러웠다. 나에게 독일이라는 사회는 참 매력적인데 저들은 유학 가면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까지는 힘들 수 있지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전한 환경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독일은 대학생(학부, 석사, 박사 등)들에게 주는 혜택도 많았다.



부러움이 지속되던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도 대학에 들어가면 되지 않나?


독일 사회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가장 큰 이유는, 고민하는 자세가 보였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려는 고민, 기후 위기 시대에 환경을 덜 해치려는 고민들이 여행자의 신분으로 그곳에 잠시 들렀던 내 눈에도 보였다. 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독일 대학에 가면 이런 고민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유학을 결심하기 전 가장 크게 걸렸던 건 나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 기준으로) 난 대학을 다시 들어갈 나이는 아니었다. 박사 과정이면 모를까, 석사를 한다고 해도 한국에서는 그 나이에 웬 석사를 하냐는 소리를 들을 판에 학사라니.

* 독일은 새로운 전공을 하려면 학사부터 시작해야 한다. 전공을 바꿔서 석사나 박사에 진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독일에서 인정되는 한국 대학에서 학부를 졸업했다면 (학사를 다시 시작할 경우) 전공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난 나이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나이 따위 알 게 뭐야라는 마음으로 유학을 결심했다.





베를린 한 달 살기가 나에게 남긴 것



난 해외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다. 그 당시 나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진 나라가 있었고, 왠지 모르게 그곳에 살면 모든 고민이 사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살아보니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상상도 못 했던 고난과 역경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난 그저 한국에서 도망칠 곳이 필요했다는 걸.



베를린에서 한 달가량 지내던 당시, 트라우마처럼 과거의 기억이 날 덮쳐왔다. 이곳(뿐만 아니라 해외 어디든)에서 살려면 어떤 과정들을 거쳐야 하는지 눈앞에 선했다. - 난 이런 부분에서 또 힘들어하겠지, 이런 걸 해결하기 위해 또 혼자서 고군분투하겠지.- 알고 싶지 않았지만 미래의 내 모습이 너무 빤했다. 그런데 한 달 살기가 끝나갈 무렵, 이상하게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제야 내 결심은 조금 더 견고해졌다.



베를린 한 달 살기는 내 선택지를 넓히는 역할도 했다. 사실 베를린 여행이 너무 좋았기에 유학도 베를린에서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그곳에서 한 달 동안 지내보니 꼭 베를린만을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다. 일단 베를린은 집세가 너무 비쌌다. 베를린에서 유학을 하기 위해서는 집세가 저렴한 곳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런 곳은 분위기가 좋지 않은(위험할 수 있는) 구역이었다. 나는 심적 안정감이 상당히 중요한 사람이기에 그런 환경은 낯선 사회에 적응하기에 큰 걸림돌이 될 거라는 걸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동선이 크지 않다는 것도 베를린을 포기하는 데에 한몫했다. 여행했을 때와 달리 생활이 되자 내 동선은 한국에서처럼 단순해졌다. 관광, 문화생활, 유흥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에게 베를린은 큰 메리트가 없었다. 비건 레스토랑이 많다는 것도 베를린의 큰 장점 중 하나였는데, 생활이 되자 외식을 자주 할 수 없었다. 장바구니 물가에 비해 외식 물가가 상당히 비싼 독일에서는 한 달에 한두 번 외식하는 것도 부담일 정도다. (실제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현재, 외식은커녕 카페도 안 간다.)


이런 이유들이 더해져 베를린을 고집하기보다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중소도시를 선택지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아직은 전공준비생



대학을 선택할 때 내 우선순위는 아래와 같았다.


1. 내 관심사를 전공할 수 있는 대학

2. 학비가 있는 곳은 제외 : 독일 대부분의 대학교는 학비를 받지 않지만 일부 주와 사립대에서는 학비를 받는다.

3. 물가 비싼 대도시는 제외 : 독일에 전혀 관심이 없는 한국인들도 알만한 도시들은 대도시라고 보면 된다. (베를린, 뮌헨, 프랑크푸르트 등)



사과나무가 가로수처럼 널려있는 곳


위의 기준으로 대학을 선별해 3곳에 지원했고, 다 합격소식을 들었다. 그중에서 1순위었던 곳을 선택했고, 지금은 ‘전공준비생’의 자격으로 대학에서 제공하는 독일어 수업을 수강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유명하지 않은 곳이라 학교기숙사에 쉽게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사설기숙사에 입주할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내 예상보다 월세에서 나가는 돈이 커져버렸다. 그리고 이곳이 독일에서는 그렇게 작은 도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의 평생을 (한국) 수도권에서만 살아온 나로서는 간혹 너무 시골스러움이 풍길 때가 있어서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대부분 만족하는 중이다.



사실 독일행 비행기에 오르는 그 순간까지도 확신은 없었다. 해외생활에서는 (현재의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돌발상황들이 벌어진다는 걸 알기에 확신 따위 갖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단단하면 단단할수록 쉬이 부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흘러가는 대로 살지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이지만 이번만큼은 흘러가는 대로 놔두고 싶었다. 그렇게 쉬이 놓아지지 않아 분노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나름 잘 흘러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번만큼은 흘러가는 대로 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