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무수한 정리가 필요한 과정이구나.

삶은 정리의 연속이구나

by 감정 PD 푸른뮤즈


그날 내 기분을 표현해 보자면,


금요일 퇴근길 번화가 사거리.

수없이 울리는 자동차 경적소리.

발생처를 알 수 없는 소음들

정신없이 쏟아져 나온 사람들.


그 중앙에 갇힌 채 이도저도 움직이지 못하는 나...


그야말로 정신없고 꽉 막힌 답답함.

갑자기 든 기분이었다.


'뭐지? 왜 그러지?'


이유 모를 기분이 들 때면 나는 잠시 멈추고 원인을 파악하려 한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유를 알아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의 원인은 분명했다. 준비하던 일이 예상만큼 풀리지 않아 마음이 어지러웠다. 묵혔던 자료들을 꺼내 필요한 것들을 분류하다 보니, 잊고 있던 자료들, 중복된 자료들, 분류가 애매한 자료들이 뒤엉켜 있었다.


원인은 존재한다. 그동안 준비하던 일이 생각보다 잘 안 풀려서 마음먹고 묵힌 자료들을 모두 꺼낸 날이었다. 필요한 자료를 찾아 분류했다. 잊고 있던 자료, 중첩된 자료, 분류가 어려운 자료가 한데 뒤엉켜있었다.


'이걸 언제 다 정리하지?'


자료가 뒤섞이니 짜증이 밀려왔다. 마음도 조급한데 정리까지 해야 한다니, 한숨이 절로 났다. 문득 고개를 돌리자, 내 시선은 옷장에 멈췄다.


집안의 작은 방. 책상 뒤에 옷장이 있는 구조였다. 평소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던 옷장이었지만, 이날따라 옷과 물건이 지저분하게 쌓여있는 모습이 거슬렸다.


'갑자기? 왜 이렇게 짜증이 나지?'


외면하려던 내 눈길은 이번엔 벽지와 장판으로 향했다. 낡고 빛바랜 벽지와 뜯어진 장판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아…'

<출처: 핀터레스트>

마치 KO를 당한 기분이었다. 갑자기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머릿속은 혼란스러웠고, 짜증은 폭발 직전이었다.

평소 같으면 이런 감정들을 억누르고 지나갔겠지만, 이날은 달랐다. 집 안의 낡은 물건들이, 좁은 공간이, 나를 더 답답하게 만들고 있었다. 집이 작아서 수납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내 짜증을 합리화했다. 공간이 답답하니 내 마음도 답답해진 것 같았다.


'이놈의 집구석.'


이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마침내, 작고 낡은 서랍장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서랍 속에 작은 문구류들이 떠올랐다. '언제 다 쓸까?' 하는 생각과 함께 서랍을 여는 게 두려웠다. 작다고 무시한 채 방치한 물건은 '낭비 중'이라는 죄책감까지 들었다. 안 봐도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안다는 게 복인지 벌인 지 헷갈린다.


'저 안에 문구류는 언제 다 쓰나?'


어지러웠다. 내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왜 평소엔 신경 쓰지 않던 것들이 오늘은 나를 괴롭히는 걸까?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문제였다는 것을.

지금 내 삶은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동안 무시했던 이 사실이 나를 강타했다. 이제 더는 즉흥적이고 계획 없는 방식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언가를 정리하지 않으면, 나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난 이 변화를 곱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즉흥적이고 직관적이고, 체계 없고, 계획 없고, 루틴 없는, 정리와 거리가 멀다는 내 정체성 따위 가뿐히 무시하고서라도 말이다.


삶은 무수한 정리의 과정이다. 꾸준히 비우고 채우며, 내 삶도 함께 순환시켜야 한다.

이 기록은 정리가 왜 필요한지 조차 모르던 한 인간이 삶을 새롭게 재정리해가는 고군분투 여정이 될 것 같다.


그런데.... 뭐부터 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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